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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IDF 2017/EIDF 2017 상영작

[EIDF 2017 스케치] <기록작가 하야시 에이다이의 저항 The Old Writer: Documenting Hayashi Eidai> Doc Concert

 

벌써 EIDF 2017, 전체 1주일의 여정 중 네 번째 날을 지나고 있습니다.

오늘 메가박스 킨텍스에서는 <아시아의 오늘> 섹션에 출품된 작품, 니시지마 신지 감독의 <기록작가 하야시 에이다이의 저항>(이하 <저항>)의 다큐 콘서트가 진행되었습니다.

다큐 콘서트는 다큐멘터리를 사랑하는 관객들에게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오는 제14EBS국제다큐영화제부터 새롭게 시작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앞으로 다큐를 제작한 감독과 함께 국내외 명사들, 관객이 함께 모여 다큐멘터리에 대한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교류와 창조의 장이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오늘의 다큐 콘서트는 이 작품을 처음으로 한국에 소개한 일본 릿쿄대학 이령경 교수의 사회로 진행되었습니다. 니시지마 신지 감독, 그리고 하야시 에이다이와 오랜 친분을 갖고 있는 손님으로서, 아사히신문 기자인 우에무라 다카하시씨와 재일교포 피아니스트 최선애씨가 함께 자리하였습니다.


 

● <기록작가 하야시 에이다이의 저항>이 한국에서 상영되기까지


이령경: 사실은 제가 작년 12월에 도쿄에서 이 영화를 보고 후쿠오카로 간 것이 오늘 이 자리를 기획하는 일의 시작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이 영화를 보여드릴 기회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습니다. 이 자리에 와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일본에서도 총 열세 분 정도가 이번 영화제에 참가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배급사 관계자뿐 아니라, 하야시씨의 투쟁을 함께 하고 옆에서 응원했던 분들도 함께 해 주셨습니다. 한국에서 상영하기로 결정되었을 때 하야시씨만큼이나 기뻐했던 분이 니시지마 감독님이신데요, 먼저 감독님의 소회를 한 번 들어보겠습니다.

 

니시지마 감독: 니지시마 신지입니다. 정말 반갑습니다. 얼마 전에 <군함도>라는 영화를 보고 와서 사실은 조금 복잡한 기분입니다. 많은 한국 사람들이 일본에 끌려와서 가혹한 노동 착취를 겪어야 했었죠. 그러나 전쟁이 끝난 후, 많은 일본 사람들은 그 시대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시대의 기억이 점점 일본에서 사라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니시지마 감독: 하야시 에이다이씨는 일본에서도 가장 강제노동의 강도가 가장 셌던 치쿠보라는 지역에 사셨습니다. 그곳에서 한국과 일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에 대해 평생을 바쳐 기록을 했고, 그 기록은 우리가 역사에서 기록을 통해 배울 것이 얼마나 많은지, 또 그렇게 배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일본은 이야기하고 싶어하지 않고, 숨기고 싶어합니다. 그 시대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한국과 일본이 공유함으로써, 장래에 두 나라의 관계가 개선될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한국 관객분들께서도 오늘 함께 영화를 봐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하야시씨는 아주 소박하게, 묵묵히 기록하는 일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 사실을 여러분들이 잊지 않아주셨으면 합니다.

 

 

● 하야시 에이다이의 투쟁을 다큐멘터리로 만들기까지


  Q. 지금 이 영화의 내용은 일본 정부에서도 감추고 싶어 할 텐데, 그리고 다른 일본인들도 그럴 텐데. 이것을 영상으로 만들고자 한 이유가 있나요? 하야시씨의 투쟁에 대한 감명 때문인지, 개인적인 사명감에서 만든 것인지, 궁금합니다.


니시지마 감독: 일본이라는 나라는, 다시금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로 변모해 가는 과정 중인 것 같습니다. 전쟁을 안 하는 국가라는 것은 일본 헌법에도 나와 있지만, 실제 현 정부의 움직임은 다시 전쟁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고, 하야시씨는 이를 줄곧 우려해왔습니다. 하야시 에이다이의 투쟁과 기록을 통해, 지금 일본이 또 다시 위험한 나라가 되어간다는 그 사실을 많이 알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만들게 되었습니다. 일본의 영화계나 미디어, 신문 매체는 늘 이러한 위험한 움직임에 대해 올바른 비판을 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져왔습니다. 나아가 한국이나 대만과 같은 주변국가에서도 이를 알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Q. 평생을 기록에 열정을 가지고 남겨오신 분의 이야기, 본인의 이야기를 다시 다큐로 만들겠다고 했을 때 본인의 반응은 어땠나요?


니시지마 감독: 처음부터 하야시씨를 찍으려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당시 하야시씨가 (자살)특공대에 대해 취재를 하고 있었고, 그 취재 내용을 30분가량의 TV 다큐로 제작해서 방영을 했는데, 그것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취재를 좀 더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하야시씨를 계속 따라다녔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포커스가 하야시 에이다이라는 인간, 그 자체로 옮겨가게 되었습니다. 하야시씨에게 당신을 주제로 다큐로 찍겠습니다라는 말을 한 적은 없습니다. 하야시씨도 스스로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전혀 느끼지 못한 채 마지막에 주인공이 되신 겁니다.


 



 

● 관객들의 소감


  Q. 이런 영화를 만들어 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이 다큐 필름을 앞으로 더 많은 분들이 보았으면, 그렇게 기회를 만들어주셨으면 하는 요청을 드립니다. 혹시 유튜브나 공중 매체에 좀 더 적극적으로 상영할 수는 없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니시지마 감독: 사실 영화라는 컨텐츠 자체가 유튜브나 인터넷을 통해 공개하기는 어려운 사정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극장 관계자들의 협조를 얻어서, 상영 기회를 더 늘렸으면 하는 소망은 있습니다. 여러분들께서 많이 홍보해 주신다면 기회가 더 생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령경: EIDF D-BOX에서 다시 보실 수 있어요.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www.eidf.co.kr/kor/movie/view/331)


 

  Q. 저는 작년에 가고시마의 특공 평화 기념관에 다녀왔습니다. 명목상으로는 희생당한 사람들을 기리고, 평화를 위한 기념관이라고 하는데 막상 안에 들어가 보니 여전히 전쟁을 미화하거나 국가 권력, 전체주의에 희생당한 사람들을 애국자로 포장하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그 와중에 이러한 자성의 영화를 만들어주신 것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렇지만 협박 전화 등 여러 곤란을 많이 겪으셨을 것 같은데, 어떻게 대응을 하셨고, 앞으로 또 어떻게 하실 계획이신지 궁금합니다.

 

니시지마 감독: 사실은 저희가 하는 일 모두에 대해 우익 분들이 많은 관심을 가져주고 계십니다. (웃음) '침략 전쟁'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만으로도 항의를 받고 항의 전화는 많이 옵니다. 그렇지만 이 영화에 대해서는 그렇게 심한 반응이 있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자학적이다라는 인터넷에서의 평가를 봤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올바른 평가일까요? 전쟁은 명백한 역사이고,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습니다. '학대'라는 것은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행위하는 것일 따름입니다. 가해자에게 자학이란 맞지 않습니다.
   영화나 미디어에 관계되는 사람들은 항상 피해자의 입장을 고려하여 컨텐츠를 제작해야 합니다. 일본은 가해자이기 때문에 책임지고 반성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저 스스로도 그 책임을 느끼고 있습니다. 하야시 에이다이라는 분도, 항상 일본의 가해자로서의 책임을 항상 요구하는 사람이고, 그렇게 하는 이유는 또 다시 같은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가끔은 우익의 전화를 기다리기도 합니다. 전화가 안 오면 오히려 이상한 기분입니다. 우리는 그런 반응이 여전히 있기 때문에 계속 활동을 하는 것입니다.


 


 

   감독과의 질의응답을 마치고, 다큐 콘서트에 초대된 두 분의 손님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하야시 에이다이씨는 재일한국인의 인권문제를 위해 투쟁했던 재일교포 인권운동가 최창화씨의 활동이 자신에게 많은 자극이 되었다고 이야기했다고 하는데요, 오늘 다큐 콘서트에 게스트로 오신 피아니스트 최선애씨는 최창화 목사의 딸입니다. 아버지를 이어 재일한국인 인권 운동에 오래 전부터 목소리를 제기해 왔고, 어릴 때부터 하야시씨와도 친분을 이어오고 있다고 합니다.

 

 


 

최선애: 하야시씨는 어릴 때부터 잘 알던 분이었고, 먼 친척과 다름없는 가까운 분이었기 때문에 어릴 때는 크게 특별한 분이라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하야시씨의 삶이 훌륭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은, 50년 이상 같은 자세로 일관되게 투쟁을 벌여왔기 때문입니다. 정권이 바뀐다거나, 사건.사고 때문에 정치적 입장을 전향하는 경우가 더러 있지만, 이 분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야시씨와 같은 분이 계시다는 것, 오랜 시간에 걸친 그 노력을 잊지 않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버지께서 1970년대 치쿠보 지역의 신사를 돌면서 강제 연행된 조선인들의 유골을 수습하는 일을 하셨고, 기타큐슈 지역에 납골당을 만드셨습니다. 다큐의 마지막 벚꽃이 떨어지는 그 공원은 실제로, 하야시씨와 저희 아버지께서 함께 산책을 하시다가, “함께 파 볼까?”라고 해서 파 봤는데, 실제로 그 곳에 유골이 있었던 일화가 있는 곳입니다. 민족이 다른 것을 떠나서, 하야시씨와 아버지께서 같은 활동을 함께 해 오신 셈입니다. 아버지는 23년 전에 돌아가셨는데, 돌아가시기 전에 재일교포 인권 자료관을 세우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고, 하야시씨께서 직접 오랫동안 모은 자료 중 450점을 기증해주신 덕분에 자료관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하야시씨가 기증해주신 450점의 자료는 한국의 국가자료원에도 복사본을 넘겼습니다. 조만간 디지털화 되어서 공개될 예정이라고 하니까요, 여러분들께서도 많은 관심 가져주시고, 좋은 목적으로 사용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또 다른 손님이신 우에무라 다카하시씨는 전 아사히신문사의 기자로, 20년 전에 사상 처음으로 위안부 문제를 폭로한 기자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야시 에이다이씨 역시 당시에 위안부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우에무라씨는 하야시씨를 취재할 기회가 생겼고, 그 과정에서 하야시씨로부터 들었던 이야기가 오래도록 감동적인 기억으로 남았다고 합니다.

 우에무라 다카하시씨는 현재 가톨릭대학교의 초빙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오늘 다큐 콘서트에서는 하야시 에이다이씨가 지금까지도 저항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문제, 현재 일본에서 지속적으로 과거사를 은폐하고 소멸시키려는 시도들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우에무라 다카하시: 저는 26년 전에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 증언을 시작했을 때 기사를 썼던 한 명이기도 합니다. 최초의 폭로로부터 3일 후에 기자회견을 했고, 저는 피해자의 입장에서 여러 가지 기사를 썼습니다. 김학순 할머니의 용기 있는 증언으로 세계에 이 문제가 알려지게 되었고 그것이 시작이 되어 위안부 문제의 진실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한국뿐 아니라 다양한 국가의 인권, 여성학대 문제에 대해 경각심을 갖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증언에 대한 최초의 기사를 썼기 때문에, 우익 언론으로부터 '날조 기자'라는 오명을 쓰게 되었습니다. 사실은 기자 퇴직 후에 어느 대학의 교수로 가기로 정해져 있었는데, 그 대학으로 직접 항의전화, 엽서가 빗발쳤다고 합니다. 딸을 죽이겠다는 협박까지 들었습니다. 결국 그 대학에 취직하지는 못했습니다.





우에무라 다카하시: 오사카지국 사회부에서 재일교포 인권문제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하야시씨를 알게 되었습니다.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면서 함께 술을 마시는 사이까지 되었습니다. 그 때 대선배님으로부터 제국주의 시대의 역사에 대해, 위안부 문제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고, 저에게는 지금도 감동적인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그 이후에 해외 특파원 등으로 나가있으면서 다시 하야시씨를 만날 기회가 없었지만, 오늘 영화를 통해 만나게 되어 반가웠습니다.
   사실 지금 일본에서는 과거 문제, 침략 전쟁의 문제에 대해 기록을 남기자, 자료를 남기자는 목소리에 대한 테러 시도가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기억에 대한 테러'라고 이름합니다. 제가 겪은 일뿐만이 아닙니다. 위안부 문제에 관한 전시를 한다거나, 히로시마 대학의 재일교포 교수님께서 '끝나지 않은 전쟁'이라는 이름의 다큐를 상영했다가 상당한 곤란을 겪었습니다. 최근에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서술한 중학교 역사 교과서가 한 종류가 있는데, 산케이신문 등 우익 언론이 이 교과서를 쓰는 학교 이름을 공개해서 이 학교들에 대해 협박 엽서가 빗발치고 있습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고노 담화>의 세 가지 약속이 있습니다. 1)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2)사죄하고, 3)두 번 다시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역사교육을 하겠다는 내용입니다. 그렇지만, 이 담화의 내용 자체를 없애는 방향으로 정치인들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하야시 에이다이의 마지막 교훈은 우리가 마음 깊이 새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역사의 교훈에서 배우지 않는 민족은 결국 자멸하는 길로 갈 수밖에 없다.” 영화를 통해 함께 이 메시지를 새기고, 한국과 일본이 함께 이 길로 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령경: 하야시씨의 책이 번역된 것은 아직 한 권밖에 없습니다. 우리에게 남은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하야시씨의 문장을 하나 소개합니다.

 




권력에 버림받은 이들, 잊혀진 이들의 모습을 기록하는 것이 나의 사명이다.”   -하야시 에이다이


     

이령경이 글에 아마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하야시씨가 투쟁이라는 과제를 놓치지 않고 계속해온 힘이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오랜 시간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록작가 하야시 에이다이의 저항>이라는 작품을 보고, 오늘의 다큐 콘서트를 함께 하면서, 저는 인간으로 태어나서 '저항'이라는 과제에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세상을 살다 간 수많은 사회운동가들의 이름처럼, 오늘 영화를 통해 만난 하야시 에이다이라는 사람의 존재는 마음속 저항의 불씨를 갖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잔잔하지만 힘 있는 응원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반국가', '국적(國賊)'이라는 오명을 끊임없이 감내하면서도, 끝끝내 일본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또 일본 민족의 한 사람으로서 자신은 죽는 순간까지도 책임있게 행동하겠다는 하야시 에이다이의 굳은 결심이 많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으로 가져야 할 책임의 문제, 그리고 한 민족의 구성원으로 산다는 것의 책임에 대한 많은 생각을 일으켰던 것 같습니다. 오늘의 다큐 콘서트에서 니시지마 감독이 남긴 마지막 말을 전하며 글을 마치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권력이라는 것은 반드시 폭주하고, 부패로 달려갈 것입니다. 그런 권력에 대항하는 한국 국민의 힘에 저는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아직까지 일본은 권력에 대항하여 다른 이야기를 하면 심하게 해코지를 당합니다. 또 하야시씨가 강제연행 당시의 상황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지금까지도 재일한국인에 대한 차별적인 시선은 계속 남아있습니다. 일본은 과거의 불리한 진실을 지우려고 하는데, 저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저항해 나가고 있습니다서울타워 옆에 <기억되지 않는 역사는 계속된다>는 글귀가 적힌 비석이 있습니다. 이런 과거의 기억이 계속 기억되고 전달이 되어야 한일관계가 개선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과 일본 모두가 노력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니시지마 신지 감독)


 

/ 자원활동가 기록팀 김현대

사진 / EIDF 코디네이터 명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