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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IDF 2016/EIDF 2016 상영작

[EIDF2016 스케치] <베트남 잊기> Talk with Guest

 2016년 8월 27일(토), 오후 3시에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베트남 잊기Forgetting Vietnam>의 TG(Talk with Guest) 행사가 진행되었다.


 영화감독이자 작가, 작곡가이며, 캘리포니아주립 버클리대학교에 수사학, 여성학 교수로 재직 중인 트린 T. 민하TRINH T. Minh-ha감독이 행사에 참여했다. 영화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물과 이어진 새로움, 그리고 견고한 대지와 관련된 옛것 사이의 만남을 보여주고, 끝난 지 40년이 지난 베트남전을 기억하고, 개인들에게 애도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작품이다.



 

- 영화 상영 전 인사, 소개

(이례적으로 영화 상영에 앞서 감독이 직접 관객들에게 영화에 대한 소개를 했다.)


 서울은 처음 왔지만 세 번째로 EIDF에 참여했다. 여러분들이 오늘 내 영화를 보러 와 줘서 감사하다. 내 영화는 무엇이라고 장르를 규정하기 어렵고, 보통의 픽션 다큐멘터리가 아니며, 나는 영화를 통해 우리가 보는 것들의 본질에 대해 질문하고자 한다. 추가적으로 사람들이 창의적인 접근을 통해 영화에서 새로운 것들을 봤으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는 이 영화가 끝나고 영화에 대해 토론할 기회가 있을 것인데, 창의적인 관점에서 이 영화를 어떻게 봤는지에 관한 질문이나 감상을 이야기해줬으면 좋겠다.

 전통적으로 영화는 사람들의 눈에 비춰지는 것이었지만, 나에게 영화는 눈 뿐만 아니라 몸 전체를 통해 경험하는 예술이다. 특히 고대 아시아에서의 예술은 이미 눈과 귀의 구분이 없었다. 화가는 동시에 시인이었고, 시인은 동시에 화가였다. 이 영화를 통해 음악과 글과 이미지가 결합된 그런 관계를 보게 될 것이다.

 

- 관객과의 대화

Q. 처음에 어떻게 영화를 구상하게 되었는지나 영화의 컨셉에 대한 소개 부탁드린다.

A. 이번 영화는 베트남을 다룬 세 번째 작품이다. 여담으로 첫 작품은 서아프리카의 세네갈에 관한 작품이었는데, 미국 내 아시안 커뮤니티에서는 첫 번째 영화를 아시아를 만들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왜 아프리카를 만들었느냐고 하고 불만을 나타내기도 했다.

 내가 만드는 종류의 영화에서는 관객들이 많은 것을 알고 보기를 원하지 않는다. 다큐멘터리가 지식을 포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나는 오히려 사람들이 보고도 잘 모르겠다고 생각할 수 있는 영화가 되기를 원한다.

방금 내 영화처럼 중심적인 이야기가 없을 때, 여러분은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무엇이라고 특정지어 말할 수 없을 때, 우리는 오히려 뭔가 다른 것을 포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말하자면, 내가 베트남에서 만들었던 첫 영화는 <그녀의 이름은 Viet-Nam>인데, 다큐에서 인터뷰가 쓰이는 것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데, 인터뷰를 쓰면서도 인터뷰가 어떻게 사용되고 구성되는가의 정치에 주목하려고 했다. 말해지는 것 자체보다도 인터뷰가 어떻게 정교하게 구성되는가를 그 영화를 통해 보여주고 했다.

두 번째 영화는 <사랑의 여로>라는 작품인데, 관음증의 시선으로 개념에 초점을 두고 영화를 만들었다. 전체 내러티브 안에서 이 관음주의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다루며 사랑 이야기를 만들었다.

세 번째 베트남 잊기를 만들면서, 여러분에게 아주 익숙할 수 있는 것에서 시작하면서도 동시에 베트남의 내부자라는 시선에서 출발하는 것을 피하려 했다. 나도 베트남을 오가는 과정을 거쳐왔기 때문에, 내가 내부자로서 본 베트남을 보여주는 것보다, 여러분이 베트남에 대해 알고 있는 익숙한 것들을 끌어오면서 조금 다른 것도 보여주자는 생각으로 만들었다. 내가 영화에서 보여주고자 했던 어떤 다른 것들은 예를 들자면, 베트남이라는 땅보다도 물의 나라로서의 베트남, 물의 역사로서의 베트남의 역사를 보여주고자 했다.

 또, 전쟁이라는 화두를 가지고 이야기할 때, 과거의 전쟁은 베트남의 육지 땅에서 이뤄졌다면, 지금의 전쟁은 물로 이동해가는 새로운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새로운 측면을 보여드리고자 했다. 사실 베트남어로 물은 땅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베트남에서 보는 모든 것들이나 이 문화에서 보는 모든 것들, 간판, 신호, 상징, 들은 것, 말하는 것, 음, 격언 등 모든 것은 물에 기인한다. 예를 들어 인형극 같은 경우에, 세계 곳곳, 특히 아시아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데, 영화에서 비춰졌던 수상 인형극은 다른 곳에서는 쉽게 볼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왜 물인가, 왜 물 위인가를 질문하기도 하는데, 물이 중요한 이유를 영화에서도 보았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에서는 물의 중요성을 물의 방식water way, 사람들이 물과 함께 살아가는 방식이라는 water way로 이야기했는데, 이게 잘 드러난 요소가 베트남의 수상가옥들이다. 물 위에서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물의 방식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하나 영화에서 여러분이 보고 듣고 또 새롭게 발견하길 바랐던 측면이 있다면 low-high technology의 공존이다. 이 영화를 처음 만들었을 때는 1995년이었는데, 당시에는 Hi-8 Video가 가장 최근 기술이었다. 그래서 그걸로 영화를 촬영했는데 2015년에 보니 이제는 HD Video가 이 세상 전체를 장악하고 있는 첨단 기술이 되었고, 나 역시 HD를 사용하여 영화를 만들었다. 우리 사회에서는 모든 것들이 소비되기 위해서 만들어지고 개발된다. 과거에는 첨단 기술이었던 것이 더 새로운 기술이 나와 낡은 기술이 되면, 낡은 것을 버리고 배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낡은 것들은 버려지는 상황이다 보니 첨단 기술과 예전 기술을 함께 사용하는 방식의 작업은 노동집약적이었다. 두 다른 기술의 공존을 위해 하나하나의 이미지를 넣을 때마다 이미지 왜곡이 없도록 보정하는 작업을 거쳐야 했다.

 이 Hi-8과 HD를 공존시키는 작업을 통해 경험한 것은 사실 많은 제3세계에서 발생하는 것이기도 하다. 낡은 것과 새로운 것 사이에 어떤 간극이 있을 때, 그 간극이 우리 문화 안에서 공존하며 이런 저런 형태의 갈등들이 발생하고 있고, 이것이 많은 제3세계 국가들에서 현존하는 문제 상황이다.



Q. 물이 흘러가는 영상 안에 또 네모난 박스가 등장해서 그 안에 다른 영상이 들어가고, 영상이 흘러가는 가운데 또 문자가 나오는 식으로 영화의 영상이 짜여 있다. 그러다 보니 어디에서 집중하지 못했는데, 감독이 의도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떤 의미가 있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마지막에 나오는 사진 속 인물들이 왜 특별하게 영화에 기록되었는지도 궁금하고, 제일 처음에 나온 사진 속 인물이 누구인지도 궁금하다.

A. 대답을 하지 않는 방식으로 대답을 해보겠다.

 이 극장 밖에 나가기만 해도, 거리에는 삶의 여러 가지 모습들이 넘쳐나고 있다 굉장히 흥미로운 사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고, 강렬하고 충격적 일들이 동시에 발생하는데 그 모든 것들이 하나하나 의미가 있기도 하고, 인식하는 사람에 따라 의미가 없기도 하다 어쨌든 우리는 그 사건의 일부로 존재하고, 하나하나에 관심을 가진다. 그러나 당신의 그 질문이 유효할까? 어디로 가야 하지, 무엇을 해야 하지의 고민의 그 순간에도 나는 그것들의 일부가 되어 있다. 완전히 그 상황에 집중해서 그 일부가 되기도 하고, 두세가지에 연결되어 그 일부가 되기도 하고, 나 자신의 인식은 각 순간에 따라 달라진다.

 내가 만들고 싶은 영화는 입구와 출구가 많은 영화이다. 관객들이 보면서 각자가 자라온 성장 배경이나 기호, 마음의 상태에 따라 영화 속으로 들어갈 수 있고, 다양한 방식으로 나올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그래서 이 영화는 당장 단기간에 소비되도록 만들어진 작품은 아니지만, 만약 당신이 영화가 좋았다면 당신이 영화를 볼 때마다 새로운 지점을 발견할 수 있는 영화였으면 좋겠다.


 그리고 HD는 다들 아시다시피 그것만의 장점이 있다. 모두가 HD를 쓰기 때문에 그 장점을 잘 알거라고 생각하지만, Hi-8 모두 각자의 장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최근에 나온 것이 더 좋은 것이라고 선형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HD와 Hi-8는 차이는 프레임 자체인데, Hi-8가 훨씬 사각형에 가깝고, HD는 직사각형에 가깝다. 편집을 할 때 번갈아 썼다면 프레임이 변하는 영상이 되었겠지만, 좀 더 유영하는 듯한 이미지를 통해 보완하고자 한 것이 low-high technology를 동시에 사용하면서의 전략이었다.

 그리고 베트남에 시골 마을로 여행을 갔을 때 영화에서 보신 것처럼 페리 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주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차가 너무 많았기 때문에 배에 오르기 위해서 몇 시간이 걸렸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훨씬 기술이 발전해서 이런 배에 차를 싣고 이동하게 되었다고 생각하는데, 반면 그곳의 사람들은 각자의 배를 타고 다니던 시절에는 훨씬 기동성이 뛰어나고,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었으며, 현재에는 오히려 과거의 기동성을 잃어버렸다고 말하더라.

 내가 디지털을 사용하는 방식은 다시 과거로 돌아가는 과정의 하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내가 디지털의 방식이라고 생각하는 여러 가지 것들이 과거에도 사용되었던 것이기 때문에, 과거와 지금을 단절하기 위해 첨단을 사용한다기보다, 오히려 과거로 돌아가고 과거를 살려내기 위해서 디지털을 사용하는 것이 내의 방식이다.

 


Q. 오프닝과 엔딩 부분에서 많은 사진들과 그 이름들이 나오는데 그들은 누구이고 왜 등장하는 것인가.

A. 보통 사람들에게 고정적인 위치를 가지고 있지 않은, 흘러가는 이미지를 보여주면 마치 우리 머리 속에 들어 있는 기억을 보는 듯한 같은 느낌을 받는다. 첫 장면에 나왔던 사진은 제 아버지인데, 이 영화가 완성되던 단계 즈음에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제가 영화를 만드는 중요한 동기의 일부였기도 했는데, 사실 영화를 만들며 아버지 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을 세상에서 떠나보냈다. 마지막에 등장한 사진들은 영화에 등장했던 분들 중 세상을 떠난 분들의 것인데, 영화를 통해 아버지를 포함해서 이들을 향한 하나의 추모의 의미를 담고자 했다.

 ‘아버지’(한글로 또박또박 발음하셨다)라는 단어는 father를 표현하기 좋은 느낌으로 다가오는데, ‘아버지’는 그냥 ‘father-아버지’라는 단어로 지칭되는 단어에 국한되는 존재가 아니다. 아버지는 내가 사랑하고 굉장히 친밀한 관계로 함께 해 온 사람일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의 몸은 역사를 품은 전달체이기도 하다. 광대한 기원으로 돌아간다는 말이 영화에 나오는데, 나는 아버지를 생각할 때마다 베트남으로 돌아가게 되고, 베트남을 생각할 때마다 그 이상의 큰 것들, 때로는 물이나 땅이고 혹은 둘 다, 혹은 산이나 유동성, 고정성에 관한 것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 안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인에 대해 아는가 모르는가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이들을 알아야만 추억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앞서 이야기한 대로 하나하나의 개인이 역사를 전달하는 전달체이기 때문이고, 이 영화 안에서 여러 가지로 방식으로 그들을 ‘기억한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 영화에서 40주년을 기념하는 것도 누군가에게는 베트남 해방 40년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겠지만, 또 한편으로 베트남을 떠난 디아스포라들에게는 베트남을 떠난 지 40주년이 되기도 하고, 제 영화 안에서는 전쟁 후 40년, 혹은 전쟁에서 살아남은 이들의 40년을 추모하기 위한 의미를 지닌다.

 

 그리고 질문해주신 것과 연관시켜 하나 더 말씀드리자면, 영화에서도 얘기되듯 모든 것은 두 가지에서 시작된다. 두 가지의 관계에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은 페미니스트들이 말하는 방식이기도 한데,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가부장제에서는 하나의 중심으로부터 많은 것이 시작한다고 생각하지만, 페미니즘의 시각으로 보면 모든 것을 지배하는 단 하나의 고정적인 것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두 가지의 관계나 균형에서 이야기를 시작하게 된다. 고체나 액체, 유동적인 것, 고정적인 것, 남쪽, 북쪽, 떠남과 돌아옴 이 모든 각자의 다른 힘들의 움직임과 그 운동성이 필요한 것이다. 모든 것이 둘에서 시작하고, 때로 그것을 땅과 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이 생각을 담고 페미니즘의 시각을 반영하기 위해서 베트남이라는 나라를 her이라는 여성형 대명사로 지칭했다.

 


Q. 말하지 않고서 말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영화였고, 동시에 영화를 보고 나서도 내가 많은 걸 놓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편집에 관한 질문을 하나 드리자면, 모든 하나하나의 장면들이 다 의미가 있는 것 같은데, 어떤 기준으로 어떤 작업을 하셨는지 중금하다. 그리고 낡은 것과 새 이미지의 시너지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어떤 생각으로 작업을 했는지도 궁금하다.

A. 말씀해주신 것 자체가 내가 편집이나 영화를 통해 전달하려는 것과 연결되어 있다. 편집은 단순히 어떤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한 유도의 과정이 아니고, ‘개별 이미지의 강렬함’ 자체가 ‘강렬한 이미지’를 담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지라는 것은 어떤 생각이나 느낌에 부합하기 위해서나 그것을 해설하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그 자체로 의미를 인정받을 수 있으면 충분하다. 이미지 영상이 갖는 리듬이 편집에 의한 것이나 미학적인 것이 아니라 관계 자체와 연결된다. 이미지와 이미지가 관계를 맺고 그게 만드는 리듬이나, 각 순간의 사운드 등이 동시에 작용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음악과 텍스트와 이미지가 각각 서로에게 종속적으로 부합하기 위해서, 서로를 해설하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독립적으로 존재하게 하는 것이 내 영화의 작업이다.



글: 자원활동가 기록팀 최지혁 / 사진: 자원활동가 기록팀 조이수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