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팬지 콤플렉스 The Chimpanzee Complex 디뷰어 정송희
감독 마크 슈미트 Marc Schmidt
12세 이상 관람가
75분
네덜란드 / 스위스 2014
시놉시스
오랜 기간 동안 독방 생활을 했던 침팬지는 네덜란드 구조 센터에서 동족과 생활하는 방법을 다시 배워야 합니다.
동물이 동물답게 사는 방법을 사람이 가르치는 과정은 역설적인데요,
훈련 과정에서 감정적 대립 및 윤리적 문제가 발생하면서, 인간과 영장류 사이의 모호한 관계가 드러납니다.
인간의 관점이라는 한계를 뛰어넘어 다른 종을 이해하는 것은 과연 가능한 일일까요?
사실 이 영화를 끝까지 보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인간인 우리가 동물 세계를 들여다 볼 수 있는 건 겨우 다큐멘터리 동물의 왕국 같은 프로그램에서입니다.
동물들만의 기호와 서열, 언어를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특별하게 짜인 각본이나 줄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라서
보이는 대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했기 때문인데요,
"유인원의 재사회화"라는 단어조차 생소한 상태에서 영화를 지켜봤습니다... 그야말로 지켜봤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 영화가 왜 불편한 지 이유를 어렴풋하게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어렸을 때 읽었던 그리스 로마 신화가 떠올랐기 때문이었습니다.
인간의 운명에 종종 끼여 들어 장난을 치는 그리스의 신들..
제우스는 여자의 뒤를 쫓았고 헤라는 질투에 눈이 멀어서 제우스의 사랑과 관련된 인간의 운명을 비틀기도 하죠.
그러면 그리스 신들은 하나 둘 편을 나누고 이쪽 사람들을 흥하게 했다가 저쪽 사람들을 흥하게 하고,
그래도 마음에 안 들거나 수가 틀리면 엉망으로 헝클어놓기도 하는 그리스 신화 말입니다.
어렸을 때 그리스 신화를 읽으면서 그냥 놔둬도 인간들끼리 먹고 자고 싸우고 지지고 볶고... 잘 살텐데... 인간의 삶에 참견하는 것도 모자라 영향력을 끼치는 신들을 보며 참 얄밉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 얄미운 그리스의 신들처럼 우리 인간들 역시 알게 모르게 동물들한테 얄밉고도 위험한 행동을 하고 있었지요.
서커스, 아쿠아리움, 사파리 등등을 통해 우리는 동물들의 삶에 깊이 관여하고 그들의 삶의 체계를 헝클어놨습니다.
서커스에서 마치 사람처럼 잘 단련된 동물들, 예컨대 총을 쏘면 죽는 시늉을 하는 개와 자전거를 타는 원숭이를 보며 똑똑하다고 찬사를 보냈고, 비치볼을 떨어뜨리지 않고 굴리는 물개를 보며 좋다고 박수를 쳤어요.
그런 동물들에겐 간식을 더 줬고, 쓰담아 주기도 했습니다. 그렇지 못한 동물들에겐 채찍과 벌이 있었겠지요,
그리스의 신들이 인간에게 그랬던 것처럼...
몇 년 전부터 전(全)세계적으로 인간이 동물에게 행한 이런 행동들에 반성의 기미를 보이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과도한 서커스식(式)의 훈련을 하지 말자는 캠페인이 있었고 지금은 동물을 보는 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졌습니다.
네덜란드 구조센터는 서커스의 과도한 훈육이나 다른 동료들과의 교감 없이 사람에게만 의지해 사육된 경우 등등의 환경으로 인해 상실된 유인원의 사회성을 길러주는 유인원 재사회화 교육이 이뤄지는 곳입니다.
각각 다른 증상들로 인해 네덜란드 구조센터에 들어온 침팬지들이 있었지만 주목을 끄는 침팬지는 단연 모조였어요.
모조의 전(前)주인은 모조에게 매일같이 술을 마시게 했는데요, 이로 인해 모조는 침팬지의 특징을 잃고 우울증을 앓고 있으며 다른 침팬지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혼자 담요를 뒤집어 쓰고 동료들의 접근을 꺼리는 모조의 모습은 마음의 질병을 앓는 인간의 모습과 비슷합니다.
수의사들과 관리사들은 모조의 사회화를 위해 다른 개체들과의 접촉을 시도하는 등 무척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요,
여기서 드는 의문점 하나,
“굳이 침팬지들에게 재사회화 교육을 시켜야 하는가?”입니다.
사람들도 복잡한 사회생활에 지쳐서 외딴 곳을 찾아 떠나기도 하는데 그렇게까지 사회화 교육에 집착할 필요가 있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과 마찬가지로 유인원은 사회적 동물이므로 모두 다 어울려서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혼자 고립된 유인원은 정신적으로 이상이 있으므로 사회화교육을 해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반사회적인 아나키스트가 아닌 이상.. 인간 개개인의 선택에 자유를 부여하고 존중해주는 것처럼 동물에게도 선택의 자유를 줘야 한다고 주장하면 너무 앞서가는 것일까요?
인간의 눈으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동물은 동물의 특성에 맞게 존재해야 하는 건 아닐까요?
그리스의 신들이 인간의 운명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 옳은 것인가? 라는 질문처럼
인간이 동물의 세계에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이냐?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져보면 답이 어느 정도 나오는 것 같습니다.
속성이 다른 개체에 같은 기준을 적용해서는 안됩니다... 이것이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했던 이유였나 봐요.
물론 인간의 욕심과 무책임한 손에 의해 망가진 동물들을 유기하자는 뜻이 아닙니다.
인간이라면 피동적인 운명이 아닌 주체적인 운명을 살아가고 헤쳐 나가고 싶은 것처럼
동물도 인간의 잣대에 의해 단언을 하거나 결정짓지 않고 각 동물의 특성에 맞는 환경이 제공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카메라가 구조센터에서 서서히 빠져나와서 도로를 가로지르고 숲으로 향했던 것처럼
인간의 가치관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동물은 동물의 특성에 맞게 존재했으면 좋겠습니다.
다큐영화 <침팬지 컴플렉스 The Chimpanzee Complex>는
감상하기 불편했지만, 동물의 특성과 인간의 특성에 대해서 깊은 생각을 할 수 있었고, 지구를 함께 살아가는 동물과 인간의 관계를 되돌아보는 시간이 됐던 좋은 영화였습니다.
작품 다시보기 http://www.eidf.co.kr/dbox/movie/view/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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