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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OX/디뷰어의 시네마천국

티타임 <Tea Time>



티타임 <Tea Time>

리뷰어 김소망




<티타임>은 지금까지 내가 D-BOX에서 본 영화 중 제일 좋아하는 작품이자 2015 EIDF의 대상 수상작이다.


<티타임 Tea Time>  감독 : 마이테 알베르디/70분/칠레/2014


5명의 노부인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래, 60년 넘도록 매달 함께 차 마시는 모임을 계속 이어오고 있다. 각자 성격은 딴판이지만, 오랜 세월을 함께 하면서 서로를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관계가 된 것이다. 함께 지나간 시절을 추억하고, 최근 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젊음과 나이 듦, 우정, 그리고 지나간 것들에 대한 솔직하고 유쾌한 수다로 가득한 다큐멘터리.


영화는 다섯명이 한 달에 한 번씩 티타임을 보내고 그 날 걷은 회비로 삼삼오오 여행을 떠나 기념사진을 남긴 뒤 한 달이 지나면 다시 티타임을 갖는 내용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우리 나라 커피나 디저트도 꽤 고급 클래스라고 생각했는데 칠순이 넘은 칠레 할머니들이 매달 드시는 빵, 케잌, 차는 한국의 고급 디저트 까페와 비교해도 비쥬얼이 전혀 뒤쳐지지 않는다. 


맛까지 알 순 없지만 저렇게 생긴 애들이 맛이 없을리가 있나.

지금 당장 빵 사러 나가고 싶은 비쥬얼.jpg




할머니들은 아주 다양한 주제의 대화를 나눈다. 

'우리 시절의 여자'와 '요즘 여자'를 비교하고 사별한 남편이 젊은 시절 보냈던 연애편지를 친구들 앞에서 읽다가 카메라 앞에 선 할머니들 답지 않은 과감한 주제도 서슴지 않는다. 그리고 그 대화들을 통해 각각 할머니들의 정치적 성향이나 독립심, 로맨틱 지수들을 확인할 수 있다. 




할머니들의 대화를 듣다보면 이들이 정말 친해서 만나는 건지, 외롭고 적적해서 얘기 나눌 사람이 필요해 만나는 건지 모호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장장 육십년동안 만날 수 있는 관계란 어떤 관계일까. 어쨌든 내가 생각하는 것 정도의 끈끈함까지는 필요하지 않은 걸지도 모르겠다. 

감독의 의도일지도 모르지만 영화는 할머니들이 서로를 얼마나 끔찍이 아끼고 생각하는지를 보여주는데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는 나이가 들어도 굽히지 않는(아니면 나이가 들었기 때문에 더더욱 굽힐 필요 없는) 자신의 주장과 가치를 친구들에게 주저없이 보여주는 독립적인 여성들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도 빼놓지 않고 한껏 화려하게 차려입은 할머니들의 옷차림만 봐도 그들이 얼마나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의 삶을 아끼는 여자들인지 알 수 있다. 

영화의 80%가 얼굴 위주의 클로즈업 화면이라 관객들은 그들의 주름이 얼마나 깊게 파였는지, 그 위를 덮은 화장은 또 얼마나 진한지, 립스틱이 입술선을 따라 얼마나 또렷하게 그려졌는지를 살피는 재미가 있다. 게다가 할머니들의 장신구는 저거 어디서 사신거지?! 묻고 싶을 정도로 탐나는 것이 많다. 만약 감독이 남자였다면 완전히 다른 영화가 될 수도 있었겠다라는 지점이다.


그리고 이 할머니들의 이야기 뒤에 늘 존재하는 사람이 있다-그들의 가정부.


고등학교 동창 할머니들의 이야기지만 이들이 육십년동안 끈끈하고 호화로운 우정타임을 지속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집집마다 한 명씩은 있는 페루의 가정부가 있다. 감독은 그들의 육성을 영화에 많이 담지 않지만 화려한 빵, 그보다 더 화려한 옷차림의 할머니들과 저채도의 단순한 옷을 입고 별 말 없이 시중드는 가정부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대조되면서 남미 안에 존재할 계급 차이를 상상하게 만든다.


할머니들은 "옛날엔 이랬는데",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 요즘 사람들은" 이런 말들을 자연스럽게 내뱉으며 여자로서의 삶이 옛날과 많이 달라졌음을 인정하지만 고급 주택에 사는 여자와 그들을 위해 직접 빵을 굽고 차를 내리는 여자의 삶 사이의 간격은 그동안 별로 좁혀지지 않았다. 그리고 할머니들은 이것에 대해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다.



친구의 장애인 딸이 티타임을 축하하는 듯 해맑은 표정으로 플룻을 엉망진창 불어도 할머니들은 박수치며 연주를 감상한다. 너무 조용히, 아무 말 없이, 마치 체념했다는 듯 표정을 짓고 있는 게 문제라면 문제지만 그 순간 티타임은 단순한 수다 시간이 아니다. 매달 한 번씩 만난다 하더라도 서로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고 어쩌면 저 친구와 저 친구는 영원히 한 가지 의견에 오케이 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이 순간 그들은 하나의 테이블에 어깨를 맞대고 앉아 서로의 얼굴을 쳐다봐준다. 내 옆 사람의 인생을 인정해준다. 모두 다 수고하며 살고 있음을 말 하지 않아도 알고 있다. 그렇게 <티타임>은 겹겹이 쌓인 시간 속에 절대 빼먹으면 안 되는 시간으로 존재한다.





"하느님, 문을 넓혀주소서. 저는 들어갈 수가 없나이다. 
저 문은 어린이용인데 저는 안타깝게도 어른이 되었습니다.
문을 키워주실 수 없다면 저를 불쌍히 여겨 줄여주소서.
삶이 꿈같던 시절로 저를 돌려놓아주소서."
- 할머니의 기도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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