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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OX/디뷰어의 시네마천국

왕관을 써라(La corona, 2007)-왕관의 값

왕관을 써라(La Corona, 2007)

아만다 미첼리, 이사벨 베가케네트 Amanda Micheli, Isabel Vega



디뷰어 : 박혜경




 이 나라는 보통 질 좋은 커피가 생산되는 나라, 그리고 미녀가 많은 나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곳의 정치적인 상황까지 고려한다면 그렇게 간단하게 요약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좌익게릴라 세력과 극우 민병대에 의한 테러가 국가 곳곳에서 40여년간 지속되고 있다. 국경의 마약 카르텔은 물론 무장한 민병대세력과 정부군, 그리고 지역마다의 게릴라 세력들은 대체 무슨 정의를 위한 집단인지 생각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로 지역 내 범죄율을 증가시켰다. 그 결과 최신의 통계는 이 나라 내에서 2009년에서 2014년까지 약 8000여명의 여성들이 죽었다고 기록한다. 시간의 축과 피해의 범위를 조금 더 확장한 또다른 통계는 지난 10년간 국가 내 성폭력 피해자들의 수가 48만명에 달한다고 한다. 하루평균 131명의 약자들이 위협을 받고 있는 나라다. 이 때문에 대한민국 외교부는 이 나라의 대부분을 여행자제 혹은 철수권고의 등급으로 나누어 여행을 지양하도록 안내하고있다.


 이토록 위험한 나라는 바로 남미에 위치한 콜롬비아다. 사실 외부인의 눈으로 보면 콜롬비아의 수치는 그저 단순해 보인다. 너무나 먼 나라기에, 잘 알지 못하기에 더더욱 멀리 느껴진다. 그저 이렇게 위험하다는데 여행 목록에서 제외하는 정도로, 가끔 해외 외신을 통해 들려오는 콜롬비아의 소요사태에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는 맞장구를 보태는 정도의 반응을 보이게 된다. 그러나 콜롬비아에 대한 이런 평면적인 생각은 아만다 미첼리와 이사벨 베가의 2007년 작품 ‘왕관을 써라(La corona)’를 보게 되면 조금은 바뀌지 않을까 한다.


 ‘왕관을 써라(La corona)’는 콜롬비아의 보고타 국립여성교도소 안에서 열린 미인대회를 담은 50여분의 짧은 다큐멘터리이다. ‘코카인 아가씨’빼고는 모든 종류의 미녀선발대회가 있다고 할 만큼 미인대회가 흔한 콜롬비아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도소 안에서 미인대회를 연다는 것은 흔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 독특한 미인대회는 탈렌트나 가수, 유명 쇼호스트 등 유명인사들이 심사위원으로 초대될 만큼 큰 행사로 치뤄지게 된다. 이 거대한 행사에 주인공이 되는 인물은 교도소내 각 수감동을 대표해서 나온 인물들이다. 그 중 다큐멘터리의 중심을 이루는 인물들은 전직 살인청부업자였던 21세의 마이라, 게릴라활동으로 이미 6년을 복역한 24세의 비비아나, 흑인 게토지역에서 강도와 폭행으로 복역하고있는 23세의 엔젤라, 그리고 무장강도로 복역을 시작한지 얼마 안된 22세의 앤지까지 총 4명이다. 




 후보들은 각자의 피부 색뿐만 아니라 성격이나 매력도 모두 달라서 다큐멘터리를 보다보면 어느샌가 나도 4명을 판단하고 내 기준에 1위로 매김한 사람을 응원하게 된다. 사실 초반에는 잘 모르기 때문에 망설이게 된다. 먹을 것 주문하는 것도 어려워하는 내가 사람을 판단해야 한다니! 그러나 판단에 어려워하는 나와 달리 화면속의 사람들은 응원하는 후보가 명확하다. 아름다움에 대한 판단기준은 각자 다를 것 이지만 이 순간만큼은 자신과 같은 수감동 출신의 후보를 가장 아름다운 인물이라고 응원하게 된다. 그리고 미인대회에 대한 이들의 열정과 관심은 굉장히 진지하고 열광적이다. 

 

 미인대회에 대한 준비가 진행되는 영상을 보다가 문득 왜 미인대회를 열게 되는 것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만약 이 곳이 남성교도소였더라도 비슷한 종류의 대회가 열렸을까, 만약 다른 종류의 대회가 열린다면 미인대회가 여성교도소 수감자들에게 갖는 의미는 무엇일지의 질문이 머릿속을 채웠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이에 대한 감독분들의 인터뷰를 찾을 수 있었다. 


“제3세계에 속하는 국가들에서 대부분의 여성들은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하게 돼요.
특히 교육받지 못한 작은 마을의 어린 소녀들에게 미인대회는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서 도시로 탈출할 수 있는 기회이자
 그래서 앞으로 더 나은 삶을 살수있다는 희망을 갖게 하는 존재에요.”


 생각해보면 미인대회를 열기위해 필요한 비용은 다른 대회에 비해 드는 비용과 비교해서 굉장히적다. 기술을 연마하거나 훈련에 드는 시간이나 비용은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얼굴위의 화장, 의상, 그리고 약간의 장기자랑으로 구성된 단순한 미인대회의 준비과정이 이를 증명해준다. 아무것도 없는 여성들에게 가장 큰 무기이자 최대의 자원은 그들의 타고난 외모인 것이다. 따라서 이 자원을 활용할 수 있는 미인대회가 가까이 다가올수록 그들의 바람은 점점 강해진다. 비록 대회의 1위가 보장해주는 것이 아무것도 없더라도 그들은 좋은 무언 가가 있을 것이라 희망을 갖는다. 적어도 현재보다는 더 나을 거라고 바란다.



 

그렇다면 이 대회를 지켜보는 사람들은 어떤 입장에 있을까? 일단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사람들의 순위를 지은 나 스스로의 입장으로 보면 이 대회의 특징은 ‘판단이 단순하다’는 것이었다. 현재 콜롬비아의 정치처럼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인지, 어느 편을 지지해야 하고 어느 편을 배격해야 하는지에 대해 머리 아파할 필요가 없다. 단순히 내 눈에 예뻐 보이면 그 사람이 1위인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을 응원하면 된다. 그런 사람들의 판단이 모이고 모여 미인대회의 1위를 선정한다. 그러나 이때 판정단들의 판단과 다수의 판단은 물론 달라질 수 있다. 

 

 미인대회의 1위가 발표되고 난 뒤 1위를 거머쥔 수감동 이외의 모든 곳은 판정에 대해 불만을 나타낸다. 심사위원단이 공정하지 않았다는 근거에 대해 심지어는 심사위원이 인종주의자였기 때문이라는 의견까지 나올정도이다. 그들은 심사가 공정하지 않았다고 믿고 따라서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판정에 대한 신뢰를 할 수 없는 것은 그들이 이곳에 수감되기까지 겪어온 과정에서 그 첫번째 이유를, 그리고 후보자에게 투사한 자신의 모습에 두번째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



 감독인 아만다는 이곳에 수감된 사람들의 재판과정이 정의롭게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인터뷰를 통해 밝히고 있다. 각자가 선고받은 형기가 기은 죄에 비해 누구는 너무 과다하게, 또 다른 누구는 너무 짧게 설정된 것이 이곳에 수감되는 과정 자체가 공명정대하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교도소에 있는 사람들이요, 그 사람들의 죄목과 나이를 보세요. 얼마나 어린 나이에 그런 일에 휘말렸는지.
게릴라에 가담한 여성의 경우, 그리고 살인청부업자였던 여성을 보면 그 사람들은 지금 겨우 이십대란 말이에요,
얼마나 어린 나이에요. 살인을 저지른 사람은 8년의 형량을 선고받았아요,
게릴라에 가담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사람이 13년을 선고받았는데 말이죠.
그래서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람들이 선고받은 형량이 반드시 그 죄값에 합당한건 아니라는걸 알 수 있어요.
사실 그들에게 배심원에 의한 재판이란건 없어요. 그냥 재판관을 만나고 형량을 결정받는 거죠.
그리고 그 결정이 내려지는 시간 동안은 쭉 교도소에서 지내게 돼요.”


 그들 스스로 공정한 재판을 받지 못했다. 그렇기에 이 미인대회에서 내려지는 결정 역시 그리 공정하지 않은 것이라고 불만을 이야기 한다. 그 이외에도 ‘희망의 박탈’이라는 이유로도 그들은 불만을 표시한다. 자신과 같은 수감동의 사람이 미인대회에서 우승하면 어떻게 희망이 현실화 되는지 가까이서 볼 수 기회였는데 그 ‘희망을 목격할 수 있는 기회’마저 박탈 당한 것이다. 심사위원들의 불공정한 판정 때문에. 어쩌면 자신도 그 행운을 한번쯤 볼 수 있지않을까 바랐던 사람들의 마음이 미인대회를 이토록 중요한 행사로 만든 건 아닐까 싶다.


다큐멘터리가 40분 정도에 다다르면 미인대회의 우승자는 누구인지, 그리고 그 상으로 어떤 것을 누리게 되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 까만 화면에 적힌 자막을 읽고 나서야 이 다큐멘터리가 미인대회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를 깨닫게 되고 탄식하게 된다. 그리고 과연 미인대회의 우승이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 그 가치의 정도가 콜롬비아 여성들이 누리기에 적합한 위치에 있는 것인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짧은 다큐멘터리임에도 기억에 남는 몇몇 장면이 있다. 이야기를 망치지 않는 범위에서 그 장면을 뽑아보자면, 미인대회 후반에 비비아나에게 던져진 질문과 그에 대한 비비아나의 대답을 꼽고싶다. 진행자는 비비아나에게 이렇게 묻는다. “당신의 인생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합니까?”


 

그리고 비비아나는 이렇게 답한다. “인간의 존엄성이요.”

판정단의 귀에 그럴듯하게 들리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진심으로 말하는 것인지 나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그녀가 말한 인간의 존엄성과 당당함은 이 세상속에서 여성들이 피해자로 남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일지 생각하게 하는 부분이라고 본다.



왕관을 써라 감상하기




참고

 -통계: http://elpais.com/elpais/2016/05/17/inenglish/1463494726_319553.html,

         http://elpais.com/elpais/2014/04/09/inenglish/1397051121_749135.htm

-외교부: https://www.0404.go.kr/dev/country_view.mofa?idx=&hash=%23COL&chkvalue=no2&stext=&group_idx=3&alert_level=0

-감독 인터뷰: http://www.hbo.com/documentaries/la-corona/interview/amanda-micheli-and-isabel-vega.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