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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IDF 2017/EIDF 2017 상영작

[EIDF 2017 스케치] <데이빗 린치: 아트 라이프 David Lynch: The Art Life> 다큐 콘서트 Doc Concert

궂은 날씨가 지나고 화창한 날씨가 찾아온 8월 25일 오후 7시 아트하우스 모모에서는 <데이빗 린치아트 라이프 David Lynch: The Art Life> 상영과 함께 다큐 콘서트가 열렸습니다. 이번 다큐 콘서트는 정성일 평론가 님이 진행을 맡아 주었습니다. 국내 영화평론계에서도 상세하며 깊은 영화 평론을 하기로 알려진 정성일 평론가 답게 이번 콘서트는 관객과의 대담 형식이 아닌 일종의 강연 형태로 진행이 되었습니다. '데이빗 린치'라는 인물에 대해서 정말 잘 알고 있지 않다면 알기 어려운 그의 작업세계와 인물에 대한 이해를 약 1시간 50분에 걸쳐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럼 지금 부터 이 영화에서 정성일 평론가가 주목한 부분과 우리들이 그 동안 어쩌면 오해하고 있었을지 모를 '데이빗 린치'의 독특한 작업 세계에 관한 콘서트를 여러분께 보여드리겠습니다. 


 (*평론속에서 '다큐'와 '영화'는 대부분 혼용되었고, 특별한 표기가 아닌 경우에는 모두 <데이빗 린치: 아트라이프>를 지칭합니다.)



1. <데이빗 린치: 아트 라이프 David Lynch: The Art Life> 다큐멘터리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의문점에 대한 설명.


정성일 평론가

오늘 상영된 이 영화를 사전에 아무 정보 없이 보셨다면 대부분의 관객분들이라면 아마도 자신의 예상과 달라서 당황하셨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한국에서 대부분 데이빗 린치는 영화감독으로만 잘 알려져 있지미술 작가로는 잘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처음엔 영화 작업에 관한 영화라고 지레짐작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린치가 그의 첫 장편영화 <이레이저 헤드>를 만드는 과정을 다루고 있지만 <이레이저 헤드>는 완성도 안 되고 끝나 버립니다말하자면 린치의 영화 작품 입구에서 다큐가 끝나 버리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이 영화를 볼 때 서로 알아야 할 한 가지 전제조건이 존재합니다. 이 다큐는 영화감독으로서의 '데이빗 린치'의 72세 생애 전반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린치의 32살, 미술 작가로서의 데이빗 린치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그의 영화 감독으로서의 이야기나 영화 작업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자 했던 분이라면 다소 생소한 경험을 하였을 겁니다. 

또한 본 영화에서는 '데이빗 린치'와 관련해서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사실을 알려주지 않습니다. 오늘 보신 다큐에서도 린치 자신도 무언가를 특별히 첨가하지 않았고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쪽에서도 린치에게서 알지 못했던 무언가를 털어놓으라고 요구하는 것 같지 않습니다. 즉, 이 속에서 린치의 사생활을 파헤칠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2. 본 영화를 연출한 연출자 세 명 (존 구옌/ 릭 반즈/ 올리비아 니르고르 홀름)의 연출 의도와 목적.


정성일 평론가

이 다큐에서는 일반적인 생애 다큐멘터리가 반복하는 질문과 답변 형태의 인터뷰가 전혀 존재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영화 감독에 관한 다큐는 시각적인 오버뷰overview만 보여주기 때문에 큰 흥미를 불러오지 않습니다만, 이 다큐가 특이하게 흥미진진해 질 수 있었던 점은 이 영화가 가지는 독특한 방법론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막을 내리면, 관객에게는 다큐가 얼마 안되는 분량을 순식간에 찍은 듯한 느낌이 들지만 이 영화는 무려 3년간 촬영을 했다고 합니다그 말은 수많은 씬을 잘라 내었다는 것이며 다큐에 담기기 위한 순간을 제외하고는 아낌없이 씬을 잘라내었다는 뜻입니다최종적으로 만들어진 <데이빗 린치: 아트라이프>는 데이빗 린치의 영화를 미러링하듯이 연출이 되었습니다. 홀름을 제외한 나머지 두 명의 연출자는 전작이 없을 정도로 경험이 많지 않은 감독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데이빗 린치의 수 많은 생애사와 인터뷰, 서적, 이론서, 해석서 등을 치밀하게 공부하였고, 마침내 데이빗 린치를 완벽하게 이해한 듯이 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다큐는 린치의 생생한 라이브를 찍었다기 보다 영화를 이론적으로 접근해서 촬영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다큐멘터리에서 린치가 미술 작업을 하고 있는 장면을 제외한 다른 장면은 명백하게 그냥 카메라를 세워두고 린치만 내버려둔 채로 찍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연출자들은 이미지와 사운드를 분리시키고, 둘 사이의 관계를 맞추는 것을 관객의 몫으로 두었습니다. 인터뷰에 맞는 숏을 찾지도 않고 씬을 토크에 맞추어 구성하지도 않았습니다다만 아주 최소한으로 자료화면을 사이사이에 인서트로 밀어 넣기만 했습니다. 이는 린치의 고유한 방법인 사운드와 이미지를 분리하는 작업을 미러링 한 것입니다. 다큐멘터리에서는 작업실이 딸려있는 린치의 공간은 방문했지만 끝까지 그의 집에는 방문하지 않고 머물러 있습니다처음부터 설정한 연출 방법인지 아니면 린치의 거절인지의 그 과정에 대한 정보는 없으나, 하지만 분명한 것은 린치의 집에 들어가기 두려워 하는 것, 바로 그것은 린치의 영화죠. (*린치가 영화에서 읊조리듯 말하는 부분에서도 학창시절에 학급 친구나 여자친구 그 누구도 자신의 집에 초대하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이 다큐는 영화 작업이 아니라 미술 작업을 찍었습니다이 때 영화에서 보여주는 것은 작품의 디테일이 아니라 작업의 디테일입니다. 마치 연출자 세사람의 다큐 팀이 우리를 이끄는 어떤 입구를 설정한 것 같습니다. 작업의 디테일을 보는게 핵심이라고 이해할 때에 이 다큐 팀은 린치의 (영화) 작업이 일종의 퍼포먼스 아트라고 선언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3. 동시대의 다른 미국 감독과 비교하였을 때, 데이빗 린치가 가지는 독창적인 관점과 그 미술적 배경


정성일 평론가
린치의 작품을 보신 분들 중에는 아마도 저와 같이 궁금증이 생기는 분이 있을 지 모릅니다. 린치는 미국에서 예술을 전공했을 때 특별한 학교를 다닌게 아닙니다굉장한 선생님을 만난것도 아니고 상식적인 교육을 받았을 것이며, 미술관에서 평범하게 설명을 듣던 학생이었을 것입니다. 즉, 다시 말해서 린치는 당대 미국 미술의 영향권안에서 양분을 받으며 자랐다는 것입니다. 당시 70년대 미국에서는 엔트로피를 내세운 일종의 컨셉 아트가 선풍적 인기를 끌었고, 60년대 부터 시작된 고 백남준 선생으로부터 시작한 비디오 아트나 셀프 퍼포먼스, 인스톨레이션 미술로 많은 미대생들이 끌려가던 시기였습니다. 미국 미술의 주류 경향속에서 대부분이 위의 4가지 길 중 하나로 향하고 있을 때 린치만이 미술을 포기하고 영화의 본고장인 할리웃으로 향했습니다그렇다고 린치가 블록버스터를 찍고 싶었던 것도 아닙니다. 그는 상업영화에 대한 지향도 없이 할리웃으로 갔습니다. 여기서 린치의 또 하나 이상한 점은 계속 대자본과 손을 잡고 영화를 찍고 있었다는 것입니다그의 대부분 작품은 할리웃의 자본 속에서 탄생했습니다린치는 다른 예술가들과는 다르게 할리웃을 비판적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만 린치는 할리웃이라는 '꿈의 공장'에 대해서 이상한 방식으로 뒤틀어 보았습니다꿈을 만들긴 만드는데 그게 나쁜 꿈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라는 물음을 제시한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미국의 예술가들은 '예술이란 역시 유럽이야'하는 환상 혹은 미국의 예술은 유럽에 빚진 감정, 유럽 예술에 대한 열등감 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하지만 린치의 놀라운 점은 유럽에 대해서 어떤 환상도 보여주지 않고 그 만의 독창적인 관점을 유지했다는 점입니다.

자 이제 린치 미술의 흔적들을 건드려보는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무엇보다 먼저 린치는 필라델피아 대학의 미술 학교를 다녔습니다그가 그때 보았던 작품이 있는데, 그 작품이 마르셸 뒤샹의 66년도 작품, 제목 <주어진 것: 1폭포 2가스등> 이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이 작품은 한명 한명씩 그 안을 봐야만 볼 수 있는 방법은 음란하기 짝이없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 구멍을 보면 세기의 기원처럼 벌거벗은 여자가 두 다리를 벌리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 전에는 여러명이 개방된 공간에서 볼 수 있는 미술 작품이었습니다만 1:1로만 볼 수 있는이 작품을 선보였습니다. 린치에게 영화적 경험이란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라고 생각해봅니다. 린치의 출발점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은 사람도 있겠습니다만 저는 66년의 뒤샹이 린치의 출발점이라고 주장하고 싶어집니다.


그렇다면 이제 린치의 작품을 감상하신 분이라면 어쩌면, 퐁피두 센터의 3층에 올라갔을 때 마주할 수 있는 그 작가의 작품을 떠올리셨을지도 모릅니다. 바로 프란시스 베이컨의 삼면화 입니다. 린치 자신도 인터뷰를 통해서 프란시스 베이컨의 그림을 처음 보았을 때 자기 자신에 새로운 가능성의 세계가 열렸다고 분명히 말했습니다린치의 작품에서 인물을 뭉개트렸던 그 이미지를 상상해 보십니오방향을 알수 없는 그 거리를 상상해 보십시오. 여기서 린치의 작품에 대한 한 미술 평론가의 평을 인용하겠습니다. '그의 그림을 볼 때 경의롭게 생각하는 점은 그의 그림은 추상으로 가지 않으면서 추상 직전에 머문다는 사실이다.' 인간이라는 형상을 추상화시키지 않고 구상과 추상 사이에서의 흔적이라고 머무는 것을 통해서 신경계의 지각을 드러내 보이는 베이컨의 도면과도 같은 그림들에 완전히 감동받은 부분입니. 베이컨이 그러했듯이 린치는 영화속에서 인간이란 종종 고기와 뼈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닌가 하는 느낌을 의도적으로 주었습니다. 린치의 작업에는 뒤샹그리고 베이컨으로 이어지는 그 어떤 미학의 선이 있습니다. 또한  치는 이 계보를 쫓아가며 괴상망측한 디테일을 이어나갔습니다. 

자 그럼 다시 영화로 돌아와서 <데이빗 린치: 아트라이프>는 린치의 그림을 보여주면서 카메라의 물리적 움직임으로 이미지의 움직임을 재현 시키고 있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입니다이때 다큐에서 저를 흥미롭게 만든 것은, 그림안의 디테일을 숏트로 커트하여 움직여서, 말하자면 물리적 절단을 통하여서로 다른 쇼트의 커트의 방식으로 이동시켰다는 점입니다

저는 이 방식, 이 방법론이 본 영화가 린치의 그림을 이해하는 방식이자 동시에 린치의 영화를 이해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Fin

다큐 콘서트는 마르셸 뒤샹부터 프란시스 베이컨으로 향하는 미적 변형의 과정에 대해 전하지 못한 이야기가 남아 있었지만 시간관계상 마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정성일 평론가의 지치지 않는 열정을 확인할 수 있었고, 남은 이야기는 다음에 좋은 자리에서 2부로 마련한다고 하였습니다. 아트하우스 모모에서는 처음으로 온라인 매진을 기록했었던 작품답게 많은 수의 관객분들은 영화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떠나지 않고 정성일 평론가의 강연을 경청하였습니다. 아마 이번 다큐 콘서트는 우리나라에서 쉽게 접하기 힘든 '데이빗 린치' 감독의 그 내밀한 시대적, 미적 배경부터 작업의 디테일까지 함께 접할 수 있었던 아주 귀중한 시간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단 이틀밖에 남지 않은 EIDF에 적극적으로 참가를 하여 지적호기심을 해소하고 마음의 양식을 가득 채울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글: EIDF 자원활동가 기록팀 김태형, 사진: EIDF 자원활동가 사진팀 박채원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