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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IDF 2016/EIDF 2016 상영작

[EIDF2016 스케치] <장미의 땅: 쿠르드의 여전사들> Talk with Guest


 2016년 8월 27일(토), 오후 12시 30분에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장미의 땅: 쿠르드의 여전사들GULISTAN, Land of Roses>의 TG(Talk with Guest) 행사가 진행되었다.


 자이네 아키올은 터키에서 태어나 퀘벡으로 이주하여 자란 쿠르드계 감독으로, EIDF 2016에서 상영된 그녀의 첫 장편 <장미의 땅: 쿠르드의 여전사들>은 2012년 베를린국제영화 제 탤런트 다큐스테이션에 선정되었던 작품이다.

영화는 쿠르드족 무장 독립운동 단체 PKK(쿠리드스탄 노동자당Partiya Karkeren Kurdista)에 소속된 젊은 여전사들이 이라크와 시리아 국경선 근처에서 급진 수니파 무장단체 IS와 싸우고 있는 상황을 가까이에서 담아내었다.


 

Q. 감독님 인사말씀 부탁드린다.

A. 나는 터키 쿠르드족 출신이고, 어릴 때 캐나다의 퀘벡으로 이주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처음 한국을 방문했는데, 이런 자리를 마련해주셔서 감사하다.

 

Q. 한국에서 외국의 분쟁들은 서구 세계의 보도를 경유하여 IS가 어디를 공격했다, 누구를 참수했다는 식으로만 알려져 있다. 영화 속에서도 묘사가 되지만, 감독님께 이 지역에 대한 역사적인, 정치적인 상황을 듣고 싶다.

A. 쿠르디스탄Kurdistan 지역은 족의 이라크 북부의 산악지대와 시리아의 동쪽, 이란의 서쪽과 경계를 마주하고 있으며 터키까지 포함하면 4개의 국경 지역에서 다른 국가들의 침략을 받고 있고, 이에 맞서서 꾸준히 싸우고 있다.

 

Q. 세계 분쟁에 관한 다큐는 많은데, 이 작품처럼 산악 지대에서 활동하는 여성 게릴라 전사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것은 드물다. 감독님은 쿠르드 족 출신이기는 하지만 어려서 캐나다 퀘벡으로 이주했다고 말씀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는가.

A. 내가 터키에서 퀘벡으로 이사한 것은 4살 때였고, 터키에 살았을 때는 작은 마을에 살았다. 그래서 실제로 게릴라 전투 상황을 경험하기도 했고, 어린 시절이었지만 강한 잔상이 남았다. 최근 10년 사이 터키에서 쿠르드 언어를 쓰지 못하게 하는 등의 억압이 심해지고 있는데, 오히려 정체성을 잊지 않으려는 노력과 종족성에 대한 갈망이 커지고 있었다.

 어린 시절에 구르스탄이라는 이름의 보모 언니가 있었는데, 나에겐 마치 큰언니이자 롤모델인 존재였다. 그런데 그녀가 18세 때 PKK에 가입하기 위해 떠났다. 당시 나는 5-6세 정도였지만 아주 큰 영향을 받았다. 그녀의 부재가 내 인생에서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되었고, 영화를 전공하고 석사, 박사 학위를 취득해 나가면서 이런 부분을 본격적으로 다루고자 생각했다. 쿠르드 지역에는 현재도 내전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나는 2012부터 꾸준히 자료 취합하기 위해 쿠르드 지역을 방문했었다. 영화의 여주인공도 2012년부터 만나 인연을 맺었다.

 


Q. 영화 속 상황에서 감독이 위험하지 않을까 조마조마했다. 쿠르디스탄의 경우에는 이라크, 시리아, 터키, 이란 네 나라에 걸쳐 있고 오랜 세월동안 국가를 수립하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 민족은 하나이지만 국가가 나눠진 만큼 문화나 언어도 다르기 때문에 PKK는 다양한 문화 기반의 쿠르드족들이 모여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이 어떻게 하나로 뭉쳐지는지 궁금하다.

A. PKK는 통일된 이데올로기를 형성하고 있었다. 환경이나 종교, 여성, 평등까지 다양한 측면의 이데올로기를 수용하여 지향점을 공유했고, 이를 실천하려는 의지가 아주 강하다. 독일이나 프랑스 출신의 대원들도 있는데, 각자의 국적이나 어떤 배경보다도 공동의 가치를 위해 단합하고 있다. 유토피아적 아이디어인 것 같지만 사실이고, 우리가 하나의 아이디어 안에서 공동의 가치를 향해 발맞춰가기 때문에 거리감을 느낄 요소는 드물다고 생각한다.

 

Q. 작품이 초반 PKK가 주로 있는 터키나 이라크의 산악지대에서 훈련하는 장면에서는 다채로운 캐릭터가 등장한다. 그러다가 이라크 북부로 이동해서 사막지역에 있을 때에는 생동감이 적게 느껴진다. 이렇게 근거지가 바뀌고 나서 인물들의 특징이 덜 드러나는 것이 감독이 의도한 것인지, 아니면 근거지가 바뀌었기 때문에 그들의 태도도 실제로 달라진 것인지 궁금하다.

 그리고 작품의 맨 마지막 부분에 가장 많은 교감을 나눴던 여성 게릴라가 전투에 나가는 걸 앞두고 묵음 처리된 부분이 있는데, 이와 관련해서도 어떤 의도를 가지고 연출한 것인지 궁금하다. 그리고 이분이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에 관한 후일담도 궁금하다.

A. 산악지역에서부터 말씀드리자면 해당 지역까지 기차로 이동해야 하는데, 촬영팀을 동행할 수 없다고 전해왔다. 당시는 전쟁 초기였기 때문에 촬영팀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어서 할 수 없이 이들을 먼저 보냈다. 그리고 전쟁 영화를 보면 카메라가 흔들리고, 전쟁의 긴박함 때문에 때로는 카메라가 그런 상황을 놓치게 되며 발생하는 충격이 그려지기도 하는데, 나는 그런 전쟁 상황보다도 기다림도 오히려 전쟁의 또다른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PKK는 선제공격을 하지 않고 공격 당하기를 기다렸다가 반격하는 식으로 전투를 진행하는데, 이들과 함께 기다리면서 전쟁의 이면에 있는 기다림을 담고자 했다.

 제가 만들어 보고 싶었던 영화는 영상의 전반에 전쟁 준비 과정을 담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여주인공이 전쟁에 나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하루가 멀다하고 사상자가 발생하는 위험한 상황이었고, 나는 그녀를 2011년부터 알고 지냈다. 그 여주인공의 행동이 다른 생명을 구하는 행동임을 알면서도, 그녀가 싸우지 않기를 바랬다. 나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그녀가 문을 열고 나가는 그 엔딩 부분을 극대화하고자 했는데, 그래서 소리도 점차 작아지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러면 관객들은 숨을 멈추고 그 장면을 응시할 것이고 긴장되거나 걱정하게 되며 내가 당시에 느꼈던 감정을 공유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현재에는 마크무드에서 대학을 건립하려고 노력 중이다. 그러나 산악 지방에서 싸웠던 전투원들의 절반 이상은 사망했다.

 


Q. 영화를 만들면서 여러 고민을 했을 텐데, 가장 주의했던 것이나 피하려고 했던 것은 어떤 점이었을지 궁금하다. 영화가 여성, 쿠르드족, 전쟁 상황이라는 여러 소수자들의 정체성이 중첩되는데 고민의 여지가 더 많았을 것이다. 쿠르드족의 분쟁은 팔레스타인보다 덜 주목받고 어떻게 보면 굉장히 낯선 지역이기도 하다. 영화를 만들면서 관객들에게 굉장히 타자화되기 쉬운 존재들이다. 영화가 사람들에게 이미지를 특정한 형태로 전달하는 것을 피하려고 했던 연출 지점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A. 영화 촬영에서 피하려고 했던 부분은 없었다. 유일하게 그들이 촬영을 거부했던 장면이 하나 있다면, 흡연 장면이었는데 이건 건강에 좋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굳이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게 좋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들은 사실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도 훨씬 많은 것들을 촬영할 수 있게 해주었다. 심지어는 그들의 전쟁 전략 회의마저도 촬영할 수 있게 해줬다.

 그리고 팔레스타인 쪽의 전쟁보다 쿠르드인들의 내전이 덜 알려져 있는데, 사실 쿠르드 족 사람들은 4천만 명 정도로, 인구 수를 따지면 팔레스타인 사람들보다 더 큰 집단임에도 덜 알려진 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쿠르드족들의 독립을 바라지 않는 아랍 세력들이 우위에 서 있고, 이들의 영향이 반영되어 미디어롤 통한 쿠르드인들에의 접촉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쿠르드 지역 출신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쿠르드인을 위해 살아가지는 않는다. 나 뿐만 아니라 여러분도 일상생활을 함에 있어서 특정한 민족으로 존재할 필요는 없다. 나는 영화를 통해 국적에 대해서가 아니라 인류에 대한 문제를 말하고 싶다. 인류에 대한 공격이 있는 부분에 대해, 내가 언젠가는 쿠르드로 돌아가서 자세히 다루고 싶었는데, 이렇게 분명히 존재하지만 미디어를 통해 잘 알려지지 않아 비존재한다고 여겨지기 때문에 조명하고 싶다. 이번 영화를 통해서 여러분도 이쪽 내전 상황에 관심을 가지기를 바란다.

 덧붙여서, 여러분이 쿠르드인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소개해주겠다. 우선 한국 정부 포함해 여러 정부에 상황 알리고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고, 적십자 단체를 통해 관심을 보일 수도 있고, 지금 학교들을 많이 세우고 있는데 이런 활동들에 대한 관심 보여줘도 좋을 것 같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삶의 터전을 지키며 사는 것이기 때문에, 이들이 그 기반을 세우는 것을 도와줬으면 좋겠다.

 


Q. 한국은 휴전상태의 분단국가이기에 징병제를 시행하여 한국 남성도 군대로 가는데, 내 군대 경험에 빗대어서 영화 속 PKK의 모습을 볼 때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군대는 인간성을 제어하려고 하고, 상명하복의 수직적인 위계질서를 갖추고 있고, 휴전 상태임을 강조하며 긴장을 강조하고 서로를 대하고 있다. 반면 PKK에서는 자유롭고 여성들의 강인함을 유지하면서도 투쟁을 잘 해나갈 수 있었던 게 놀라웠다. 감독이 이걸 지켜보면서 이게 어떻게 가능하다고 생각했는지 의견을 들어보고 싶다.

A. 영화에서 제가 다루었던 PKK는 공산주의 사상에서 출발한 아주 특별한 군대인데, 완전한 평등을 추구하는 것에서 시작한 것이다. 사실 이런 완전한 평등은 거의 실패하고 그나마도 북한이나 쿠바 정도에서만 유지되고 있다. 결정적으로 PKK가 잘 운영될 수 있는 이유는 모든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했기 때문이다. 매우 강한 전우애가 형성될 수밖에 없고, 남녀가 함께 일하지만 전장에서 가족을 꾸리고 아이를 낳게 되면 이후 살림을 꾸립기 어려워 아무런 가족관계를 맺지 않는다.

 이런 상황이다보니 주위에는 서로를 동지라고 칭하는 동료들만 남아 있다. 그리고 자발적으로 가족을 떠나왔기 때문에, 매일 사상자가 발생하는 상황 속에서 매일 내가 죽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면, 자기 옆에 있는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공산주의 사상에서 시작했기 때문에어떤 일에든 평등을 추구하고, 모든 구성원 하나하나가 힘과 권력을 지니며, 그래서 영화에 나온 것처럼 상관도 독단적인 결정을 내릴 수 없다. 그리고 PKK에서 여성 비율은 40%에 육박하는데, 이는 전 세계의 어떤 군대보다도 여성의 비율이 높은 것이다.


자원활동가 기록팀 최지혁 사진자원활동가 기록팀 조이수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