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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OX/디뷰어의 시네마천국

떠남과 남겨짐. 그리고 살아간다는 것 <Gone 남겨진 교실>


떠남과 남겨짐. 그리고 살아간다는 것

<Gone 離開>


디뷰어: 김현정



진 싱젱 JIN Xingzheng | 전체관람가 | 78분 | 중국, 독일 | 2015




피상이 현실이 되는 때

OECD국가 중 최저수준의 출산률. 이미 접어들은지 오래인 고령화사회. 심각한 수준의 노인문제.

한국사회에 따라붙는 위와 같은 수식어는 이제는 지겨울 정도이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문제들이 바로 '지겨워'졌다는 것이다.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은 채 지속되기만 할 뿐인 문제들은 사람들에게 그 심각성을 전달해주지 못한다. 매번 뉴스로만 접하는 이야기들을 실제로 겪어보지 않은 불특정다수는 '그래도 세상은 잘만 굴러가고 있구만'이라는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솔직히 말해, 나도 그로 인한 문제를 직접적으로 겪지 않고 있으니 이런 문제들은 단순히 피상적으로만 느껴질 뿐이었다. 



전후 사정이야 조금 다르지만, 산아제한정책으로 인한 중국의 학생 수 감소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Gone>을 보면서도 그 문제점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기보단, 그저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 어떤 마음 속 움직임을 느꼈을 뿐이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이런 문제가 내 피부로 와닿았던 시절이 있었다. 아니, 잠시동안만 잊고 있었을 뿐 여전히, 혹은 평생 나에게 영향을 끼칠 문제였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이던 시절, 6학년과 5학년에는 반이 4개였고 그 아래로는 반이 3개밖에 되지 않았다. 어린 마음에도 당시에 '이러다 학교가 폐교되면 어떡하지? 그러면 내 모교는 영영 없어지는 건가?' 하는 생각을 가졌던 것을 분명하게 기억한다. 모교가 있다는 것은, 마치 돌아갈 고향 혹은 집이 있다는 것과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런데 그러한 모교가 폐교가 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린다니,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물론 사람들마다 느끼는 것이 다르니 그것이 무슨 중요한 문제냐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여전히 내게는 중요한 문제이다. 그렇게 반의 개수가 점차 줄어들던 내 모교는, 다행히 아직 폐교되지 않았다. 지금은 각 학년에 반이 2개라고 한다. 


시골의 이야기냐고? 내가 살던 곳은 서울이었다.

그렇게 피상은 현실이 되어 다가왔다.



산아제한 정책, 혹은 억척스러운 삶의 현장


중국 저장성에 있는, 폐교가 되어버린 학교의 모습들을 조용히 비추던 카메라는 한 마을주민을 비춘다. 그는 폐교의 원인을 산아제한정책에서 찾는다. 사실 최근까지만 해도 중국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인구를 조절하기 위해 다소 극단적이라 할 수 있는 산아제한정책을 실시했다. 한족이 아닌 소수민족은 아이를 둘 낳을 수 있게 하는 등 여러 현실적인 조치를 취하긴 했으나, 어찌되었든 중국 인구의 92%를 차지하는 한족들은 아이를 하나밖에 낳지 못했다. 아이를 더 낳게 되더라도, 높은 벌금을 물지 않으면 호적등록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그렇게 아이의 첫 울음소리는 점차 들리지 않게 되었다.




중국이 2015년에 들어서 산아제한정책을 완화하였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다큐를 보는 내내 작은 의문이 들기도 하였다. 물론 연도의 차이도 있지만, 넋두리처럼 계속되는 그녀의 말을 들으며 감독이 이 주제를 강하게 밀기 위하여 설정을 한 것은 아닐까? 어쩌면 다시 아이들의 수가 늘어서 그 학교들이 살아나고, 더 활기차질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나 이는 어리석은 생각에 불과했다. <Gone>이 단순히 산아제한정책으로 인한 학생 수 감소에 대한 이야기만 하고 있지 않다는 느낌이 계속 들었던 것이 바로 그 의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다큐의 초점은 어쩌면, 중국 정부가 초래한 현실 속에서 치열하게 혹은 억척스럽게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지 않을까.


산아제한 부서의 사람들이 둘째를 낳았다는 이유로 벌금을 물리려 계속해서 찾아왔을 때, 낙태는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던 즈쭈옌의 엄마의 말이 강렬하게 다가온다. 그녀는 돈보다 생명이 중요하다는 거창한 말도, 겉만 번지르르한 말도 아닌 그녀의 절박한 현실 속에서 우러나온 말을 하지만, 그 어떠한 말보다도 우리의 머리를 강렬하게 내리친다.

"돈을 독촉하러 오는 사람만 있고, 왜 도와주러 오는 사람은 한 명도 없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삶, 인생, 활착(活着)

어긋난 이들의 시선은 무언가를 말해주는 듯 하다.



다큐를 보며 위화의 소설이자 장이머우 감독의 영화 『活着』이 떠올랐다.  『活着』은 한국에서는 『인생』으로 번역되었지만, '살아간다는 것'에 가까운 뜻을 가지고 있다. 전혀 다른 내용이지만, 그 '활착-살아간다는 것'이라는 단어는 다큐 속 그네들의 삶을 표현하고 있는 것 같았다. 활착, 다소 생소한 단어이지만 생명과 삶을 꼭 붙들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단어는 그렇게 그들의 삶도 가리키는 듯 하다. 그렇지만 그들은 시끌벅적하지 않다. 



담담한 듯 이야기를 내려놓지만, 시선 둘 곳을 찾지 못하고 이리저리 헤매는 아버지와,



생활고로 인해 가족을 버리고 떠난 엄마가 마치 자신의 탓이라는 듯, 꿈이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사장님'이라고 이야기하는 아이는 그렇게 다시 그들의 삶을 살아간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도시락 통 하나 쉽게 제대로 닫지 못하면서도, 학교에서 나온 변변치 않은 급식이지만 엄마를 드리기 위해 집으로 싸가는 모습은 우리의 마음을 깊게 울린다. 동요도 제대로 읽지 못해 마냥 어리다고만 느껴지던 아이의 순수한 말은, 되레 우리가 어렸음을 깨닫게 해준다. 자본주의 사회에 적응할대로 적응해버린 우리에게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준다.


"맨날 드리는 것은 아냐. 그러면 나는 하나도 안 먹는 줄 아실테니까"



離開, 떠나다

다큐의 제목인 <離開>는 중국어로 '떠나다'라는 뜻이다. 정부가 초래한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을 담고도 있지만,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학교의 모습도 놓치지 않고 있다. 아이들에게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호되게 가르치는 선생님이 있는가 하면, 네 명의 아이들에게 정성스레 음악을 가르치는 선생님도 있고, 학교의 마지막 남은 학생 두 명을 열심을 다해 가르치는 선생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수는 점차 줄어든다. 나름 '중앙'이었던 랑커중앙소학교에는 학생이 8명밖에 남지 않았다. 산아제한정책이 원인일 수도 있지만, 더 나은 교육환경을 위해 부모들은 자녀를 38km나 떨어진 새로운 청난'중앙'소학교로 보낸다. 아이를 혼자 지내게 할 수는 없어서 매일 생활비에 부담이 되는 수준인 버스비를 내면서도 새벽같이 일어나 통학 준비를 한다. 교육에 대한 탐욕에 가까운 열정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그들은 그저 그들의 삶에 최선을 다하고 있을 뿐.



랑커소학교의 교장선생님은, 미소를 지으며 학교의 현실에 대해 대답한다. 그의 미소는 이해하기 힘들다. 이미 예견한 현실에 대한 달관일까, 아니면 학교를 지켜내지 못했다는 씁쓸한 미소일까. 왜인지 모르게 그의 온화한 미소에, 애잔함이 밀려온다.






카메라가 무엇인지도 잘 몰랐던 즈쭈옌은 어느새 카메라 앞에서 부끄럼을 타는 귀여운 소녀로 자랐고, 그녀의 부모는 드디어 그녀의 호적등록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정부의 도움으로 학비 걱정없이 학교도 다닐 수 있게 되었다. 그렇지만 랑커소학교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그들의 삶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사라지는 것들과 남은 자들의 삶. 즈쭈옌이 남기고 떠난 인형처럼,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남는다. 하지만 남은 자들 마저 사라지고 있는 상황에서 남겨진 교실은 어쩌면 단순히 남겨지는 것이 아니라, Gone- 그저 바람처럼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 







<Gone 남겨진 교실> 감상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