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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IDF 2019/EIDF 2019 라이브

[EIDF2019] EIDF 특별 포럼: '도시와 건축 - 집의 온기' 현장 스케치

제16회EBS국제다큐영화제 특별포럼: '도시와 건축 - 집의 온기' 현장 스케치

 

EIDF 특별 포럼: 도시와 건축 집의 온기

패널: 함성호(시인, 건축평론가), 김용범(건축가), 노은주(건축가), 임형남(건축가)

진행: 형건(PD, EIDF사무국장)

 

EIDF에서는 매년 특정 화두를 선정해 특별한 전문가들을 모시고 심도 깊은 대담을 들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는데요. 작년 '우리가 사는 도시, 그리고 건축'에 이어, 올해 EIDF2019에서는 '도시와 건축 - 집의 온기'라는 제목 아래 특별 포럼이 진행되었습니다. 8월 21일 19시부터 약 2시간 동안, 홍대 구름아래소극장에서 열띤! 포럼 현장이 펼쳐졌는데요. 함성호 건축평론가, 김용범 건축가, 노은주&임형남 건축가님이 참석,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발제와 대담을 해주셨습니다. EIDF사무국장 형건 프로듀서님의 진행과 함께, 집의 역사적, 그리고 정서적 의미를 재고하는 소중한 시간이었는데요. 특별 포럼 현장으로 함께 들어가보실까요?

 

"아주 어렸을 때는 단독주택에 살았던 기억이 있다. 주택은 집마다 구조가 다 다르고, 어릴 때 대문에 들어가면 왼편에 화단이, 오른쪽 계단을 올라 집이 시작되고 뒷마당에 돌아가고 이런 생각이 떠오르는데 요즘 세대들에게 물어보면 어느 건설회사의 아파트에 사는지가 문제고, 저마다 집 구조도 다 비슷하지 않냐. 건축의 의미, 집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는 자리가 되었으면 한다"는 형건 사무국장님의 말과 패널 소개로 포럼이 시작되었습니다. 함성호 건축평론가, 김용범 건축가, 노은주&임형남 건축가 순으로 총 3번의 발제가 연속으로 진행되었고, 그 후 패널들 간의 대담과 관객 Q&A 시간을 가졌는데요.

 


 

함성호 건축평론가 발제 '가장 귀한 것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있는 곳'

 

첫 번째 순서를 맡은 함성호 건축평론가는 이상적인 집은 행복한 가족이 모여 있는 곳이라는 의미를 담은 추사 김정희의 글씨를 토대로 발제를 진행했습니다. 반찬 중에서는 언뜻 생각하기에 아무것도 아닌, 그저 그런 반찬들이 최고고, 무언가 모여있는 풍경 중에서는 가족이 다함께 모영있는 풍경이 최고라는 뜻을 지닌 글인데요. 가족이 다함께 '화목하게' 모여 있는다는 것은 언뜻 쉬워 보이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죠. 함성호 건축평론가 역시 그 어려움을,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어려움을 인지하고 극복하려 노력해야 함을 지적했습니다.

 

"(이 글은 추사 김정희가 생각한 '집'의) 가장 완벽하고 이상적인 설계도인 거죠. 물리적인 집이 아니라 그 집에 사는 사람과 그 사람들이 사는 삶, 그 사람들의 삶을 안아주는 집의 문제까지를 총체적으로 아울러 보여주는 집 설계도인 겁니다. 그런데 이런 글귀도 적혀 있어요. '이런 즐거움을 아는 이는 극히 드물다'. 그 당시에도 이렇게 사는 사람이 없었다는 거예요. 이런 평범한 즐거움을 알려면 어떻게 해야 되죠? 훌륭한 건축가가 필요한 게 아니라, 자기가 늘 깨어 있어야 해요. 항상 깨어있는 상태가 아니면 이런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죠."

 

"우리가 지금 가족의 해체라는 말을 하죠. 가족이란 말 자체가 엽기가 되고, 어떻게 보면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나에게 가장 큰 상처와 피해를 줍니다. 가족이라는 엽기 그 자체를 어떻게 우리가 사랑이라는 말로 품을 수 있는가. 그게 가능하겠어요? 사실 가족의 해체나 지금 현대 사회에서 가족 구성원이 겪는 서로간의 갈등은 옛날에도 있었습니다. 농경사회, 노예사회에서도 있어 왔고 계속해서 있어 온 문제들인 거죠. 근데 그 문제들이 왜 인류가 탄생한 지 250만년이 지났는데도 해결이 안 되냐? 생각해 봐야죠. 그 문제가 바로 우리 자체라는 것입니다. 추사는 그래서 이런 설계도를 그린 거죠. '이렇게 한 번 살아 보자'. 이 글씨가 지금도 빛을 발하는 이유는, 250만년 전부터 꿈꿔왔지만 한 번도 이뤄지지 못한 꿈이기 때문입니다. 이 고귀한 설계도를 같이 보고 이야기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김용범 건축가 발제 '우리에게 집은 무엇인가?'

 

김용범 건축가는 "우리가 과연 '집'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나? 집이 무엇이냐는 질문은 미래지향적인 질문이지만 거꾸로 우리가 그동안 집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를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 보고 싶었다"는 말로 발제를 시작했는데요. 1930년대부터 시작해 당시의 잡지, 신문, 사진들을 풍부하게 인용한 발제는 우리나라에서 추진된 근대화 정책의 일환으로서, 근대의 문화주택에서 현대의 아파트로 이어지는 한국 주거사의 흐름을 짚으며 아파트가 실체가 아닌 '이미지'로서 좋은 집’, ‘잘 사는 집의 기준이 되었음을 꼬집었습니다. 국가주도형 개발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대단지 아파트 건설의 암(暗)을 조목조목 짚어나가는, 하나의 잘 정리된 강연을 듣는 듯했습니다.

 

"문화주택과 아파트라는 키워드는 근대화라는 다른 키워드와 연결되어 있다. 반짝이는 모델하우스, 주택 당첨을 위해 모여드는 사람들의 풍경, 모두 '문화주택'이 등장한 근대부터 존재한 풍경이다. 양식 집은 따뜻하고 화목한 집, 한옥 초가집은 춥고 싸움 소리가 들리는 집이라는 양분된 시선이 만들어지고, 양식 주택에 대한 동경이 만들어지고, 그것을 위해 대출을 받고. 사람들이 추구한즐거운 집의 이미지가 우리 무의식에 남게 되고, 앞으로 우리 국민들이 새로운 나라, 새로운 환경에서 살 집은 한옥이 아니라 양옥이라고 국가가 설정해버린 거다. 그런 양옥주택에 대한 선망이 농촌에까지 내려갔다."

 

"문화주택이라는 단어를 바통터치해서 받는 것이 아파트라는 단어다. 현대식 아파트는 환경이나 생활 측면에서 고려되었다기보다는 우리나라의 근대화 정책의 일환, 경제 효과 기대로 지어진 것이 시작점이다. 처음에는 이 생소한 주거환경에 거부감을 가지던 사람들도 정치인, 연예인, 공무원들이 자의 또는 타의로 들어가 살기 시작하면서 따라 입주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마포아파트부터 시작해 여의도, 청계천지구, 서부 이촌동... 아파트는 경제적 효과뿐만 아니라 도로에서 보일 수 있는 서울의 소위 '구질구질한' 면을 가리는 병풍으로서의 역할도 했다. 와우아파트 붕괴사고도 아파트 건설에 있어 제대로 된 반성과 재고의 지점이 되지 못했다. 국가가 주도하던 사업에 그때부터는 민간기업이 뒤어들어 아파트 사업에 열을 올렸다."

 

 

"물론 아파트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거의 한 세기에 걸쳐 온 우리 주거의 역사 속에서, 우리가 스스로에게 집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져볼 기회가 한 번도 없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요즘 들어서는 또 재건축이 붐이다. 사실상 멀쩡한 집을 부수고 새로 짓는 거다.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 아파트는 수명이 20년밖에 안 되는데, 특이한 현상이다. 다른 나라는 4, 50년 정도 된다. '보금자리'로서의 집이 강조되지 않는 거다. (재건축 반대 시위 현장에 있는 아이 사진을 보여주며) 요즘도 재건축 반대 시위가 많은데, 저 아이가 뭘 안다고 손을 흔들고 있는 것일까. 이 아이조차 현재 4,50대 중년이 되어 어딘가 아파트에서 살고 있을 거다. 이런 역사가 되풀이되어 오면서 '아파트'를 너무나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온 게 아닌가, 그래서 지금이야말로 우리 집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생각해봐야 하는 시대가 도래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형건 프로듀서는 발제에 대해 "우리나라 지금 공동주택 주거비율이 60% 정도라고 한다. 대부분이 아파트, 연립주택에 살고 있는 거죠. 어찌 보면 흐름이 그러니까 어쩔 수 없다 느낄지 모르지만 생각해보면 화가 날 수도 있는 얘기다. 사람이 사는 집은 인권 중에서도 기본권과 관련되어 있는 건데 대부분이 아직 그런 사실을 심각하게 생각해보지 않은 게 아닌가 싶다. 자신의 주거에 관해 국가로부터든 기업으로부터든 간섭을 받는 것은 기본권을 침해받는 일인데, 현재의 아파트 광풍에 관해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 그런데 요즘 건축 관련 TV프로그램들이 늘어난 것을 보면. 최근 아파트 주거에 대한 피로도가 쌓인 건 확실한 것 같다. 집에 대한 의미와 그 방향이 점차 달라지고 있다"라고 코멘트했습니다.

 

 

 

노은주&임형남 건축가 발제 '따뜻한 건축'

 

 

한편 노은주&임형남 건축가는 함께 사무소를 운영하는 파트너이자 부부로서 그간 맡아온 작업을 소개하며 획일적인 아파트 주거에서 벗어난 새로운 단독주택 모델들을 각자의 사연과 함께 소개했는데요.

 

"사람들이 집에 막 집착을 하지 않나. 그런데 집 수명이 보통 20년밖에 없다고 생각을 한다. 조금만 지나면 반드시 재건축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공급자 위주의 사고방식이다. 저희도 집을 짓다 보면 매번 집이란 무엇인가 생각을 하는데 아직 잘 모르겠다. 어떤 게 집의 온기일까. 건축주들하고 집 지을 때 집의 의미를 얘기하면서 옛날 얘기를 많이 한다. 다락방 얘기, 밥 하는 냄새, 뭉게뭉게 구름 피어오르고 그런 것들. 실제로 그런 이미지를 볼 때 사람들이 편안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집 사진을 보여주며) 양평으로 다같이 가족이 간 케이스인데, 아이가 달 보는 걸 그렇게 좋아한다더라. 그런데 같은 집 사진도 풍경 안에 아이와 아빠가 있으면 공간 느낌이 달라진다. 집의 온기라는 게 난방시설과 집의 재료, 단열로 생기는 게 아니라 그 안에 사는 사람들로 인해서 온기가 유지되는 게 아닌가 한다."

 

그 외에도 유기묘 유기묘들과 함께 지내는 집, 캠핑을 좋아하는 부부라 내부와 외부를 베이스캠프같이 구조화한 집, 부부가 각자의 일터를 '따로 또 같이' 영위할 수 있도록 만든 공간, 시골의 창고를 개량한 집 등 다양한 케이스가 소개되었습니다. "심각한 얘기를 하다가 너무 그림 같은, 이상적인 집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지만(웃음) 이런 걸 보여드리는, 사무소에서 이런 집을 구상하는 우리 부부 역시 아파트에 산다. 그래도 언젠가는 우리도 우리만의 색과 온도를 갖는 집을 가질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보여드리는 게 시간이 집을 완성한다는 의미를 담은 애니메이션인데, 집이란 게 단박에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다양한 시간의 층위가 쌓여서 집이 완성된다. 정책 때문에 계속 2년마다 계약서를 써야 하거나, 나는 20평대에 만족하는데도 30대가 되니 30평으로 옮겨야 할 것 같고 등등 나만의 가치가 아니라 남들의 시선, 사회의 평가에 쫓겨 만족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앞에서 보여드린 게 다 아파트 가격에 비하면 매우 낮은 값으로 집을 만든 케이스다. 나중에 그곳에서 자란 아이들이 그 집을 좋아할지 싫어할지는 몰라도, 지금 우리가 보면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길을 가신 분들의 이야기를 소개해 드렸다. 저게 보편화된 선택이 될 수는 없겠지만, 다양한 집에 대한 다양한 선택지 중 하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오늘 밥으로 뭘 먹을까는 그렇게 다양한 선택지를 놓고 고민하는데, 왜 우리가 집에 대해서만큼은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없는지를 스스로에게 질문해보면 좋겠다."

 

 

대담

 

 

진행자 형건 PD(이하 형건) 먼저 함성호 시인에게 질문이 있다. 우리나라 대다수의 사람들이 왜 이율배반적으로 집의 가치를 아파트로 따지는 한편 자연과 가까이 있는 집에 동경을 가질까.

 

함성호 건축평론가(이하 함성호) 그건 뭐 사람이라면, 어느 나라 사람이건 비슷한 것 같다. 이를테면 정말 자연친화적인 방법으로 흙집을 짓고 싶다고 해서 지어 봤는데, 그러면 벌레가 너무 많이 나와서 못 산다고 한다. 자연과 가까이 있는 것에 동경을 가지는 것과 현실은 다르다는 거다. 단독주택 살면 고생 많이 한다. 아파트가 편하다(웃음). 그러니까, 단독주택과 아파트를 내 바깥 조건에서가 아니라 내 스스로를 잘 앎으로써 선택해야 한다. 내가 못 박기 싫고, 와식생활 좋아하고, 뒹굴거리기 좋아한다, 그럼 아파트에 살면 딱이다. 심고 가꾸는 거 좋아하고 고치는 것도 지장 없다, 하면 단독주택에 가면 정말 행복한 삶이 있는 거지. 아파트에서 도저히 찾을 수 없는. 먼저 자기 자신을 잘 알아야 한다.

 

 

 

형건 김용범 건축가님은 일본에서 목조건축사로 활동 중인데, 그곳에서는 사람들이 집을 고를 때 뭘 따지나.

 

김용범 건축가(이하 김용범) 일본은 주택시장이 우리나라와 다르다. 고급아파트는 보통 단독 동으로 짓지 단지로 짓지 않고, 단지식으로 운영하는 건 임대주택뿐이다. 또한 일반 건설업체 외에, 주택만 지어서 파는 하우징 시장이 따로 있다. 이것도 우리나라처럼 정부 정책의 결과이다 보니, 형태가 단독주택이지 나타나는 현상은 우리나라 아파트와 닮았다. 다만 그곳에서는 전세가 없어서 대개 사회 초년생이 되면 월세로 살다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 두 가지로 갈린다. 일반 분양 아파트로 가느냐, 좀 더 임대해서 살다가 내 집을 짓느냐로 갈리는데 후자가 더 많다. 그래서 아파트만 보이는 도시풍경이 아니라 여러 형태의 단독주택이 주를 이룬다. 확실히 주택의 다양성에 대한 인식은 비교적 더 높은 것 같다. 우리는 늘 건설회사가 지은 아파트에 사는 게 익숙하지만, 그곳은 건축가들에게 집을 지어달라 요청하는 게 좀 더 익숙하다고 해야 할까. 자기 생활패턴이나 개인취향이 반영될 수 있는 여지가 더 많다는 게 다른 점이다.

 

 

형건 그리고 노은주, 임형남 건축가님들께 질문을 드리겠다. 집 짓기를 의뢰한 후 바꿔달라는 요청이 온 적은 없나. 그리고 사람들이 집에 들어간 이후 만족도는 어땠나.

 

노은주 건축가(이하 노은주) 대부분 후회하는 경우는 가족의 상의가 충분치 않은 경우이고, 일을 진행하다 관두는 경우는 거의 없다. 보통 의뢰하기 전에 많이 이야기를 한 상태에서 오기 때문에.

임형남 건축가(이하 임형남) 사는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건 없었던 게, 다들 생각보다 쉽게 적응한다. 아파트에서 쭉 살다가 갑자기 단독주택에 가면 당연히 걱정이 되지만, 몇 달 뒤에 가보면 집에 자기가 산 공구들 쫙 늘어서 있고(웃음). 어떻게 보면 사람들에게 주거에 관해 주입하는 게 있는 것 같다. 이를테면 사람들이 아파트를 근대화, 앞선 생활의 '이미지'로 인식한 건 드라마 등 미디어에서 본 게 크지 않나. 그걸 바꾸는 건 매우 어렵다. 라이프스타일이 점점 온전한 내 선택이 아니게 되고, 교육받고 주입받은 대로 하고 있다. '내가 혼자 양평에서 살 수 있을까?' 가면 다 살게 되어 있다. 우리가 스스로 깨우치는 게 필요하다.

 

 

형건 패널 분들께서 마지막으로 한 마디씩 한다면.

 

노은주 우리가 집에 긑토록 많은 돈을 투자하는 것에 비해 과연 집에서 많은 시간을 지내는지, 집을 잘 누리고 있는지 생각해봤으면 한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아침 일찍 학교나 직장에 간다. 학생들은 학교 끝나고도 집에 가지 않고 학원에 가고. 단독주택을 산 분들은 계속 하루종일 그 집을 쓰는 경우가 많다. 왜 우리는 쓰지도 않을 집에 그 많은 돈을 투자하는가. 대부분의 시간을 길거리에서 떠돌고 회사에서 학원에서 술집에서 떠돌고 있는데. 나는 누구냐, 그리고 어떻게, 누구와 살 거냐 하는 걸 생각해야 한다. 현재 사람들이 집에 너무 큰 지출을 하고 가성비가 낮은 삶을 살고 있음을 반성해봐야 한다는 걸 횡설수설하면서 마무리하겠다(웃음).

 

김용범 오늘 와 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 스스로의 성향에 맞는 집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의문이 항상 든다. 단독주택이 불편한 건 구조상 당연한 거다. 내가 공을 더 들여야 하고 추위에 약할 수밖에 없고, 근데 그걸 불편하고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게 뭘 기준으로 생각하는 거냐면 아파트다. '아파트에 비해서' 어떻다는 식이다. 아파트와 단독주택이 태생적으로 건축 형태에서 나타나는 특징이 다르기도 하지만, 그걸 받아들이는 우리의 인식 자체가 '만들어졌다'고 해야 할까? 주입된 이미지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

 

 

 

Q&A

 

 

Q: 학교에서 기술가정 과목을 가르치고 있는데, 이제 막 2학기에 주거 관련 교과를 가르쳐야 해서 이것저것 알아보고 있다. 교과서에는 되게 딱딱하고 사전적인 의미들만 나열되어 있더라. 사람들의 집에 대한 건조한 생각이 교육에서도 나타나는 것 같다. 교육에서부터 현대 주거에 관한, 지금까지 문제라고 얘기한 그런 인식이 주입되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그래서 가르칠 때 아이들이 집의 가치와 의미를 생각할 수 있도록 교육 계획을 짜고 있는데 어렵더라. 아이들에게 어떤 주거 가치관을 어떻게 가르치면 좋을지 조언해준다면.

 

임형남 집이라는 건 과거에 자기완성의 개념이었다. 내가 일가를 이룬다는 건 일종의 나의 세계관을 이루는 거고, 그건 내가 어떻게 살지에 대한 청사진이다. 마치 집을 보면 글씨로 안 써져 있어도 가훈이 있는 거다. 옛날에는 생각으로 집을 지었는데, 집의 재료 중 '생각'이 없어졌다. 물리적으로 단열이다 아니다, 친환경이다 아니다 이런 것만 이야기하고 이 집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다 이런 게 없다. 아이들에게 추상적인 걸 가르치기 어려운데, 저는 건축주들에게 집에서 뭘 하는지를 쭉 쓰라고 하고 모범이 되는 집의 사례를 - 퇴계 이황의 도산서당, 양곡마을의 심수정 집 등 - 보여준다. 현대 건축가들이 지은 집들도 포함해서. 이런 '생각'으로 지은 집들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그것과 물리적 환경, 재료에 대한 걸 같이 병행하는 것이 어떨까. 더 많은데... 언제 한 번 오시면 제가 컨설팅을 해드리겠다(웃음).

 

 

노은주 관계자는 아니고(웃음) EBS에서 <건축탐구>라는 프로그램을 하고 있다. 그 프로그램에서 주인이 하는 얘기를 잘 들어보면 생각이 다 있다. 그게 제일 중요한 것 같다. 학생들에게도 네가 어디에 살고 있는가에 대한 생각을 써보게 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아이 가족들의 생각도 들어보라고 하고.

 

함성호 오히려 선생님한테 부탁하고 싶은 게 있다. 주거를 가르치면서 임대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이 큰 평수에 사는 아이들과 다름이 없음을 가르쳐줬으면 좋겠다. 왜 어른들이 하고 있는 임대, 자가의 이상한 구분에 아이들이 영향을 받아야 하는지... 큰 집에 사는 것을 조선 선비들은 치욕스럽고 부끄러운 일로 생각했다. 그걸 과시하는 건 못난이의 짓이었다. 그런 우리가 잃어버린 가치를 교육해서 집 평수가 인간에 대한 차별로 이어지지 않도록 교육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Q: 어릴 때는 단독주택에서 살다가 커서 아파트에 살게 됐는데, 시끄러워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필요없는 소음이 굉장히 많게 느껴진다. 그런데 이걸 소음으로 받아들이는 이유가 저분들이 이웃이 아니라 타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느꼈다. 이제 아파트 주거 환경도 변화해야 하지 않을까. 아파트도 흡연실 만들고 1층은 아이들 놀이터로 만들고 옥상에서 볼 수 있게 하고, 이러면 좀 바뀌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봤다. 21세기에는 마을공동체라는 새로운 가치 창출을 아파트에서도 구현할 수 있지 않을까. 여기 있는 네 분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다(웃음).

 

임형남 이웃이 안 되는 이유는, 사람들의 익명성이 너무 오래 유지되기 때문이 아닐까. 옛날에는 오래 봐야 되고, 서로 누군지 아니까 해코지를 못 했다. 근데 이제는 겨우 2년마다 새 이웃이 오니 좋은 관계를 유지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 사람들이 늘 학군, 직장 등 이동을 전제로 살고 있는데, 그런 것들이 개선이 되어야 사회에서 주거 관련하여 생기는 이웃 문제들이 개선되지 않을까 한다.

 

김용범 아파트에서 이웃이 되지 않는 데는 아까 (임형남 건축가님이) 말씀해주신 이유도 있고, 아파트는 구조상 문을 나가면 바로 복도가 있지 않나. 이웃이 되려면 이웃과 공유하는 공적 공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아파트는 그런 공적 공간과 나의 사적 공간이 너무 가까운 거지. 마주치면 어색하게 인사하고... 옛날 생각해보면 다들 마당도 있고, 돌아다니다 보면 공통 관심사가 생기고 그러면서 친밀해지는데, 아파트는 그런 게 부족하지 않나 생각이 든다. 옛날에 형건 사무국장님과 같이 사와다 맨션을 방문했는데 참 인상깊었다. 3층 정도의 건물인데, 집을 무계획적으로 짓다 보니 아파트인데도 공간이 불규칙하다. 그런데 그 불규칙한 사이사이가 비어 있되 의미 있는 공간이 된다. 아무것도 아닌 공터가 있다든지.

 

 

형건 자기 집 앞까지 차 타고 갈 수 있는 아파트 상상해 봤나. <행복한 건축>에 나오니까 봐 달라(웃음). 일본에서 건축 공부하는 학생들은 견학 가는 게 거의 필수라고 하더라. 그 정도로 되게 전설적인 맨션인데, 사람하고 마주칠 수 있는 공간이 되게 많다.

 

김용범 우리나라에서 지어진 아파트는 설계 당시에 연주회나 파티하는 이미지를 보여주지 않나. 근데 실제로 일어나지 않는다. 그건 인위적인 거다. 단지 팔기 위해서 이미지를 준 것 뿐, 실생활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근데 사와다맨션을 보니 공동주택에서 나아갈 수 있는 하나의 모법답안 같았다. 주어진 경로를 따라 집을 가는 게 아니라 길을 가면서 자연스럽게 부대끼면서 대화할 수 있는 공간이더라. 아파트도 그런 공간을 지향해봐야 하지 않을까.

 

 


 

밀도 있는 발제, 대담, 그리고 Q&A시간이 이어진 의미 있는 2시간으로 포럼이 채워졌는데요. 특히 세 개의 발제가 주제인 집의 의미, 그리고 온기에 대해 서로 다른 방법론으로 접근하여, 청자 역시 다양한 측면에서 주제를 생각해볼 수 있게 하는 포럼이었습니다. 늘 발 딛고 살아가고, 그곳에서 자고 깨어남에도 불구하고 깊게 생각해보지 못했던 '집'이라는 공간의 의미, 그곳이 마땅히 가져야 할 온기에 대해 다시 한 번 숙고하게 되는 자리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도 참석해 함께 좋은 자리를 만들어주신 진행자 및 패널 분들과 관객분들 모두 감사드립니다!:)

 

제16회EBS국제다큐영화제, EIDF2019는 오는 8월 25일까지 계속됩니다:D

 

 

 

원고 : 자원활동가 기록팀 조진영

사진 : 자원활동가 기록팀 구상현, 김하은, 최연규, 한다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