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캐처(Dreamcatcher, 2015)
킴 론지노토 Kim Longinotto
디뷰어 : 박혜경
다큐멘터리를 보고 난 후 떠오른 무언가가 있었다. 다큐멘터리의 제목과도 비슷한 이름의 '포그캐처'가 바로 그것이었다. 포그캐처는 전 세계에서 가장 건조하다는 페루-칠레의 아타카마 사막에서 용수를 공급하는 장비로, 말 그대로 사막에 발생하는 안개(fog)를 잡아(catcher) 수분을 모아주는 역할을 한다. 포그캐처가 잡아낸 물들은 한 방울, 한 방울 모여 어느 새 커다란 물통을 채워놓고 주민들의 마른 목을 축여주며 사막의 생명을 공급한다. 일년 간 0.1mm의 비도 오지 않는 지구 위 가장 건조한 아타카마 사막은 그렇게 안개포집기의 도움으로 생명을 품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드림캐처를 본 후 '포그캐처'가 생각 난 가장 큰 이유는 아마 그 이름의 비슷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이름으로 시작한 생각의 꼬리는 이름만큼이나 비슷한 그 캐처들의 역할과 의미의 비슷함을 발견하게 했다.
<포그캐처(fog catcher, 안개포집기), 사진 출처: http://www.a10studio.net/fog-catchers/ >
킴 론지노토의 다큐멘터리 ‘드림 캐처’는 화려한 시카고의 야경을 담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그 화려한 야경 바로 뒤에 붙여진 영상은 그 화려한 도시의 길거리에 서 있는 여성들과의 대화 장면이다. 이 거대하고 화려한 도시의 모습과는 대조적일 정도로 거리의 그녀들의 모습은 초췌하고 어둡다. 백인에서부터 흑인까지, 10대 소녀에서 부터 20,30대 여성까지, 길거리에 서 있는 그녀들을 일반화 하기는 힘들지만 공통점이 있다면 그들은 성노동자로 일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성노동의 과정에서 수 많은 폭력을 경험한 생존자들이라는 것이다. 이미 수 많은 폭력을 경험했고 오늘 밤 역시 어떤 폭력을 만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은 다시 그 자리에 서 있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것 만이 그들에게 있어 유일한 생존의 수단이기 때문이다. 삶의 생존자가 되기 위해 그들은 폭력을 감래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렇게 매일의 위험을 감수하며 살아야 가는 그들의 몸과 마음이 결코 건강 할 수 없다. 노동의 경력이 쌓일 수록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은 더욱 낮아지고 암담한 미래에 대한 확신은 더욱 강해진다. 이를 회피하기 위해 약물과 술에 의지하게되고 이렇게 악순환은 계속 된다.
이런 그녀들에게 먼저 다가가서 “콘돔 필요해요?” 혹은 “모든게 힘들고 지칠 때 우리한테 전화하면 도와줄게”라고 말을 걸어주는 사람이 있다. 생존의 유일한 방법이 성노동 뿐이라고 생각했던 그들에게 다른길이 있을 수 있다고 이야기 해주는 사람이 있다. 다큐멘터리의 중심에 있는 드림캐처 재단의 브렌다 마이어스 포웰이 바로 그 사람이다.
그녀가 세운 드림캐처 재단은 여러가지 일을 한다. 저녁의 길거리에 나가있는 성노동자들에게 콘돔을 주고 이런 악순환을 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 성매매로 수감된 여성들에게 찾아가 상담해주는것, 학교에 찾아가 위기에 처한 십대 여학생들을 위한 방과후 모임을 운영하는 것. 심지어는 다시 재기하려는 여성들의 상담을 밤낮으로 받아주고 위로하는 것 역시 드림캐처 재단의 일이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은 무보수로 이루어 지고 있다. 돈을 받아도 쉽게 시작하기 힘든 이 모든 일을 무보수로 해 낼 수 있는 이유는 브렌다 그녀 스스로가 그 악순환의 고통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브렌다 역시 성 노동자 중 한 명이었다. 그녀는 25년간 성노동자로 일하면서 총에 맞은것이 다섯번, 칼에 찔린 것이 열 세번이었다고 떠올린다. 심지어는 얼굴 반쪽을 잃어버릴 만큼 생사를 오가는 심각한 사건을 견뎌 내기도 했다. 성노동자로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그리고 그 악순환에서 빠져나오는것이 얼마나 힘든지 누구보다 잘 알기에 브렌다는 성노동자인 여성들이 악순환에서 빠져나올수 있도록 그 모든 수고를 감당하는 것이다.
다큐멘터리에서 다루고 있는 여러 내용들이 있지만 그중 가장 충격적으로 다가온 것은 성노동자가 되는 배경에 대한 것이었다. 학교를 찾아간 브렌다는 자신이 성노동자로 일하게 된 배경에 어렸을때부터 시작된 성추행이 있음을 이야기 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들은 학생들도 자신이 성폭행 당한 이야기, 친척의 성폭행으로부터 자신의 가족들을 지켜내려 싸워온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가 경악에 입다물지 못한 나 스스로를 발견하게 되었는데 그들이 성추행, 성폭행의 대상이 되는 나이가 4~5세, 9세, 11세, 14세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 까. 너무나도 어린 나이에 시작되는 성폭력들에 놀람은 물론이고 그런 경험을 가진 학생들이 너무 많다는것에 다시한번 놀라게 된다. 그렇게 성추행과 성폭행이 어렸을 때부터 일상화 된 환경에서 그들이 택하게 되는 생존의 방법이 성노동과 이어지게 되는 것은 이상하다고 할 수 없다.
다큐멘터리 곳곳에 나오지만 사실 성노동자들이 그 일에서 벗어나는 일은 쉽지 않다. 하루벌어 하루 살아야 하는 그들에게 성매매는 너무나 익숙하고 빠른 방법이다. 그에 비해 그곳에서 벗어나는 일은 평생동안 해본 적없는 어색한 일이고 변화가 너무나 느린 방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큐멘터리는 절망하기 보다 계속 희망을 이야기한다.
<포그캐처의 눈, 사진 출처: http://www.bbc.com/news/world-latin-america-32515558 >
아타카마 사막에 서 있는 포그캐처는 단순한 그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포그캐처의 그물망의 눈은 안개 속 수분을 붙들 수 있을 만큼 촘촘하다. 그물망의 눈 하나의 가로 세로가 대략 1mm정도로 아주 세밀하게 짜여져 있다고 한다. 이렇게 촘촘한 그물은 그 황량한 사막에서 안개가 발생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수분을 모아 생명의 기초를 제공한다.
브렌다 역시 단순한 상담자나 강연가가 아니다. 성노동자들이 희망을 찾을때, 직업에 회의하게 될때, 그들의 삶에 변화를 생각하게 될 때, 그때를 놓치지 않고 그 작은 희망의 입자들을 모아나간다. 그녀들의 실수를 판단하거나 나무라지 않고, 촘촘하고 세밀한 걱정과 위로로 그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다. 희망이라는 말이 너무나 멀어보이는 그 황량한 환경 속에서도 희망을 모아내고 삶이 계속될수 있도록 도와 준다는 점에서 포그캐처와 드림캐처는 많은 부분 닮아있다.
포그캐처는 1956년 한 과학자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되었다. 처음 발명되었을 때 그의 손으로 세운 포그캐처의 갯수는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윽고 그곳이야 말로 포그캐처가 꼭 필요하다는 사람들의 생각은 더 많은 포그캐처를 세우게 되었을 것이다. 드림캐처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희망의 증거가 브렌다 단 한 명일 지 모르지만 앞으로 브렌다와 같은 또 다른 드림캐처들이 일어서고, 또 다른 이들이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주게 될 것이라 바라본다. 다큐멘터리의 후반부에서 보여주는 이전의 어두운 삶의 끊어낸 사람들의 모습들, 가족과 화해의 손을 내미는 모습들은 지금은 그런 희망을 품게하기에 부족하지 않다. 작품의 가장 마지막에서 브렌다가 부른 노래 가사처럼 말이다.
"너는 내가 되고 내가 사라질 때 까지... 세상의 모든 날이 끝날 때 까지 너는 내가 되고..... 여기까지(well, that's my song)!"
참고: 드림캐처 재단 http://thedreamcatcher.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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