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EIDF 2017/EIDF 2017 상영작

[EIDF 2017 스케치] <도슨 시티: 얼어붙은 시간 Dawson City: Frozen Time> Doc concert

<도슨 시티: 얼어붙은 시간 Dawson City: Frozen Time> Doc concert

 

  <도슨 시티: 얼어붙은 시간>의 DC26일 오후에 열렸습니다. ‘컴필레이션 영화가 그리는 역사의 성좌라는 제목으로 곽영빈 평론가의 진행이 있었습니다. 다큐콘서트의 현장을 기록해보았습니다.  

 

 

 

  영화사 초기 20년까지의 많은 영화들은 러닝타임을 잘 알 수 없습니다. 왜냐면 당시에는 감독보다 영화사()의 힘이 더 강했기 때문에, 영화사에서 임의로 러닝타임을 조정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초기 영화의 필름이 발견됐다고 해도 그것이 전부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초기 영화사의 특성상, 도슨 시티에서 발견된 필름들도 그것들도 전부 확신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점이 주는 매력이 있는 겁니다. 이에 관하여, Walter Benjamin의 말을 인용해보겠습니다. 그는 과거를 역사적으로 기술한다는 것은 그것을 있는 그대로 인식한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과거의 진정한 모습은 스쳐지나간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우리가 이 영화를 곱씹는 데에도 중요한 지점을 제공합니다. 감독인 빌 모리슨이 과거의 스토리들을 어떻게 재구성할지 고민했는지 생각해보는 것도 흥미가 있을 것입니다.

 

  영화 말미에 도슨 시티에서 발견된 필름들의 진상을 밝히는 편지를 쓴 톰슨이라는 은행 위원이 나옵니다. 그리고 톰슨은 영화의 중간 부분의 월드 시리즈 조작 사건에 관한 에피소드에도 등장합니다. 이처럼 당대 역사 속의 각 지점들을 빌 모리슨 감독이 어떻게 이었는지를 살펴보면, 그가 도슨 시티에서 발견된 필름들을 보면서 그 안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거나 연결성이 희미하다고 생각됐던 점들까지 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는 감독은 그 점을 잇는 순서를 정하는 작업을 한 것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똑같은 점들도 잇는 순서에 따라 완성된 그림이 달라지듯이 이 영화에서도 연결 순서가 중요했다고 생각됩니다.

  도슨 시티에서 발견된 300여개의 수많은 필름들 중에서 어떤 식으로 점들을 선택하여 이을 지에 대한 방법론 중 하나가 줌 인(zoom in)입니다. 동적인 부분이 거의 없이 스틸사진이 계속 줌 인/줌 아웃되는데, 이 기법 자체가 처음 등장한 것이 도슨 시티에서 발견된 필름 중 하나였다는 점도 중요한 연결성입니다.

  빌 모리슨은 자신만의 일방적인 주관보다는 당대와의 대화를 통해 어떤 점들을 이어야 할지 결정합니다. 따라서 영화는 도슨 시티 자체의 거시사와 미시사 모두를 얘기합니다. 아이작이라는 추장의 죽음과 같은 한 개인의 작은 이야기들과 거시사를 엮어나가는 것 또한 줌 인&줌 아웃과의 연동을 통해 진행됩니다.

 




  이 영화에서는 Bruce Conner<A movie>에 대한 오마주가 발견되기도 합니다. 비행기 등의 교통수단으로 계속 상승하는 이미지가 이어지다가 오토바이가 떨어지는 것으로 시퀀스가 끝난 부분은 <A movie>가 이미지들을 연결했던 방식을 오마주하여 각 점들을 이은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불과 물의 대립도 흥미롭습니다. 제목은 얼어붙은 시간인데, 해동되기도 하고 모든 게 불타 없어지기도 합니다. 아시다시피 질산 필름은 불에 잘 타는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캐나다 국립 영상원의 모든 필름이 불타 없어져 모든 영화사가 사라집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도슨 시티의 땅 속에 얼려져있던 필름들이 이 부재를 다시 채워주게 되는 거죠.

 

  

 

 

  영화 마지막 부분에 어떻게 도슨 시티의 땅 속 필름들을 발굴하고 옮겼는지가 설명될 때, 그 내용들을 표현할 수 있는 옛날 필름들이 일러스트레이션처럼 사용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필름 운반을 위해 전화 통화를 했다는 설명이 제시될 때는 도슨 시티에서 발굴된 필름들 중 전화 통화를 그려내는 장면을 삽입한 것이죠. 즉 빌 모리슨은 일종의 사전으로 발굴된 필름들을 쓰고 있는 겁니다.

  하나의 캡션을 다는 것은 여러 이미지들 중 어떤 것을 선택한다는 것입니다. 도슨 시티에서 발견된 필름들도 다양한 점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잠재적으로 내포하고 있었을 수 있으며, 이 영화가 만들어진 방식은 이 필름들을 사전적으로 전체를 조합하고 풀어낸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겁니다. 마치 문장이 만들어질 때, 주어의 자리에 그/그녀 등의 여러 가지가 들어갈 수 있고 다양한 목적어와 서술어가 가능하지만 그 중에 하나씩을 선택함으로써 하나의 문장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런 맥락과 비슷하게, 영화사를 일종의 사전으로 만들어 썼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작업 중 하나로 <CNN concatenated (사슬로 이어붙인 CNN)>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작업의 정점이 <The Clock>입니다. <The Clock>의 러닝타임은 1440분입니다. 각종 영화들에서 나온 시계 장면들을 모아 24시간을 구성한 영화입니다. 24시간을 영화사에서 추려내 만든 시계인 것이죠. 그리고 빌 모리슨의 <도슨 시티: 얼어붙은 시간>은 이미지를 추출한 옛날 필름 속에 그 이미지가 등장했던 원래의 목적에서 벗어나 이미지를 변용해 사용함으로써, 도슨 시라는 자그마한 도시와 연관 없을 수 있는 세계사 전체를 함축하는 프레임으로 도슨 시티가 재탄생하게 한 것입니다. 이러한 작업들은 이미지들 중 어떤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인지를 주관적으로 추출해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엮을 수 있음을 보여준 영화들입니다

  그리고 <도슨 시티: 얼어붙은 시간>은 여기서 더 나아가 도슨 시티의 흥망성쇠를 영화의 가장 큰 프레임으로 조명함으로써, 실험 영화사 속의 성취들을 자기의 것으로 흡수하고 넘어설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들까지 응축하고 있는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를 사전적으로 조합한다는 것에 대해 더 얘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도슨 시티가 사전처럼 이미지를 사용하는 게 갖는 역설이 있습니다. 왜냐면 캡션이 없는 이미지는 무한히 가능한 점들을 갖고 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같은 의미를 제공하는 사전처럼 명확하게 정의되기란 매우 힘들기 때문입니다. 이미지적인 것을 사전화한다는 것은 무성영화가 있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갖던 꿈이었습니다. 이미지는 투명한 것이고 모든 사람에게 명확하게 전달될 수 있다는 이들의 생각에서 에스페란토(만국공용어)의 가능성도 제시됐던 겁니다.

  하지만 빌 모리슨이 <도슨 시티: 얼어붙은 시간>에서 영화를 사전화 했다는 것은, 역사를 그대로 재구성하려는 것도 아니며 당대 영화를 통해서만 재구성한 것도 아니라는 게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그는 이미지 자체의 불투명성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미지가 원래 존재했던 맥락을 제거하고 새로운 순서로 위치시킴에 따라 이미지의 맥락은 또 다시 달라지기 때문에, 컴필레이션의 특성상 이 영화에서 이미지의 불투명성은 필연적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것 때문에 우리가 이 영화를 보면서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아차리지 못하는 장면들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당시 다큐콘서트에는  많은 영상 자료와 ppt를 통해 심도 깊은 얘기들이 많이오갔고, 관객들도 집중하는 분위기 였습니다. 영화만 보았을 때는 몰랐던 그 주위를 둘러 싸고 있던 이야기들도 듣게되어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글: 자원활동가 기록팀 김나라

사진: 자원활동가 기록팀 박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