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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이야기

이미지로의 도피, 다큐멘터리가 가야할 길

이미지로의 도피, 다큐는 어디로 가야하는가


 

재독철학자 한병철에 따르면 오늘날의 이미지는 모상일 뿐만 아니라 모델이기도 하다. 여기서의 모델(vorbild)은 일종의 원형이다. 그저 실재의 반영이 아닌 대체된 원형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더 나아지기 위해 이미지 속으로 도피한다. 문명의 진보에는 기술만 동원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가 포함된다. 디지털매체는 결함투성이로 여겨지는 현실보다 이미지를 더 생동감 있고 온전하게 그려낸다. 이는 곧 형상적 전도(顚倒)이다. 한병철은 미국을 예로 들며 오직 이미지만이 생산되고 소비된다.’고 지적한다.


블로그지기가 보기에 이 지적은 완전히 유효하다. 왜냐하면 현대사회에서 실제 생산되는 것이 이미지라는 주장이라기보다는 이미지라는 매개체가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고 주장하는 바에 가깝기 때문이다. 소비의욕 고취에 있어 <UI디자인>, <UX-사용자경험>등의 디자인적 단어들이 대두되고, 미디어를 통한 광고의 비중이 나날이 올라가는 점 등을 생각해본다면 올바른 지적이라고 볼 수 있다.


좀 더 극명한 예를 들어, <파리신드롬>이라고 일컬어지는 현상은 현대사회에서 실재를 감추는 역할로서의 이미지가 얼마나 커지는지 깨닫게 된다. 파리신드롬 환자는 환각, 현실감 상실, 불안 등에 시달리는데 파리 신드롬을 촉발시키는 건 여행 전 파리에 대해 품은 이상적 이미지와, 한참 동떨어져 있는 파리의 현실간의 격차다. 이들을 지켜주는 것은 거의 강박적인 사진찍기이다. 파리신드롬 환자가 안정을 되찾는 방법은 그의 기억 속에 현실을 밀어내고 이미지를 주입시키는 것이다.


이미지로의 도피 속 영화가 처한 현실은 어떠한가? 우리는 현재의 인기 영화들을 면밀히 살펴보지 않더라도 소비자들이 어떤 영화를 선호하는지 알 수 있다. 관객들이 원하는 영화는 현실에 가상 이미지들이 혼합되거나, CG가 전혀 없는 영화라고 하더라도 만들어진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하는 경우가 잦다.-이는 곧 가상이다-. 이에 반해 다큐멘터리 영화는 기록영화에 가깝다. 현실 그대로를 영상이라는 형태로 기록하는 다큐멘터리영화는 실재와 이미지의 일치를 시도한다. 하지만 이는 많은 관객에게 있어 지루한 요소이다. 관객들이 원하는 것은 가공된 이미지고, 그 이미지는 실재와 다를수록 좋다. 관객 평점은 그 반석 위에서의 완성도에 달려있다. 따라서 과거 실재의 재구성을 위해서만 허구를 빌려왔던 다큐멘터리는 이제 <다큐픽션>, <모큐멘터리> 등의 이름을 차용하며 변신을 시도한다. 이 변신들은 진실의 반영보다는 호기심을 기반으로 한 대중적 인기에 그 목적이 있다.


그렇기에 실재를 보이고자 하는 순수다큐영화가 짊어지고 있는 사명은 더욱 큰 무게감을 지닌다. <실재 혹은 실제의 반영>만을 이데올로기마냥 고집하며 모든 변화를 거부해서도 안 되지만, 필자는 다큐멘터리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그 가치를 끝까지 가지고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다면 어떤 영화가 이런 입장을 견지하고 있을까?? 이번 D-BOX에서 서비스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중 사실관계 전달에 큰 무게를 둔 작품을 간단히 소개해보고자 한다.



1. 소년이여 너의 전쟁은 없다(2012)



소년이여, 너의 전쟁은 없다 / Fight Like Soldiers Die Like Children

감독: 패트릭 리드 / Patrick Reed

러닝타임: 57분

제작년도: 2012


패트릭 리드 감독의 다큐멘터리영화 <소년이여 너의 전쟁은 없다>는 아프리카 내전, 분쟁 등에 동원되는 소년병들을 소재로 한다. 연출자는 유명한 책 <전사처럼 싸우고 아이처럼 죽는다>의 저자 Romeo Dallaire의 행적을 쫓는다. 아이들이 값싼 무기처럼 사용된다고 말하며 그들을 구하고 싶어하는 한 남자의 행적은 눈으로 따라가며, 관객들은 아프리카의 소년병 징집이 얼마나 보편화 되어 있으며, 그들을 "사용"하는 어른들이 얼마나 "외부세계"를 기만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2. 버마VJ(2008)



버마 VJ / Burma VJ - Reporting froma Closed Country

감독: 안데르스 외스터가르트 / Anders Østergaard

러닝타임: 83분

제작년도: 2008


이 작품은 군부독재에 저항하는 버마의 젊은이들의 행적을 드러내는 영화이다. 언론통제가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민주화를 향한 젊은이들의 열망이 외부로 새나가지 않는 상황에서, 이를 전달하려는 8mm 캠코더들의 움직임이 우리의 눈에 비친다. 

관객은 비밀기자라는 거창한 이름 이면의 그들의 나약한 몸부림을 바라보며 버마의 '비밀기자'들의 용기와 자유를 향한 갈망이 얼마나 적나라한지를 두 눈으로 발견한다.




3. 내가 정말 미소짓고 있었을까(2007)



내가 정말 미소짓고 있었을까 / To see if I am smiling

감독: 타마르 야롬

러닝타임: 59분

제작년도: 2007


이스라엘 여군들은 18세가 되면 남성은 3년, 여성은 2년간의 의무 군복무를 수행한다. 이 영화는 각기 다른 위치에서 군목무를 수행했던 여성들을 비추며 그들이 팔레스타인에 주둔하며 전쟁터 한복판에서 느낀 여러 감정들을 여과없이 보여준다. 

필름이 여과없이 보여줄지라도, 그 여성들의 웃는 얼굴을 통해 어느정도 필터링된 감정들은 그 전쟁의 참상과 악몽, 혹은 그 희열을 모두 감추지는 못한다. 관객들은 이 영화를 통하여 전쟁이 가진 야만성에 성별을 떠나 모든 인간들이 노출되어있음을 본다.





4. 가족의 이름으로(2010)



가족의 이름으로 / In the Name of the Family

감독: 셸리 세이웰 / Shelly Saywell

러닝타임: 88분

제작년도: 2010


이슬람 국가에서 발생하는 '명예살인'의 희생자는 대부분 여성이다. 가족에 대한 명예살인의 원인이 개인적 갈등 이면의 종교적 신념으로 비춰지지만 감독은 종교를 빙자한 개인 대 개인의 폭력이라는 메시지를 감독의 개입없이, 인터뷰를 통해서만 드러낸다. 이슬람 종교에 대해 잘 알지못하는 관객들에게 필요한 정보와 맥락을 제공하는 전개방식으로 관객들의 합리적 판단을 이끌어내려는 감독의 의도가 돋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