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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IDF 2014/EIDF 2014 현장 스케치

[EIDF 현장 스케치] <Talk with Guest> 달에 부는 바람

<달에 부는 바람> 

일시 : 8월 30일 (토) 15:00 - 17:30

참석자 : 한유주(소설가), 이승준 감독, 예지 어머니 


8월 30일 화창한 날씨의 토요일, 서울 역사박물관에서 예지 어머니와 시청각장애를 가지고 있는 예지의 이야기를 다룬 <달에 부는 바람>이 상영되었습니다. 상영 후에는 이승준 감독과 극 중에 출연하신 예지 어머니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마련되었는데요. 관객들의 진솔한 후기를 들어보고, 이승준 감독의 전 작품이자 IDFA(암스테르담국제다큐영화제)에서 장편부문 대상을 수상한 <달팽이의 별>의 주인공 조영찬, 김순호 부부도 참석해 더 따뜻한 자리가 되었습니다.



* 출연을 한다는 것은 힘든 결정이었을 텐데 어떻게 출연하시게 됐는지 계기가 궁금하네요.

 예지어머니: 사실 저희의 일상이 영화와는 달리 전혀 차분하지 않아요. 완전 전쟁이거든요. 영화에 출연을 하게 된 것은 예지에게 뭔가를 해줄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예지에게 좋은 걸 남겨줄 수 있겠다고 생각해서 수락을 하게 됐어요. 지루하고 평범한 일상들을 잘 그려주신 것 같아요.

 이승준 감독: 처음 예지 부모님을 뵌 게 달팽이의 별을 할 때였어요. 촬영하러가서 예지와 어머님을 뵙는데 사실 예지는 제가 상상력을 벗어난 곳에 있는 것 같았어요. 달팽이의 별의 주인공인 영찬씨는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이 있지만 예지는 전혀 그런 방식 없이 15년을 살아 왔다는 게 믿기지 않더라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왔다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 공감하고 소통한 시간들이 있었다는 건데 그것에 대한 궁금증에서 영화를 찍게 되었어요.


* 예지어머님께서는 영화를 본 후에는 어떤 마음이셨나요? 

 예지어머니: 저는 뭔가 세월이 정체된 것 같은 시간을 살았어요. 아이들은 하루하루 달라지는 것이 눈에 보이잖아요. 몇 달 전에 기던 아이가 뛰고 걷는데 예지는 시간이 멈춘 것 같아요. 아이에서 학생으로 성년으로 자라나고 달라지는데 예지는 그러질 못해요. 예지는 멈춰선 가운데서 동작만 똑같이 반복하는 것 같은 느낌이 있어요. 영상에서 보시다시피 예지의 행동이 아직 행동이 유아기를 벗어나지 못하잖아요. 몸은 자랐지만 아직 엄마 품에 있는 느낌을 아직 가지고 살아가는 거죠. 자꾸 엄마에게 매달리고 그 시간 속에 멈춰있는 것 같은 모습이 영화를 보니까 그게 더 실감이 나더라고요.



* 감독님은 달팽이의 별에 비교하면 달리 초점을 맞추신 부분이 있나요?

이승준 감독: 사실 제가 이 영화를 찍겠다고 했을 때 주위에서 달팽이별2를 만들려고 하냐고 말렸어요. 근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이 이야기는 어머니와 딸의 이야기고 달팽이의 별을 부부의 사랑이야기에요. 물론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긴 하지만. 프로듀서만 유일하게 좋은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고 해줬어요. 차이점이라면 달팽이별은 두 분의 느린 호흡을 따라가려고 했는데 이 영화는 예지가 빠르고, 예상이 불가능해서 쫓아가기가 힘들었어요. 그리고 예지가 투정을 부리거나 해서 촬영을 할 여건이 안 돼서, 설득을 못하니까 촬영을 못 하였던 게 연출하는 입장에서는 힘들기도 했어요.


* 달팽이의 별, 달에 부는 바람 이라는 제목이 막연하지만 시적인 이미지를 환기 시키는데요. 제목은 어떻게 붙이게 되신 건 가요?

  이승준 감독: 달에는 바람이 불지 않잖아요, 촬영 시작 단계에서 어머니가 `예지는 할 줄 아는게 많아요.` 라고 말씀하셨는데 저는 잘 몰랐거든요. 머리로만 이해를 했지. 근데 촬영을 1년 정도하고 나니까 그런 것들이 보이더라고요. 그런 거예요, 저희 눈에는 안보이고 없다는 건데 있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달에 부는 바람은 없지만 있는 것이에요. 그리고 예지씨가 바람을 굉장히 좋아해요. 그래서 바람을 가져오게 되기도 했고요.




* <달팽이의 별>에 출연하신 조영찬씨와 김순호씨 부부도 오셨는데 두 분의 생각도 들어보고 싶네요.


<달팽이의 별>(2012) 트레일러 소개


조영찬씨: 저는 영화를 볼수도 들을 수도 없으니까 점자로 된 대본을 주셔서 읽었는데요. 읽으면서 느낀 것은 평소에 제가 의사소통을 점자로 해야 하고 몸이 약한 아내가 힘들게 점자통역을 해주는 과정이 참 힘들고 미안하게 생각이 했거든요. 저는 편한데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들은 많이 힘들 것 같아요. 사람들과 어울리고 대화하고자 하는 마음도 있는데 그러려면 많은 사람들이 도와줘야하는 어려운 과정 때문에 주로 혼자 책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내는데, 예지의 이야기를 보면서 나하고 또 다른 세계가 있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예지의 몸짓에서도 메시지를 읽어내기 위해서 어머니가 얼마나 애쓰셨는지  하는 생각을 했고, 지금 내가 소통하는 방식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깨닫게 되고, 불만을 가졌던 것에 대해서도 반성하게 됐습니다. 촬영할 때 뵙고 지금까지 못 갔는데 조만간 놀러가서 예지 손도 잡아보고. 손잡으면 획 뿌리치던데 그래도 예지의 표현방식이라 생각하고 꼭 손 한번 잡으러 가야겠습니다.



김순호씨: 일단 영화를 보면서 예지만의 소통법을 볼 수 있었어요. 우리는 눈으로 볼 때 교육을 틀에 맞게 예쁘고 좋게 있기를 원하는데 예지는 아주 자유로워 보였어요. 예지가 나름대로 엄마와 소통하는 모습, 표정을 보았어요. 그리고 예지의 얼굴에서 부모님의 극진한 사랑을 보았습니다. 그 얼굴에는 귀여움과 겁나는 표정이 아니라 편안한 표정이었고 제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부모님의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 영화에서 어머님을 나레이터로 사용하셨는데 그 이유와 내용은 어떻게 정리된 것인지 궁금해요.

예지어머니: 그 내용들은 제가 예지를 관찰하면서 일기처럼 쓴 내용 중에서 영화와 매치된 부분을 읽은 거예요.

이승준 감독: 다큐는 실존하는 분들을 다루기 때문에 그 분들이 쓴 글이 소중한 재료가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원래 일기를 쓰시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제가 어머니를 좀 귀찮게 굴었어요. 예지에 대해 느끼는 부분을 매일 써달라고. 그리고 영화에 맞겠다 하는 부분을 발췌한 거죠.



* 영화 보면서 어머님의 사랑을 많이 느꼈는데, 예지씨를 키우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 언제일까요

예지어머니: 매순간이 똑같죠, 저에게는. 예지가 11살에 학교를 갔는데 그 전에는 힘이 약하고 통제를 할 수 있어서 투정부리는 것도 괜찮았어요. 근데 나이가 들고, 욕구가 많아지고, 원하는 것은 많은데 표현은 안 되고 화를 내는 것밖에 없고, 저도 예지의 생각, 내면의 마음을 읽을 수가 없으니 그게 되게 힘들어요. 사실 영화에는 좀 덜 나왔지만 예지가 불만이 많으면 머리를 시멘트 바닥도 더 세게 박기도 해요. 이제 힘이 세지고 그 힘을 스스로 통제를 못하니까 화를 내면 걷잡을 수가 없어요. 거기다가 잠을 잘 안자니까 가족들도 잘 수가 없어요. 근데 아침에는 학교를 가야하니까 그 생활이 너무 힘들었어요. 지금은 안정이 돼서 좀 나아진 편이에요. 잠 못 자고 해야 하는 생활이 가장 힘들었어요.


*예지씨와 예지부모님은 상상하는 것보다 더 격한 감정을 많이 경험했을 텐데, 영화는 굉장히 담담해요, 그렇게 그리신 이유가 있나요?

이승준 감독: 다큐멘터리도 하나의 이야기죠, 그런데 여러분들이 익숙해져있는 이야기 구조는 헐리우드 영화처럼 문제, 갈등, 해결을 갖추고 있는 관습적인 것들이에요. 근데 다큐멘터리에서 담아내는 실제적인 일상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많거든요. 세상을 표현하고 드러내는 데에 그런 극적인 방식만 있는 것은 아니에요. 일상을 담담하게 그려냈을 때 재미는 덜할 수는 있어도 훨씬 더 실재에 가깝다는 거죠. 그리고 제게는 일상이 재밌고 바라보는 가치가 있다고 느껴져요. 또 보시면 영화에서 밥 먹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그거 대단한 장면은 아니잖아요? 그런데 그게 되게 소중한 거예요. 그런 소중함을 나누고 싶었어요. 



<달에 부는 바람>의 TG는 장애를 가지고 있는 분들의 참여도 이어졌는데요. 이를 통해서 단순히 영화에 대해서 궁금했던 것, 혹은 감상을 전하는 것을 넘어서서 장애인들을 위해 제작되는 Barrier Free 영화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가 좀 더 그들을 이해하는 시간이 될 수 있었습니다. 약 1시간가량 진행된 TG는 영화의 분위기처럼 담담하게, 하지만 따뜻하고 아름다운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글: EIDF 자원활동가 전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