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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IDF 2017/EIDF 2017 상영작

[EIDF 2017 스케치] <버블 패밀리 Family in the Bubble> Talk with Guest

안녕하세요! 바로 어제인 8 22일 화요일에 제14회 EBS국제다큐영화제(EBS International Documentary Festival)가 아트하우스 모모에서도 시작되었습니다. 다양한 상영작들과 함께 오후 7시<버블 패밀리>상영이 끝난 후 관객과의 대화(Talk with Guest) 프로그램이 진행되었습니다.

 

  영화는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살고 있다는 마민지 감독의 나레이션과 함께 시작합니다. 산업화와 개발정국으로 인해 시골에서 도시로 인구가 이동하는 이촌향도 현상과 함께 서울은 급격하게 그 규모가 팽창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서울의 부동산은 수십 년 사이에 수백 배가 치솟았고 마 감독의 부모님 역시 울산에서 서울로 올라와 이 대열에 합류하게 됩니다. 사업이 계속해서 잘되던 80년대, 90년대 초반을 지나 97 IMF와 함께 마 감독의 부모님은 쌓아 올렸던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하지만 여전히 부동산 대박에 목숨을 걸고 있는 부모의 아이러니한 판타지를 카메라는 쫓아갑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통해 사회적인 메시지를 가져오는 감독의 메시지를 통해 우리 가족, 부모님, 그리고 나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주는 작품입니다.

 

이번 상영에서는 마민지 감독의 아버지가 관람을 하셨는데요, 감독님과 소통이 많은 어머니와는 다르게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의 표본인 아버지는 이번이 첫 관람이라고 하셨습니다. 마치 스크린에서 막 찢고 나오신 듯한 아버지의 관람은 관객과의 대화 프로그램을 더욱 빛나게 해주었습니다.

 

상영이 끝나고 바로 이어진 관객과의 대화(Talk with Guest)에는 마민지 감독과 변성찬 평론가가 자리하여 관객들과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요, 그 중 몇 가지 Q&A를 공유할까 합니다.

 

 

-변성찬 평론가와 마민지 감독의 대담

 

왠지 이 영화는 부모세대하고 자식세대가 같이 보면 이야기 할 것이 많을 것 같은 영화긴 한데, 주로 마 감독님하고 비슷한 연배의 관객분 들이 많이 계신 것 같네요. 이 시간은 여러분을 위한 시간입니다. 제가 감독님께 이야기를 여는 의미에서 한, 두 가지 질문을 드리고, 여러분에게 시간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Q. 사실 가족을 촬영한다는 게 쉬워 보이면서도 어려운 일인데요, 구체적인 계기가 있었나요?

 

A. 두 가지 이야기가 있는데요, 오늘 아버지께서 처음 영화를 보러 와주셨어요. (박수) 아버지와 스치듯 종로에서 지나가는 장면이 영화에서도 나와 있어요, 아버지는 아마 모르셨을 것 같아요. 제가 인사를 드릴 수가 없는 상황이었고 전화를 걸었는데도 없는 번호라고 나왔기 때문에. 제 개인적으로는 아버지와의 관계 속에서 종로에서 마주쳤던 이 일이 계기가 되었던 것 같고요. 리서치를 하다 보니 가족의 이야기가 잠실 개발사와 맞닿아 있음을 알게 되어 영화로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Q. 저는 이 영화를 두 번째 보면서 가족의 범위를 넘어서서 부동산과 관련하는 조사를 굉장히 많이 했다고 생각했어요. 특히 부암동에 집을 지을 수 없게 된 것에 대한 당시 뉴스 푸티지를 보면서 굉장히 놀랐어요. 조사 과정에 대해서 좀 알고 싶어요.

 

A. 조사는 요즘은 강남 관련해서 책이 많이 나오고 있는 편이긴 한데, 2013년에는 그러한 자료들이 거의 없는 편이었어요. 네이버 옛날뉴스의 키워드를 조합하고, 제가 찾은 논문과 발굴한 자료들을 통해서 저 나름의 논리를 많이 만들었고요. 아카이브 자료 같은 경우는 방송국 아카이브에서 일했었던 자료를 통해서 어떤 자료가 어디에 보관되어 있는지 알았기 때문에 접근하기가 쉬웠어요. 오히려 자료가 너무 많아서 편집자가 곤혹스러워 했었어요. 몇 십 시간에 가까운 옛날 자료를 가지고 거시적인 부분과 디테일을 맥락 속에서 보여줄 수 있는 자료를 찾으려고 많이 노력했었습니다. 부암동 같은 부분은 이러한 조사과정에서 우연히 얻어 걸린 자료라고 볼 수 있어요.

 

변성찬 평론가 - 어떻게 보면 가계가 기울게 된 가장 결정적인 부분이긴 한데 연출자 입장에서는 심봤다이런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자기 가족을 다루는 영화를 만들거나 이럴 때 감독님들이 분열증세가 나타난다고 자주 하더라고요. (웃음)

 

 

관객과의 대담 (Q&A)

 

 

Q. 영화 너무 잘 봤고요. 어머니도 영화를 보셨나요? 보셨으면 반응이 어땠는지 궁금하고요. 또 편집하며 가족의 과거 모습을 쭉 봤을 때 기분은 어떠셨나요?

 

A. 어머니께서는 전주영화제 때 첫 GV에 오셨었어요. 그 때 관객 분들이 영화 출연해주어서 고맙다고 많이 우셨어요. 저랑은 사진을 안 찍고 어머니하고만 찍더라고요 (웃음). 어머니도 처음엔 조금 부끄러워하시기도 하고 가슴 아파 하셨는데 관객 분들이랑 만나는 경험들이 오히려 이게 우리 가족의 이야기뿐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이야기라고 많이 느끼셨나 봐요. 그래서 이후 다른 상영회 때는 친척들도 모두 데려와서 총 3번을 보셨고요. 오늘은 또 오신다는 걸 제가 말렸어요. (웃음) 사실 아까 평론가님께서 말했듯이 저 또한 분열증세가 오는 것 같아서 단 한 번도 울거나 힘들어 하지 않았고 빨리 끝내고 싶었어요. 

 

Q. 두 가지 질문을 드리고 싶어요. 첫 번째로 리서치하면서 비슷한 이야기를 가진 분과 만나보셨나요? 두 번째는 후반부에 아버지의 통장을 가져가는 장면이 나오는데 앞으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서 가져가신 건가요?

 

A.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 전주영화제에서 저랑 비슷한 또래와 경험을 가진 분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어요. 제가 처음에 영화를 만들기로 생각한 또 다른 이유는 학교 수업에서 (교수님이) 너희 또래에게 한국사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어떤 사건이 있느냐 물어 봤을 때 전 그게 IMF라고 생각했었거든요. 또 태국 감독 분들을 만났을 때, 사실은 IMF가 태국발 위기에서 비롯된 거잖아요? 태국에서는 이를 똠양꿍 크라이시스라고 부르는데 저희 가족 이야기와 똑같은 경험을 한 태국 분들도 만나고 그랬어요.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 아니요, 가족의 경제를 책임 못 지고 있어요 (웃픔). 통장을 가져간 이유는 아버지가 또 다른 곳에 돈을 사용할 까봐 제가 금고역할을 하려고 가져갔어요.

 

 

Q. 전 영화를 보면서 이 작품이 가족을 이해하기 위해서 시작했다고 느꼈는데, 제작 과정에서 가족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A. 처음에는 사회 구조가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돌아보기 위해서 시작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사실은 부모님을 좀 더 이해하고 싶은 마음에 영화를 찍은 것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마음으로 이해되는 것과 머리로 이해되는 것이 분리되기도 하잖아요. 영화를 찍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러한 시대의 흐름 속에서 이렇게 할 수 밖에 없었구나, 그렇게 이해했다고 생각 했어요. 그런데 최근에 편집이 모두 끝나고 아버지와 다툰 적이 있어요. 그 때 제가 영화 속 모습에서 분리되면서 오히려 내가 영화 이후의 삶에 대해서 고민을 별로 하지 않고 영화를 제작 했구나,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가족과의 관계에 대해서 더 생각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Q. 연출자로서 영화를 찍는 것과 가족을 촬영하는 것은 딸로서 다가가는 거잖아요. 혹시 연출자와 딸의 입장이 충돌되는 점이 있었는지 궁금하고, 촬영 시에 특별히 힘든 점이 있었나요?

 

A. 두 가지가 약간 연결되어 있는 부분인 것 같은데요. 처음엔 제 자신을 셀프 카메라로 찍을 생각은 전혀 없었고 관찰자적 입장에서 거리를 두고 가족을 바라보고 싶었던 마음이 컸었는데, 영화 안에서의 서사구조도 그렇게 되어 있지만 중반부터는 저의 모습이 많이 등장하게 되었어요. 그 즈음부터 단순히 캐릭터뿐만 아니라 제가 주도적으로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고 감독이 무언가 수행하는 다큐멘터리라는 생각도 많이 했어요. 이를 테면 길동의 땅을 찾으러 어머님과 같이 간다든가 제 땅을 보러가는 이런 장면들은 그런 고민들 속에서 나온 장면 들이었어요.

 

 

Q. 놀랐던 점이 연기하시는 것처럼 부모님이 카메라 앞에서 자연스러웠던 점이에요. 그리고 감독님이 직접 작품 안으로 들어온 부분은 어떤 경험이었나요?

 

A. 처음엔 어머니가 엄청 싫어해서 집도 치우고 화장하고 어떻게 찍힐지에 대해서 많이 고민했던 것 같아요. 아버지는 처음부터 크게 신경쓰쓰시진 않았구요.  그런데 오히려 서울 머니쇼에는 어머니가 꼭 오늘 촬영을 해야 한다고 저를 끌고 갔었어요. 저는 그 때 캐나다에서 막 돌아와서 시차적응 하고 있었는데 저를 새벽부터 깨웠죠. 처음 3-4개월간은 제 얼굴을 모니터링하기가 너무 싫었어요. 시간이 지나고 모니터 속의 캐릭터와 현실의 나를 분리하면서 좀 편해졌죠. 

 

 

변성찬 평론가 Q. 홈비디오 영상 중 어떤 맥락에서 독수리 오형제 부분을 쓰게 되었나요?

 

A. 홈비디오는 대부분이 편집자가 넣은 영상이에요. GV때마다 어떤 맥락에서 홈비디오 영상을 넣었느냐 하는데 그런 것들은 편집자가 넣은 영상이고요. 저도 노래방 부분은 어떻게 사용할지 마지막까지 고민하였는데 편집자가 강력하게 추천해서 넣게 되었어요. 사실 노래가사가 앞의 맥락과 연결이 되어서 한국어를 전혀 모르는 편집자가 이걸 추천하였는지 놀랍기도 하고 그래서 넣었어요.

 

 

Q. 그 장면하고 대응이 되는 게 아버지의 월악산 독창 부분인데 그거는 어떻게 선택하셨나요?

 

A. 사실 아버지가 노래하는 장면은 어떻게든 넣고 싶었어요. 재밌는 장면이기도 하고, 그리고 아버지 노래하는 모습을 편집하면서 따로 듣기도 했었어요. 집에 돌아가는 장면에 우연히 얹게 되었는데 너무 잘 어울려서 넣었어요. 가사도 그렇고..

 

 

Q. 다큐가 가족얘기와 부동산 버블과 맞물렸잖아요. 이렇게 봐줬으면 좋겠다하는 부분이 있었나요? 

 

A. 엔딩 부분에 제가 땅을 찾아가면서 저의 욕망을 보여주잖아요. 구조 속에서 개인이 휘둘릴 수도 있지만 개인이 가지고 있는 욕망들이 노출 되었을 때는 다소 이기적으로 혹은 자본 친화적으로 쉽게 변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사실 저도 땅에 대해서 전혀 기대를 안했는데 막상 땅을 찾아가보니 저도 모르게 계속 웃음을 짓고 있기도 했고, 편집에서는 잘렸지만 제가 춤추고 소리 지르는 부분도 있었어요. 과거를 투자해서 미래에 기대를 하는 현실과 내 안의 욕망에 대해서 관객 분들과 나누고 싶은 바람이 있었습니다.

 

마민지 감독님 - 덧붙이자면 GV 관객 분 중에 그 땅에 살고 계시는 분이 있었어요. 땅값이 오르는 중이라 했고요 (행복) 그 분의 어머니도 그 쪽 땅을 구매했다고 합니다.

 

 

 

 

Q. 일단 아까 감독님도 말씀 하셨지만 뒤로 가면 갈수록 연출자에서 영화 속 인물로 수행적인 물로 변화하는데요.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이 가족사진을 찍고, 어머니에게 카메라를 넘기는 장면이 있었어요. 마지막의 카메라를 넘기는 장면은 사전에 연출한 장면인가요?

 

A. 그 장면은 100% 즉흥적으로 찍었어요. 사실 처음에 영화를 찍어야겠다고 생각했던 이유가, 예전에 어머니가 사용하고 버려뒀던 카메라가 집에 있었어요. 10년 정도 버려져 있던 카메라를 을지로에 가지고 가서 수리를 하고 여기저기 사진을 찍으면서 영화과에 입학하게 되어서 이었거든요. 그런 점에서 어머니의 영향이 되케 컸었던 것 같아요.

 

 

Q. 중간에 말씀하시는 것 보면 편집자 이야기가 많이 나오잖아요. 그게 어떻게 보면 두 번째 작품 만에 거장들이 함께하는 전문 편집단과 함께하게 된 셈인데, 외국인 편집자와 함께한 경험에 대해서 얘기를 듣고 싶어요.

 

A. 처음에 영화 이야기를 단편부터 시작했기 때문에 이걸 어떻게 이끌어 나가야할지, 제작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 지식이 없었던 상황에서 막막했었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여러 분들의 도움을 받게 되었고,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까요, 나중에는 펀드가 없어서 힘들었던 찰나에 해외 방송사와 연결이 되어서 공동제작을 하게 되었어요. 후반 제작비가 전혀 없던 상황에 핀란드의 편집자가 구해졌어요. 편집자 분이 한국에 방문해서 3-4개월 제작에 도움을 주었고 나중에는 스카이프로 6-7개월 동안 같이 작업을 진행할 수 있었어요. 처음엔 영어로 진행하는 게 많이 곤혹스러웠지만 인간적으로 너무나 많이 가까워지면서 별 문제 없이 작업했어요. 외국인이었을 뿐이지 한국 스탭과 작업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어요. 

 

 

Q. 차기작을 준비 중인 게 있나요?

 

A. 사실 주변 분들이 쉴 때 잘 쉬어야 된다, 이런 말씀을 해주어서 지금은 차기작에 대한 고민 없이 잘 쉬고 있고요. 제가 도시 개발이나 도시 공간에 대한 관심이 많은 만큼 아마도 차기작 또한 이쪽에 대한 단편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는 있습니다. 지금은 윤가은 감독님의 단편을 도와주면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할 수 있었던 덕인지 많은 질문과 답변을 마치고 관객과의 대화 시간이 마무리 되었습니다. 이 영화를 접하고 나서 바라본 오늘날 서울의 발전은 수많은 평범한 가정의 피 땀 어린 노력의 결과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거의 찬란했던 영광을 뒤로 하고 현재는 월세와 빚 갚기도 어려운 상황에 처한 감독의 어머님은 사람 인생이라는 게 잘 될 때가 있으면 이렇게 살 때도 있는 거지, 그러면서도 곧 나아질거다 라는 희망을 항상 갖고 살아야해라는 메시지는 저에게도, 그리고 영화를 시청하는 모든 관객에게 여운이 남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글: 자원활동가 기록팀 김태형, 사진: 자원활동가 사진팀 박채원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