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DFA 2016 다큐멘터리 영화제 스케치
디뷰어 논픽션라이프
IDFA가 열리는 도시, 암스테르담
세계 최대 다큐멘터리 영화제, IDFA가 열리는 암스테르담의 첫 인상은 듣던대로 운하가 대단했다. 중앙역으로부터 방사형으로 층층이 흐르는 운하를 따라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암스테르담 사람들을 언제나 볼 수 있었다. IDFA 다큐멘터리 영화제가 주 목적인 여행이었기에, 이 도시의 풍경을 천천히 감상할 여유는 없었지만, 암스테르담 특유의 조밀하면서도 유럽스러운 풍경은 영화제의 훌륭한 배경이 되는 듯 했다. 여러 곳에 흩어진 상영관을 찾으러 구글 지도를 따라 가다보면 불현 듯 보이는 아름다운 건물들은 IDFA를 보기위해 온 여행의 즐거움을 한 층 배가시켰다. 트램 시스템이 편리하게 잘 되어있었지만 상영관을 오며가며 풍경을 즐기기에는 자전거나 도보가 더 좋아보였다. 단 암스테르담에서 자전거는 운동이라던지 즐기기 위한 게 아니라 실제 교통수단에 가까워 매우 빠른 속도로 달리므로 사고가 나지 않도록 주의가 필요하다. 자전거의 도시라고도 불리는 암스테르담 답게 자전거 도로는 정말 훌륭하게 갖춰져있었다. 단 여행객으로 자전거를 빌리는 비용이 매우 비싸다.
IDFA의 본진, Tuschinski 상영관
IDFA의 상영은 여러 곳에서 이루어졌지만 그 중 Tuschinski 상영관은 IDFA 영화제의 본진과도 같은 곳이었다. 암스테르담의 중심가라고도 할 수 있는 렘브란트 광장 근처에 위치한 이 곳은 한 눈에도 역사와 기품을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특히 가장 큰 규모의 1관은 영화를 보러 들어가서도 너무나 아름다워 영화관 구석구석 사진을 찍지 않을 수 없었다. 현대적인 시설의 영화관도 좋지만 이런 클래식하면서도 아름다운 상영관을 가진 암스테르담이 무척 부러웠다.
영화제 기간동안 Tuschinski 상영관의 로비는 다큐멘터리 영화인들로 항상 북적거렸다. 스탠딩 테이블에서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 상영관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 또 한 켠엔 팝콘이라기보다 뻥튀기라고 해야할 다소 충격적인 팝콘을 팔기도하는, 이 곳이 IDFA의 보금자리 같았다.
Tuschinski 상영관으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Mute 상영관도 있었지만 이 곳은 국내의 CGV나 메가박스 같은 흔한 멀티플렉스라 이왕이면 Tuschinski 상영관에서 보도록 스케줄을 짜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하는게 나뿐만이 아니라 Tuschinski 상영관의 다큐멘터리 영화는 자주 매진되어 있었다. IDFA에서 보고싶은 다큐멘터리를 놓치고 싶지 않다면 미리미리 예약해야 한다. 당일날은 상당 수 인기 다큐멘터리들이 모두 매진되어 있다.
멋진 공연인프라
Theater Tuschinski외에 다른 공연 시설에서도 다양한 형식의 상영이 이루어졌다. Carre는 큰 규모를 자랑하는 공연장이었는데, 이곳에서 음악 다큐멘터리 상영 후 등장한 음악을 라이브 공연으로 바로 즐길 수 있는 이벤트를 볼 수 있었다. Melkeg역시 역사를 느낄 수 있는 공연 시설이었는데, 이곳에서 Chasing Trane이란 전설적인 뮤지션의 발자취를 조명한 다큐멘터리와 라이브 공연까지 감상했다. deBalie란 상영관에선 ‘로드무비’란 자동차 블랙박스 영상을 편집한 다큐멘터리를 관람했는데, deBalie는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또한 유럽 특유의 느낌이 살아있는 멋진 공연 시설이었다.
중앙역을 나가 24시간 운영되는 페리를 타고 건너가면 당도하는 the EYE 영화 뮤지엄은 더욱 특별한 곳이었다. 감각적으로 멋진 외관의 건물을 들어가면 여러 전시와 영화 상영이 이루어지는 내부는 햇살이 가득 채울 수 있도록 디자인 되어있다. 단순 영화 혹은 전시 관람외에도 그냥 와서 내부 식당 이나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건물에서 보는 다큐멘터리 영화는 더욱 기억에 남는 경험이 될 수 있었다. 만약 IDFA를 방문한다면 the EYE에서 상영되는 영화가 있다면 꼭 놓치지 말고 관람하길 바란다. 영화 뮤지엄 자체로 기억에 남는 곳이다.
IDFA 영화를 돌아다니며 내내 부러웠던 점은 암스테르담의 이런 공연 인프라였다. 단지 크고 화려한 시설이라서가 아니라, 도시의 오랜 역사와 흔적들이 느껴지면서도 예술적인 아름다움이 흘러넘치는 공연 시설이 한 두군데가 아니라는 점. 최신식 시설의 공연 시설은 국내에도 있지만, 이런 세월을 담고 있으면서도 예술적으로 아름다운 공연 시설을 갖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다양한 이벤트
IDFA의 장점은 이런 하드웨어적인 부분에 머무르지 않았다. 굉장히 다양하고 때론 실험적인 상영 이벤트가 재미있었다. 위에 소개한 음악 다큐멘터리 상영 이후 라이브 공연을 함께 즐길 수 있는 형태의 이벤트에서부터, 특정 이슈에 관한 여러 영화를 선정하여 편집된 영상을 보고 관련 토크를 게스트와 함께 나누는 형태의 상영, 영화제의 말미엔 수상작을 모아서 연속 상영하는 ‘Best of IDFA’, 그리고 직접 참여했던 관객 평점 우수작 7편을 저녁 9시부터 아침 9시까지 밤을 새워 몰아보는 ‘Docs around the Clock’같은 독특한 형태의 이벤트는 IDFA의 저력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다. 특히 ‘Docs around the Clock’의 경우는 밤샘 상영 이벤트라고해서 관객이 적지 않을까 했던 우려를 비웃듯이 상당히 많은 관객들이 배낭에 먹을 것을 싸와 밤을 새며 다큐멘터리를 함께 관람하는 모습에 이곳이 다큐멘터리 영화의 수도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국내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즐기는 인구가 늘어나다면 언젠가 EIDF에서도 밤샘 다큐멘터리 상영이 가능할까. 무리라고 생각은 하지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건긴 하다.
진정 다큐멘터리를 즐길 줄 아는 사람들
더불어 또 하나 IDFA에서 볼 수 있던 것은, 다큐멘터리 영화를 즐기는 사람들이었다. 다년간 EIDF를 다니다보면 아무래도 아직은 좀 다큐멘터리라고 해서 왠지 심각하고 진지하게 보는 듯한 분위기도 없지 않은데, IDFA의 관객들은 다른 상업영화를 보는 것과 똑같이 웃고 즐기고 격한 리액션을 아끼지 않으며 있는 그대로 즐기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영화관 외에서 오며가며 잠시 이야기를 나눈 암스테르담 시민들도 IDFA에 대해 대부분 알고 있었으며, 본인이 다큐멘터리를 특별히 좋아하지는 않더라도 주말에라도 시간내서 가보려고 한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암스테르담 사람들의 IDFA에 대한 관심을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한 해 한 해 퀄리티가 올라가는 다큐멘터리 영화들
EIDF를 매년 참가하면서 느끼는 점은 다큐멘터리 영화들의 퀄리티가 매우 빠른 속도로 높아진다는 것이었다. IDFA 2016에서 대략 24편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면서 느낀 점도 마찬가지였다. 엄청난 이슈를 침투하여 촬영해낸 다큐멘터리 영화도 있었지만, 좀 더 가벼운 이슈를 다루더라도 그 스토리텔링이나 촬영기법이 나날이 발전하는 듯 했다. 다큐멘터리란 장르가 좀 더 평범한 관객들과 더 가까워지는 듯 해서 기분이 좋기도했고, 도대체 저 장면들을 다 어떻게 촬영하거나 만들까하는 생각도 자주 들었다.
IDFA 2016에서 주목받은 작품들을 좀 소개하자면 아무래도 장편 다큐멘터리 상을 수상한 ‘Nowhere to Hide’를 빼놓을 수 없다. 밤샘 다큐멘터리 마라톤의 첫 상영으로 본 이 작품은, 실로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다큐멘터리였다. 이라크 내전지역의 간호사이자 아버지이기도 한 이라크인이 직접 제작진으로부터 건네받은 카메라로 담은 이 영상은, 점점 답이 보이지 않는 참담한 상황으로 악화되어가는 이라크 내 내전 상황을 리얼하다 못해 잔인할만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법도 질서도 인정도 최소한의 자비도 사라져버린 그 곳의 비극을 위험한 상황속에서도 끈질기고 성실하게 영상으로 담아낸 주인공의 노력 덕에 이런 다큐멘터리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었고, 또 세상에 알려질 수가 있었다. 많은 세계인들에게 인간으로 살아가기 힘든 지옥같은 상황에 놓여진 사람들의 참상이 알려지길 바랄 뿐이다.
가장 높은 관객 평점을 받은 La Channa는 압도적인 다큐멘터리 영화였다. 전설적인 플라맹고 여댄서인 La Channa를 조명한 이 영화는, 말로 혹은 글로 알기보다 직접 봐야하는 영화이다. 플라맹고의 신과 같은 재능으로 태어나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이제는 세월을 뒤로 한 그녀를 다큐멘터리로 부활시킨 이 퍼포먼스를 먼저 본 한 사람으로 글 이전에 꼭 영상으로 보길 권유할 뿐이다.
한국 다큐멘터리 제작진의 작품으로 높은 관객 평점과 반응을 얻은 ‘Singing with Angry Bird’는 즐겁고 행복한 다큐멘터리였다. 다큐멘터리 영화가 재밌으며 의미있고 훈훈하기는 정말 쉽지 않은데, 인도 빈민촌에서 '바나나 합창단'을 운영하는 김재창씨의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는 그 모든 토끼를 다 잡은 듯 했다. 실제 관람하면서도 관객의 웃음소리가 가장 잦았던 영화로 기억될 정도로 관객 반응이 좋았다. 좋은 캐릭터와 이야기를 훌륭한 촬영과 제작으로 잘 만들어낸, 그야말로 수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IDFA 2016에서 이런 뛰어난 성과를 거둔 지혜원 감독님 이하 제작진에게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꼭 대작만 상영되는 건 아냐
IDFA 2016에 위와 같은 뛰어난 대작들이 많았지만 꼭 대작들만 상영되는 것은 아니었다. 학생 다큐멘터리 영화 부문이 따로 있어, 얼마든지 실험적인 영화들도 볼 수 있었다.
그 중 실제로 관람한 ‘Road Movie’는 굉장히 새로운 형태의 다큐멘터리 영화였다. 웹상에서 흔히 ‘불곰국의 평화로운 오후’등과 같은 제목으로 볼 수 있는 러시아의 자동차 블랙박스 영상을 편집한 영화였다. 물론 이전에 보았던 영상보다 훨씬 더 다양하고 재밌는 영상을 볼 수 있어 재밌긴했으나, IDFA에 이런 유튜브 영상만 편집한 영화도 상영될 수 있는 것이 놀라웠다. deBalie 상영관에서 본 이 영화의 감독과의 Q&A도 있었는데, 이 영상으로 러시아 사회의 특유의 캐릭터와 유머 등을 보여주고 싶었던 얘기를 들었다. 단지 꼭 큰 제작비를 들여서 대작을 만들어야만 발을 들일 수 있는 IDFA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었다.
중국의 부동산 현실의 한 부분을 조명한 ‘Dream Empire’도 그런 점에서 흥미로웠다. 이 영화를 처음 찍기 시작한 감독은 원래 영화 전공과는 전혀 상관없는 전공으로 중국에서 유학중이던 학생이었다. 그가 중국에서 공연 아르바이트를 하며 알게된 부동산 현실을 아마추어로서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고, 그 이야기가 얼개를 갖추어가자 이후 전문 제작진과 합류해 영화를 완성했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면 초기 화면들은 아마추어가 찍은 홈비디오같은 티가 확 나고 뒤로 갈수록 전문 다큐멘터리 영화의 느낌이 난다. 다큐멘터리 영화의 가장 중요한 점은 역시 이야기, 이슈 라는 점을 알 수 있었고, 그 핵심을 담은 다큐멘터리라면 기술적인 부분을 얼마든지 보강해서 만들어나갈 수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IDFA 게스트 라운지를 들어가보다
11월 21일엔 암스테르담에서 특별한 분을 만날 수 있었다. 디뷰어 활동을 하며 IDFA에 가본다는 얘기를 하자 EBS에서 IDFA 2016에 출장 오신 신은실 프로그래머님을 뵙게 된 것이다. 출장 차 오신 바쁜 일정으로 하루에 5편이상 씩 관람하고 계신 와중에 잠시 뵐 수 있었다. 프로그래머님은 일반 관람객이 아닌 게스트 패스 자격으로 오셔서 덕분에 다큐멘터리 감독님들 관계자들만 들어간다는 IDFA 게스트 라운지를 따라 들어가볼 수 있었다.
Tuschinski와 Mute 상영관 근처에 있는 어느 호텔로 들어가니 IDFA 게스트 라운지가 있었다. 인더스트리 오피스라고도 하는 이 곳엔 게스트들을 위한 박스 오피스가 따로 있었고, 라이팅 룸과같은 글을 쓰기 위한 공간도 마련되어 있었다. 많은 다큐멘터리 산업계 게스트들이 모여있는 라운지 내에는 커피와 여러 다과들이 제공되고 있었고, 다큐멘터리 와 영화제 관련 카탈로그들이 여러 군데 비치되어있었다. 라운지에 다큐멘터리 감독 및 제작자 그리고 관계자들로 무척 북적이고 있었는데, 일개 팬인 내가 다큐멘터리 산업계의 심장부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 흥분되기도 했다. 너무 오래있다간 첩자(?) 신분이 들킬까봐 곧 나와야했지만 IDFA 2016 스케치에 한 꼭지라도 남기고 싶어 필사적으로 사진을 찎다가 나왔다. IDFA 게스트 패스의 위용을 체험하게 해주신 프로그래머님께 감사의 말을 남기고 싶다.
IDFA 영화제 여행, 참 잘 다녀왔다.
사실 다큐멘터리란 장르의 팬으로서 IDFA를 꼭 한번 가보고싶다는 생각을 해왔지만, 실제 실행으로 옮기기에 앞서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단지 이 영화제를 보기 위해 암스테르담까지 가는 게 오버하는 건 아닐까 싶기도했다.
그러나 간 첫날 상영관 입장하는 순간부터 그건 기우였다는 걸 확신했다. 멋진 공연인프라와, 다채로운 이벤트, 그리고 세계 최대 다큐멘터리 영화제인 IDFA를 즐기러 온 여러 관계자와 팬을 한 자리에 보는 것은 생각보다 더 즐거웠다. 기대이상으로 즐기게 된 이번 IDFA 여행을 마치며 빠르게 발전해가는 다큐멘터리 영화계의 역량에 박수를 보내는 한편, 다큐멘터리란 장르 지니고 있는 아직 덜 알려진 가치들이 이 장르에 생소한 많은 이들에게 알려질 수 있길, 그리고 그것을 위해 많은 좋은 다큐멘터리 영화들을 관람할 수 있는, 온오프라인 플랫폼이 더 발전되고 확장되길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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