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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OX/디뷰어의 시네마천국

구글 베이비(Google Baby)_한 여성이 다른 여성을 돕는 일


구글 베이비(Google Baby)


지피 브랜드 프랭크(Zippi Brand Frank) | 15세이상관람가 | 76분 | 이스라엘, 미국, 인도 | 2009      


디뷰어 : 한유리




이제 기술적으로 섹스와 아이를 가지는 것은 분리가 되었고, 신용카드만 있다면 아이를 만들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이스라엘 기업가인 도론은 프로그래밍 업무를 인도로 이관해 비용을 줄이는 것처럼, 임신도 인도에 아웃소싱을 하려 한다. 미국에서는 3만 달러가 드는 출산 비용이 인도에서는 1/3 비용이니, Why not? 아이를 갖고 싶지만 가질 수 없는 부부에게 대리모 출산은 참으로 고맙고 희망적인 기술이다. 반대로, 아이를 수태한 인도의 대리모는 출산을 대가로 받은 돈으로 집도 사고, 자신의 아이를 학교에 보내면서 저소득 빈곤층의 생활고를 해결하게 된다. 대리모 출산 전문 병원의 병원장은 말한다.

"모두 봉사하는 마음에서 이 일을 합니다. 이 일은 한 여성이 다른 여성을 돕는 일입니다."



난자 기증자인 미국인 캐서린은 이번에 난자 기증을 통해 받은 대가로 새로 산 집을 꾸미겠다고 한다. 이전에도 난자 제공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받은 돈으로는 반짝이는 스테인리스 총기를 구매했다. 총기 구매 및 사격은 부부의 취미활동이다. 캐서린은 2주째 배란을 촉진하는 주사를 투여하면서 말한다.


"간단하게 생각하면 저는 일종의 로봇 같죠. 그 사람들이 약물로 저의 생식기관을 관리하고 있으니까요."


어린 딸은 엄마의 난자가 가진 가치를 아는지, 엄마가 배에다 호르몬 제제를 주입하는 것을 지켜보고 소독솜으로 닦아준다. 난자 기증에 대해 위험하지 않을까 걱정하지만 캐서린은 의연하게 말한다.


"저한테 위험하지 않은지 자세하게 물어봤는데 아직은 알려진 게 없대요.

최신 의학이기 때문에 그런 거겠죠.

이 시술 때문에 나중에 암에 걸릴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 때가 되면 암도 완전히 정복될 거에요."


영화에 나오는 모두는 웃고있다. 딱 대리모만 제외하면. 이상하게도 영화에서 보여준 인도의 대리모들은 한결같이 울고 있다. 어디가 아프냐고 묻지만 아무 데도 아프지 않다고 한다. 배아를 뱃속에 이식할 때도, 아이를 출산할 때도 대리모는 눈물을 흘린다. 분명 아이에 대한 어떠한 권리도 없음을 알고 계약했으며 병원에서 임신과 출산에 따르는 모든 지원을 해 주었고 또 충분한 대가를 받을 것이다. 그런데도 마음이 찢어진다고 말한다. 출산의 경험이 없고 미혼 여성인 나는 그 기분을 알 것도 같고 또 모를 것도 같다. 병원장은 분만실에서 수술을 하면서도 계속 전화로 영업 상담을 하며 금액을 언급하고, 울고 있는 산모에게는 이건 비싼 수술이라며 안심(?)을 시킨다. 백인 아이가 태어나자 영국 왕가의 아이가 태어난 것 같다며 기뻐하는 병원장의 모습과 머리에 핏대를 세우고 출산한 산모의 눈물흘리는 모습이 대비된다.



대리모를 하다가 5개월째에 유산이 된 아픔이 있는 딕샤는 다시 또 대리모에 지원했다. 남편은 대리모에 지원하는 것에 동의했다. 아니, 오히려 권했다.

"여자는 머리가 별로에요. 똑똑하지가 않죠. 하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머리가 잘 돌아가요. 얘 앞날은 어떻게 하고 학비는 뭐로 벌겠어요? 다시 대리출산을 하러 보내야죠.
얘가 장교가 될 때까지 뭐든지 할 거에요. 군인이 안 되면 경찰을 만들어야죠."

딕샤의 대리모 덕분에 수입이 생겨서 남편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 부인 덕에 인생이 바뀐 것이다. 남편은 뭐든지 하겠다고 했지만, 사실은 아내인 딕샤에게 뭐든지 시키겠다는 말처럼 들린다. 남편의 저 말에 울컥하는 내가 쓸데없이 오지랖이 넓은건지, 막상 딕샤는 무표정하다. 임신한 기간동안 최선을 다했고 힘들었다고 말하는 그녀는 병원장이 말한것 처럼 '다른 여성을 위해서 봉사하는 마음'으로 대리모를 지원한 것이 맞을까. 딕샤는 출산이 하나도 겁나지 않은 걸까.


대리모 출산은 국가마다 법률적으로 금지하기도 하고 제한적으로 허용하기도 한다. 대리모 출산은 누군가에게는 희망의 기술임이 분명하다. 성역이라고 여겼던 임신과 출산의 과정을 기술적으로 인간이 컨트롤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낯설긴 하지만, 어쨌든 이를 사업으로 하고 있는 도론은 합법적인 절차를 모두 밟고있고 윤리적으로 문제가 될 만한 것은 없다. 사업은 대기자가 줄을 서 있을 만큼 성황이다. 그런데 나는 걱정스럽다. 확실한 임신 성공을 위해 2명의 대리모에게 배아를 이식했는데 모두 성공한다면? 쌍둥이 이상의 태아가 만들어진다면? 장애를 가진 아이가 태어난다면? 임신을 한 동안 부모가 이혼을 한다면? 출산 과정에서 아이와 대리모의 생명 중에서 선택을 해야 한다면?


여성은 임신과 출산이 가능한 생물학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평생 출산을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여성의 신체가 가지는 특이성이 있고 나는 이를 거룩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영화를 보며 여성의 신체는 객체화하여 도구화하기 좋은 구조인 것을 알았다. 영화를 보며 자꾸 불편한 마음이 들었는데, 왜일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건 여성들의 선택에 주체성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분명 여성들이 제 발로 찾아가서 직접 서약하고 자발적으로 선택한 행위이다. 그러나 어쩌면 그 선택은 생업전선에 내몰린
여성이 어쩔 수 없이 가야만 하는 외길일 수도 있다. 대리모 출산을 '한 여성이 다른 여성을 돕는 일'인지, '한 삶이 다른 삶을 위해 포기하는 일'인지 혼란스러워진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당사자가 판단하는 것이고 함부로 다른 이의 삶에 대해 말할 수는 없지만 영화에 등장한 모든 여성들이 영 남 같지가 않다. 운 좋게도 난자 기증과 대리모 출산을 하지 않더라도 생계 유지가 가능한 환경에서 살고 있는 나는, 영화에 나온 여성들과 다른 삶을 살고 있는가. 학창시절 삼종지도(三從之道)를 도덕 교과서에서 배운 우리 세대는 주체적인 삶을 살고 있을까. 어쩌면 형태만 다를 뿐 알게 모르게 수동적인 삶을 강요당하고 무의식적으로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 자신에게로 질문이 귀결된다.


TIP. 국립중앙도서관(http://nl.go.kr)에 대리모에 대한 인식조사, 실태조사, 입법 방안까지 논의한 연구자료가 있다. 대리모 뿐만 아니라 전체 보조생식술에 대해 분류하여 체계적으로 정리를 해 놓았고 국가별 입법사항 및 실제 판례 사례도 있기 때문에 영화를 보며 의문이 들었던 부분이 다소 해결된다. 자료 검색 키워드에 '대리모'만 넣으면 무슨 대리모형적 접근, 대리모형적 분석.. 같은 불필요한 것까지 나오니 '출산' 또는 '입법'을 같이 넣어서 검색하면 잘 검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