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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IDF 2016/EIDF 2016 상영작

[EIDF2016 스케치] <슬픈 늑대> Talk with Guest


 2016년 8월 27일(토), 오후 3시에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슬픈 늑대A Wolf in the City>의 TG(Talk with Guest) 행사가 진행되었고, 영화를 제작한 장효봉JANG HyoBong감독과 서진경 PD가 함께 자리했다.

 <슬픈 늑대>는 장효봉 감독의 첫 번째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인데, 유목민의 아들 우네흐가 도시로 길을 나서며 일어나는 상황, 일들을 담았다.

 



Q. 몽골의 유목민이라는 생소한 소재를 다루고 있는데, 어떤 계기로 이들을 대상으로 영화를 제작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감독) : 2007년에 영화에 등장하는 할아버지를 처음 뵈었고, 2008년에 대학 졸업작품으로 이 영화를 제작하며 이분들과 인연 맺었다. 그 후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 듣고 그 아들과 손자는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해서 계속 작업을 진행하게 되었다. 2008년에 찍고 나서 한동안 못 가다가 2014년에 다시 촬영을 시작해서 올해 1월 정도까지 작업을 진행했다.


Q. 피디님께 질문을 드리자면, 작품의 기획을 들었을 때 몽골에 간다는 계획에 놀랐을 것 같은데 감당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지, 제의를 수락하는 데 망설여지는 점은 없었는지 궁금하다.

 (PD) : 저는 13년부터 이 제작 과정에 참여했다. 감독과 대학 동기이기도 했고 졸업 이후에는 사무실을 같이 쓰고 있었는데, 감독이 500만원 규모의 펀딩을 받아와서는 같이 하자고 제안했다. 감독의 열정이 보여 흔쾌히 수락했다.

 

Q. 인류학적으로 접근하는 다큐멘터리들은 한 집단이나 가족을 많이 다루는데, 처음부터 3대에 걸친 가족의 이야기를 다루기 위해 기획한 것인가?

 (감독) : 2013년 말에 다시 이 작품을 기획하면서 어디에 포커스를 맞출지 고민을 많이 했다. 할아버지에 관한 자료영상이 많다는 점이 이점일 수도 있고 어려움일 수도 있었는데, 어느 인물에 중심을 둘지 고민을 많이 했다. 쵤영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시골을 떠나 도시를 향하는) 세대를 거듭해서 일어나는 자연스럽고 우리가 직접적으로 겪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아주 자연스럽게 3대의 이야기로 진행되었다.

 

Q. 몽골이라는 지역 자체도 낯설기도 하고, 몽고모리트Mongomorit 초원 쪽에 사는 가족인 것 같은데, 지리적인 위치에 대한 이야기도 좀 듣고 싶다.

 (감독) : 몽골은 중심부에 울란바토르Улаанбаатар라는 수도가 있는데, 몽골 전체 인구 300만 명 중에서 150만 명이 여기에 살고 있다. 몽고모리트 초원은 울란바토르에서 동북쪽으로 300km정도 떨어진 지역인데, 이들 가족이 사는 지역은 강이 흐르고 뒤로는 나무가 울창하게 자라고 있다. 강이라는 지형 자체가 흔치 않은 몽골이라 할아버지가 그 지역에 자부심 가지고 평생 사냥꾼으로 살았던 것이기도 하다..

 

Q. 할아버지와 관련된 이야기가 초반에 비중 있게 다루어졌던 점이 이 영화 전체의 흐름을 결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 같다. 할아버지가 옛 이야기를 하듯 늑대 몇 마리를 잡았다고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는데 몽골 유목민들에게 사냥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하다. 그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행위만은 아닌 것 같았다.

 (감독) : 할아버지가 보여주는 것은 유목민의 전통적 사냥 형태인데, 마치 우리가 농사지을 때 김매러 가는 것과 비슷한 행동이다. 아주 일상적인 것이고 특히 겨울에 더 빈번한데, 왜냐하면 사냥이라는 것 자체가 자신들의 가축이 늑대로부터 공격을 당했을 때 일종의 경고이자 보복행위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지역에서도 할아버지는 굉장히 유명한 사냥꾼이었다.

 현재 몽골의 사냥은 일종의 레져스포츠로, 울란바토로에 사는 돈 많은 사람이 사냥 자체를 즐기기 위한 형태로 변했다. 영상 속의 할아버지가 전통적인 형태, 의미의 사냥을 한 마지막 사람이었다.

 

Q. 할아버지가 이제 다 끝났다, 사냥이 다 끝났다는 말을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게 어떤 환경적인 요인 때문인지 궁금하다. 늑대가 줄어서, 혹은 유목민 수가 줄어서 사냥 자체가 줄은 것인지 아니면 다른 어떤 요인이 있는지 알고 싶다.

 (감독) : 할아버지는 자신이 노쇠해서 사냥을 지속할 수 없다는 의미로 한 말이기는 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듣고나서 작품 만들면서, 그들을 지켜보면서, 할아버지가 하는 방식이 대를 이어 진행되지 못하는 이유는 그 행위를 하려는 유목민이 없다는 것이기 때문에, 저는 어쩌면 유목민들의 전통적인 사냥 행위 자체의 종결을 말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Q. 제목에 관련해서도 설명해주실 부분이 더 있을 것 같은데, 우선 슬픈 늑대는 몽골 유목민족 중에서도 남성을 염두에 두고 지은 것 같다. 그리고 영문 제목 <A Wolf in the City> 의미도 따로 있을 것 같다.

 (감독) : 슬픈 늑대는 <슬픈 열대>에서 따온 제목인데, 내가 감히 그 사람들이 슬프다, 그렇지 않다라고 정해서 말할 수는 없을 것 같고, 한 세대 삶의 형태의 종말 자체가, 아주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지만, 그 형태에서 우리가 가질 수 있었던 인간의 기본적인 조건들의 상실의 부분들을 착안해서 슬프다는 수식어로 표현했다. 늑대는 몽골 유목민들이 늑대의 후손이라고 스스로를 말하는 점에서 따 왔다.

 영문 제목인 <A Wolf in the City>는 도시에 있는 늑대들이라는 의미대로, 할아버지도 결국 도시에서 돌아오고, 아들도 도시에 갔다가 오고, 손자는 아예 도시로 가는 상황에서, 도시에 늑대가 존재한다는 것이 사실은 약간 힘들기 때문에 자기들이 지니고 있던 정체성을 상실해 가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조건 속에 놓인, 거부할 수 없는 조건 속에 놓인 유목민의 삶 표현하고 싶었다.



Q. 작업 시작을 2008년에 했다고 하는데, 초반부에는 2005년에 촬영한 영상도 나온다. 그건 어떻게 찾게 된 것인지 궁금하다.

그리고 많은 이런 유형의 다큐멘터리들이 가족애, 자신들의 것을 전해주는 과정과 방식 등을 주된 메시지로 전달하곤 하는데, 이 영화는 굉장히 많은 돈과 시간을 들여 촬영한 것에 비해서 뭔가 하나로 규정되는 뚜렷한 메시지가 없다. 이 다큐가 어떤 의의를 가질까.

 (감독) : 사냥꾼 할아버지는 워낙 유명하신 분이셔서, 내가 만나기 전에도 많은 일본과 한국의 매체에 노출되어 있었다. 그분을 촬영한 분들 중의 한 분로부터 필름을 구해 영화에 사용했다.

 두 번째 질문은 어려운데, 사실 이 영화는 어떤 영화이고 어떤 의미를 갖는다고 제 입으로 내뱉어버리기가 조심스럽다. 이 영화에서 제가 신경을 쓴 부분은 별로 극적이지 않은 이야기가 진행될 수 있는데, 그것들이 편집되는 방식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확실하게 이 작품의 의의가 무엇이라고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편집되는 방식들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만들면서, 저도 이게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 이야기인가, 혹은 할아버지와 삼대의 화해의 이야기인가 하는 식으로 생각해보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이들이 앞으로 겪을 상황에 대한 비극적인 암시가 좀 더 작품 전체를 통해 느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Q. 어떤 의미에서 비극적인가?)

 어떤 것이 더 나은 삶이라고 규정지어 말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계속 만들어가는 세상은 우리를 계속 분절시키고 있음이 이 가족들을 통해 드러나기를 바랐다.

 (Q. 영화 속 사람들은 어떻게 지내는가?)

 아이도 백내장 수술이 끝나서 내년부터 학교에 다닐 예정이고, 작업을 마친 후로 아직 영상에 나오는 사람들을 다시 만나지는 못했다.

 

Q. 유목민족들이 도시로 이주하는 경향이 많아지는 것에 관한 이야기를 더 듣고 싶다.

 (감독) : 유목민들이 사는 지역에 젊은, 30-40대 이하의 세대는 이미 찾아볼 수 없었다. 한국 농촌의 상황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유목민의 경제 구조로는 현대 사회를 살 수가 없기 때문에, 막내 아이가 도시의 학교로 입학을 하기도 하고, 이 가족의 유목 형태는 아버지 우레 대에서 끊어질 것이다. 두 아들이 모두 유목 생활을 하지 않을 개연성이 크기 때문이다.

 

Q. 은행에 가는 장면 자주 등장하고, 감독님이 방금 유목민의 형태로 삶을 이어가기 어렵다고 이야기했는데, 유목민들이 실질적으로 대출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감독) : 현금이 없기 때문이다. 유목 생활로 보충할 수 없는 밀가루나 소금 같은 것들은 돈으로 사야 하는데, 그렇다고 가축 자체를 팔아버릴 수는 없다. 예를 들어 학교를 가게 되거나 집안에 행사가 있으면 목돈이 필요하게 되는데, 이런 난관에 부딪힐 때에 대출을 받게 된다. 유목민들은 상대적으로 관대한 대출 조건을 적용받기 때문이기도 하다.

 

Q. 2008년부터 작업을 했다고 했고, 화면에 나오는 할아버지가 다른 매체에서도 소개되었다고 말씀하셨다. 할아버지를 알게 된 게 그런 매체들을 통해서인지 아니면 개인적인 친분을 통해서인지 궁금하다.

 (감독) : 2007년에 EBS에서 일하던 중 자연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러 몽골 몽고모리트 초원에 갔다. 늑대를 찍으러 갔는데 계속 실패하다가, 현지에서 늑대의 왕이 있다고 소개를 받아 그 할아버지를 만나게 되었다. 할아버지가 특정한 지역에서 기다리면 늑대가 나타날 것이라고 알려줬는데, 실제로 일주일 만에 늑대가 나타나서 촬영을 마칠 수 있었다. 그 일 이후에 유명한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Q. 통역은 어떻게 했는지 궁금하다.

 (감독) : 2008년의 첫 촬영부터 함께하고 있는 몽골 친구가 있는데, 촬영할 때 늘 함께 있었다. 또 이 가족과 나 사이의 연락을 이어주는 역할도 해주고 있다.

 


Q. 서진경 PD님께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 현장에서의 어려움이나, 에피소드가 궁금하다.

 (PD) : 현장팀이 2-4명씩 몽골에 들어가서 촬영을 진행했는데, 주인공 가족의 게르 옆에 텐트를 치고 같이 살았다. 한겨울에 텐트에서 자는데 나무 난로라 2시간에 한번씩 연료를 채워야 해서 교대로 불침번을 서며 잠을 자기도 했는데, 추위가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

 (Q. 어려운 환경 때문에 감독을 원망하지는 않았는가)

 (PD) : 텐트에서 잘 때가 아니라 몽골에 도착하자마자 원망했다.(웃음)

 

Q. 몽골을 이야기할 때에 많은 사람들이 초원에서 별을 보는 장면을 이야기하는데, 다큐멘터리 영화라면 자연을 더 많이 찍을 수도 있었을 것이고, 밤에 촬영을 할 때에 그런 장면 찍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든다. 왜 아름다운 자연을 보여주는 장면은 없었는지 궁금하다.

 (감독) : 초원 촬영의 목표는 절대로 이 영상이 아름답게 보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어쩔 수 없이 배경으로 쓰인 초원들 때문에 예뻐 보일 수 있는 장면들이 있지만, 그냥 그림만 봤을 때, 예쁜 그림들은 많았지만 제가 다 배제했다. 내가 현지에서 그 사람들의 삶을 느끼면서 경험했던 것은, 우리가 밖에서 그 환경을 보면 아름다울 수 있지만, 거기서 매일을 산다면 그곳은 아름답게 보일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인간에게 가혹한 곳이었고 유목민들은 경치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 삶을 산다. 그래서 초원이 아름답게 보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그럼에도 아름다웠던 장면들은 촬영감독님이 워낙 아름답게 촬영하셔서 그런 것이다.

 

Q. 초반에 아버지가 180만원을 은행에서 빌리는데, 대출한 이유가 도시로 나가기 위해서였던 것인가.

 또 외부자의 입장에서 보면 슬프다는 표현을 붙일 수 있을 만큼 유목 문화가 사라지는 게 안타까운데 몽골 내부에서는 어떤 분위기인가, 그리고 정부의 입장은 어떤가.

 (감독) : 돈은 오토바이를 사고 싶어서 빌린 것인데, 나중에 물어보니 한 푼 두 푼 쓰다 보니 정작 오토바이는 못 샀다고 하더라. 몽골 정부는 유목민을 유지하기 위해 굉장히 애를 쓰고 있다. 그러나 유목 생활이 그런 방식으로 유지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Q. 정부 지원금을 주는 것인가?)

 울란바토르로 왔다가 자기 고향으로 돌아간다면 정부에서 지원을 해 준다. 실제로 도시에서 2-3년 살다가 돌아가서 고향에서 노후를 보내려고 계획하는 사람도 꽤 있기는 하다. 그러나 대세는 절대 그렇지 않다.

 

Q. 2009년 쯤에 몽골에 3주 정도 여행을 갔었다. 초원에 있는 사람을 만났을 때와 도시에 있는 사람 만났을 때의 인상이 달랐는데, 초원의 사람들은 어렵게 살아도 건강한 인상을 받았고, 도시의 사람들은 거칠고 불안정하다는 이미지였다. 감독님이 최근에 가서 봤을 때는 어떤 분위기인지 궁금하다. 그리고 다음 작품에 대한 구상에 대해서도 듣고 싶다.

 (감독) : 도시에 사는 사람들 중에서도 좋은 교육을 받고, 좋은 직장을 가진 사람은 몽골인의 대범함 보이기도 하고, 살기 어려운 사람은 누군가에게 친절하고 편안할 수 있는 인상은 되지 않을 것이다. 초원의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자기의 삶이 가축이나 기타 요소들이 안정적이라면 인상이 좋고 편안할 것이고, 반대로 가축 잃어버리는 등 삶을 꾸려가는 상황이 좋지 않으면 인상이 나쁠 것이다. 도시에 사느냐 초원에 사느냐의 문제로 생각할 것이 아니고, 자기의 삶이 얼마나 안정되어 있느냐의 문제이다.

다음 작품에 대해서는 별다는 계획이 없다.

 

Q. 앞으로 어떻게 영화를 홍보할지, 극장 개봉이나 다른 상영회 계획에 대해 듣고 싶다.

 (PD) : 올해 10월에 EBS에서 우선 방영될 예정인데, 이번에 상영된 것과는 다른 버전으로 만들 것이니 시간 내서 찾아봐 주셨으면 좋겠다. 이후에는 해외나 국내 영화제에 출품하고 그 이후에 극장 개봉에 관해서도 이것 저것 알아볼 예정이다.

 (Q. TV판으로 바꿀 때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PD) : 우선 분량이 50분정도로 줄고, 편집 방식이 더 친절해질 것이다.

 

Q. 독특했던 부분이라고 느꼈던 것이, 초원에서는 바람 소리가 들어가 있고, 기술 학교에서는 기계음이 들리고, 중간에 아이들이 도시로 나갔을 따는 아무런 소리가 안 들리다가, 다시 학교로 돌아오면서 그 웅웅하는 사운드가 다시 나기 시작한다. 영화 음향의 요소들 중에서 앰비언스 사운드Ambience Sound(: 자연적 배경 사운드)의 요소로 삽입된 것 같은데, 어떤 논점을 가지고 작업을 한 것인지 궁금하다.

 (감독) : 아주 영화를 깊게 감상해 주셔서 감사하다. 말씀하신 대로 도시에서와 초원에서의 앰비언스 사운드의 차이를 명확하게 줬다. 사실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소리를 삽입했다. 도시 장면이 나올 때에서는 끊임없이 펜이 돌아가는 소리나 잡음이 들어갔다. 사람들이 너무 익숙해서 인식하지 못하는 소리를 일부러 집어넣었고, 초원에서는 바람에서의 소리를 많이 집어넣었다.

 


Q. 영화 전체가 극적인 구조를 통해 관객들의 감흥을 조장하는 요소 없었던 것 같다. 감독의 직접적인 내레이션도, 직접적인 대면 인터뷰도 없고, 배경 음악도 없는데 이런 요소들을 다 배제한 것도 편집의 원칙이었나.

 (감독) : 내레이션 배제가 내가 세운 첫 번째 원칙이었다. 편집 과정에서 세운 몇 가지의 원칙이 있는데, 예를 들어서 도시에서는 끊임없이 점프 컷으로 이어가고, 절대 인과관계에 의해 커팅을 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익숙한 드라마 구조를 기대했다면 영화를 보기 힘들 수도 있는데, 다른 방식으로 보면 그런 재미를 찾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면서 편집을 했다. 영화제에 상영되는 영화는 제가 편집해도 누가 뭐라고 안하기 때문에 더더욱 내 마음대로 편집했다.

 다만 아까 이야기했던 TV 상영 버전의 영화에서는 관객들이 익숙한 방식으로 영화를 볼 수 있게끔 친절한 방식으로 편집할 것이다. 사실 오랫동안 촬영한 만큼 영상 자료도 굉장히 많이 쌓여 있는데, 이걸 가지고 여러 버전의 편집을 해보고 싶다. 내 첫 영화로서 굉장히 소중한 경험이자 학습의 기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단 이번 버전은 제 고집을 많이 부린 편집을 했다.

 

Q. 드라마틱한 구조를 많이 빼려고 했다는데, 결국에는 갈등 구조가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대표적으로 아버지와 아들 우레가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서 둘의 입장차이가 영화 속에서는 큰 충돌 없이 넘어간 것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실제로 많은 갈등이 있었는지, 영화 속에서 장면들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감독) : 갈등이 발생하는 양상이 그렇게 과격하지는 않았다. 물론 앞으로의 삶의 형태를 선택함에 있어서 고민이 많이 되는 부분이기는 했을 것이다.

 

Q. 아들이 기숙학교에서 살게 되면서의 일들이 많이 비춰지는데, 이 안에서 보면 여자 학생들이 많지 않고, 가끔씩 일부만 등장한다. 여학생들 중의 일부도 유목민 출신인 것 같은데, 실제로 그 학교의 남녀 성비나 학생들이 기술을 배우려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감독) : 성비는 거의 남녀가 반씩 섞여 있고 남자가 조금 많은 정도이다. 아들이 다니는 학교는 일반 고등학교가 아니라 직업학교인데, 16세부터 2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학생들이 함께 학교를 다니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흔히 하는 말 중에 ‘너 기술이나 배워라’가 있는 것처럼, 이들에게도 기술을 배우는 것이 도시에서 살아가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이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대부분 시골 출신의 친구들이고 유복하지 못한 상황에서 자랐다. 고등 교육을 받기 힘든 환경에서, 도시에서는 살고 싶고, 도시에서 살 방법을 찾다가 모인 아이들의 모습이 이 학교에서 나타난다.

 

Q. 전체적으로 남성중심적인 사회를 그렸다는 생각이 든다. 어머니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 어머니의 일과가 머릿속에 딱 그려지지는 않는다. 어머니의 여성상이 유목민족 삶에서 드러나는 것이 적은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감독) : 나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여성의 이야기는 거의 쓰지 못했고, 남성 중심적이고 가부장적 성격을 띠는 작품이 된 것 같다. 나도 아쉬운데, 애초에 할아버지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내가 잘 할 수 있는, 잘 느껴지는 부분 위주로 촬영하고 편집했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영화가 진행된 것 같다.

 

Q. 할아버지가 도시로 가서 삶을 마감하는 과정의 구체적인 이야기가 궁금하다.

 (감독) : 할아버지는 도시로 가서 그 울타리 밖으로 나가지 못해서 집 안에서만 지냈는데, 왜냐하면 골목을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거리를 돌아다닐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집 안에만 머무르다가 돌아가셨다.

 (Q. 도시에서 떠나고 나서도 게르에 사는 것 같은데 본인이 원해서 그렇게 한 것인가)

 (감독) : 정식 집을 구하지 못하면 도시 외곽에 울타리 치고 게르를 치고, 마치 옛날 우리나라의 판자촌처럼 살고 있다.

 

Q. 다큐멘터리 영화라고 하는 것이, 이런 식으로 연출을 하는 게 아니라, 원래 있는 이야기를 가지고 편집을 해서 자기가 이야기하려는 내용을 말하려 하는 것이 맞는지 궁금하다.

 (감독) : 말씀하신 대로, 연기자를 쓰지 않고 실제 존재하는 것들을 촬영을 해서 감독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을 감독의 해석으로 보여주는 것이 다큐멘터리이다.

 (Q. 실례되는 이야기지만, 인류학적 다큐멘터리를 촬영할 때, 간혹 재연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혹시 이 영화에서도 재연해서 촬영한 장면이 있었는가?)

 (감독) : 만약 요구해서 찍었더라도, 그걸 영화에 사용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첫 번째의 상황이 기록되지 않으면 뒤의 장면들도 자연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Q. 두 분이 각각 이 영화에 대해 애착을 갖는 장면을 하나씩 말씀해 주시기 바란다.

 (PD) : 한 장면을 꼽기가 어렵다. 우레가 자기 아들한테 자기 동네를 소개해 줄 때나, 엄마가 (아들의 기숙사에 방문해서) “아들 깔개가 얇네”라고 말하는 장면이 좋았는데, 지금도 인상깊지만 10년이나 20년 정도 시간이 지나고 보면 공감이 많이 되는 장면일 것이다.

 (감독) :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끝나고 초원으로 돌아왔을 때의 첫 컷을 꼽고 싶다. 새벽에 게르의 문이 열리고, 아버지가 일 하러 가고, 어머니가 다시 그를 쫓아나가는 장면이다.

 

Q. 왜 우레 가족은 도시로 갔다가 초원으로 돌아왔는가

 (감독) : 거기서 사는 게 불가능해진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계속해서 빚이 늘어가는 상황에서 일자리가 제대로 잡히지 않아 수입이 없는데다가, 도시라는 시스템 자체가 지출을 강요하고 있어서, 다시 초원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 마무리 인사

(감독) : 진지하게 영화에 대해 생각해주셔서 감사드리고, 함께 고생했던 김상진 촬영감독님을 소개 해드리고 싶다. 한겨울에 영하 30도의 추위를 속에서도 카메라를 들고 있어야 해서 말로는 손가락을 끊고 싶다고 하면서도, 끝까지 촬영을 해주셨던 모습이 기억이 나는데, 정말 감사하다.

(PD) : 영화를 봐주셔서 감사하고 앞으로도 좋은 작품 계속해서 만들겠다.

 

글: 자원활동가 기록팀 최지혁 / 사진: 자원활동가 기록팀 이민수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