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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OX/디뷰어의 시네마천국

잠 못 드는 사람들 – 저물지 못하는 밤

잠 못 드는 사람들(2010) – 저물지 못하는 밤

감독 : 자클린 쥔트 Jacqueline ZÜND


디뷰어 : 김민범

 

  아직도 밤이다. 유난히도 긴 새벽이 그칠 줄을 모른다. 눈은 감길 줄을 모르고, 밤새 아침을 기다린다. 다큐멘터리는 제목처럼 잠 못 드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불면증에 시달리는 4명의 사람이 등장한다. 4명은 독백을 통해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해나간다. 그들이 잠을 못 자는 이유부터 모두가 잠든 시간을 버티는 방법까지 긴 밤을 메우듯 천천히 들려준다.

 




  우크라이나의 노인은 철야로 일을 해도 피곤한 줄 몰랐다. 다른 사람들이 피로감을 해소할 때에도 노인은 아무렇지 않게 다음 날을 살아갈 수 있었다. 기자들이 와서 그를 취재했고, 병원에 가서 검진도 받았다.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언뜻 축복 같아 보였던 불면은 그를 외롭게 했다. 대가족이 모두 침실로 향할 때, 그는 한편에서 TV를 켜고 전등불 아래에서 술을 따르며 밤을 대비한다. 긴 밤에 지쳐 부인 옆에 누워보지만, 20년간 오지 않은 잠이 지금이라고 올 턱이 없다.


 


  컬트 문화를 좋아하는 미국 애리조나의 밀라는 자신만의 밤을 보내는 방법이 있다. 수십 번 넘게 본 공포영화를 돌려보고, 한밤의 드라이브에 나서 도로를 배회한다. 24시간 마트에 가서 자몽으로 볼링을 치고, 슈퍼맨 옷을 입어보기도 한다. 다른 우스운 짓을 하고 나서도 밤은 가시지 않았다. 직업이 없는 밀라는 자신에게는 남들보다 두 배의 시간이 있다고 말한다. 낮은 일을 하는 사람들을 위한 시간이고, 밤이 그녀를 위한 시간이다. 주변은 여전히 고요하고, 시간은 남아있다.


 '


  부르키나파소의 제레미는 수다쟁이다.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말을 멈추지 않는다. 같이 밤을 보낼 카메라가 기쁘다는 듯이 한 시도 쉬지 않는다. 잠을 자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이 무겁고, 음울하다면 제레미는 가볍고 발랄하다. 극장 지기인 자신이 밤에 하는 일뿐만 아니라 낮의 일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려준다. 그런 제레미도 카메라가 없어지면 굳게 입을 닫는다. 밤은 그에게도 지독히 외롭다.


 


  간호사인 상하이의 린 역시 퇴근을 해도 일이 끝나지 않는다. 본인을 돌봐야 하기 때문이다. 야식을 먹고, 간호 수칙들을 계속 외워봐도 잠이 오지 않는다. 잠 못 드는 밤이면 어릴 적 트라우마에 대해서 생각한다. 린의 부모님은 사이가 좋지 않았다. 둘은 매일 밤 싸웠고, 린이 잠 못 들고 복도로 나와야지만, 언성이 잦아들었다. 린의 불면은 그때부터 시작됐을지도 모른다.

 

  감독은 인물들이 홀로 있는 장면과 그들이 마주하고 있을 밤의 장면들을 자주 비춘다. 비어있는 도로, 불 꺼진 아파트 단지, 이미 끊긴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까지 밤의 풍경들은 황량하다. 그들의 밤은 각자의 방식으로 정연하고 또 각자의 방식으로 쓸쓸하다. 저물지 못하는 밤이 아직 그들에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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