멧돼지 사냥
Wild Boar Hunting
김민지 KIM Min Ji
12세 이상 관람가 65분 한국 2016
리뷰어 : 노효섭
원시 수렵시대 이후 농경이 시작되고 정착을 한 이후로 사람들의 생활양식은 계속 달라져왔다. 생존본능을 충족하기 위한 도구로 농경을 수렵 및 채집 다음으로 채택한다. 그리고 기술이 발전하면서 잉여생산물이 생기고 거래가 활발해지고 화폐경제가 생기면서 먹고사는 방법이 더욱 다양해져왔다.
하지만 먹기 위해서 농경은 선사시대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왔다. 다른 경제활동을 통해 돈을 벌 수 있어도 먹고는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농부들도 항상 있어야 했다. 그리고 영화의 배경 통영에서는 인간의 생존본능을 위협하는 망치는 멧돼지들이 등장한다.
미디어를 통해 우리는 보통 멧돼지들이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내려와서 사람들을 공격하고 한 해 농사를 망쳐놓는 모습을 접하게 된다. 그리고 이 영화는 멧돼지가 사냥되는 현장을 보여주고 멧돼지에게 밥을 주는 산 속의 노부부를 보여주면서 기존의 인식에 반대되는 생각을 들게끔 한다.
인간이 발전하면서 인간은 자연을 이용하는 감시자로서 군림해왔다. 감시자의 명목으로 생물을 관리하기 위한 체계를 만들었다. 멸종위기종이라는 카테고리 하에 생물을 두어 그들의 생태를 보전하기 위해 노력하기도 하고 너무나 많은 개체수로 인해 생태계에 해악이 되는 종을 지정하기도 했다. 그리고 인간은 생태계를 이루는 한 동물 종으로서 유해동물 또는 멸종위기종의 프레임을 벗어난 위치에서 번식을 해가고 있다. 어떠한 환경다큐나 환경단체 또는 동물 보호단체들은 그러한 인간의 모습에 대해서 과연 인간이 무엇이길래 어떤 존재이길래 그런 결정을 내리고 힘을 휘두르는가에 대해 화두를 던진다.
난 이 영화를 보면서 몇가지 장면이 오버랩되었다.
얼마 전 영화로도 제작된 일제치하에 단행된 호랑이 사냥. 이로 인해 우리나라의 산 속에는 야생 호랑이가 사라졌다. 여전히 우리나라 산 속에 호랑이가 많이 있어서 사람을 공격한다면 어땠을까?
또 합법적으로 사냥을 당하는 동물인 뉴트리아가 떠오르고 이어 여러 생각을 하게 됐다.
멧돼지도 대부분 그러하지만 뉴트리아 사냥에 대해 반대하고 불쌍히 여기는 사람은 적다. 이 영화는 멧돼지를 사냥당하는 불쌍한 동물로 여기도록 유도하는 듯하다. 영화는 유해조수를 지정해놓고 개체수를 통제하는 것은 우리 인간의 오만이 아닌가에 대해 생각해보라고 한다.
우리는 보고싶은 것만 본다. 자연과 함께해야한다는 의식은 대부분 가지고 있지만 그런 프레임을 어디에 씌우고 안 씌울지는 각자가 결정한다. 마찬가지로 육식을 반대하는 사람이 있지만 쇠고기를 먹는 사람들이 있고 뉴트리아 사냥이나 모기 같은 벌레의 박멸에는 찬성하지만 서식지를 잃은 멧돼지는 불쌍해지는 것이다. 벌레는 서식지자체를 파괴하는 방법을 쓰면서 말이다. 우리는 벌레를 박멸하는 업체를 고용하고 벌레가 나타나면 소스라치게 놀라고 바로 죽이곤 한다. 왜? 유해한 동물이니까? 그런데 왜 우리는 불쌍함과 정당성을 커다란 동물에게만 더 씌울까. 멧돼지의 유해조수 지정에 대해 불합리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거나 멧돼지가 불쌍하다고 여기게 되는 사람들은 여전히 벌레는 박멸해도 마땅하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멧돼지사냥을하는 개들의 본능. 개들의 무리지어서 먹이를 사냥하는 본능 살기 위해 땅을 파헤치기도 하고 도망가기도 하는 멧돼지의 생존본능이 맞부딪친다. 그리고 여기에 인간의 본능이 함께 부딪친다.
멧돼지들이 아무런 의미 없이 인간의 영역을 침범한 것이 아니다. 개체수는 불어나는데 인간들의 개발로 인해서 멧돼지들의 서식지가 공격받았기 때문에 그들의 생존본능의 이끌려서 먹을 것을 찾아 인간이 사는 곳에 내려왔다.
그럼에도 두리도 농민의 상황에서는 멧돼지 개체수 조절을 인간의 오만이라고 볼 수 없다. 그들에게 멧돼지는 인간의 생태에 위해를 가하는 존재다. 반면 삼순이 사순이를 돌보는 태백산 노부부의 생계는 멧돼지들이 해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들에게는 멧돼지들이 가까이 사는 귀여운 동물들인 것이다. 그렇다고 두리도사람들이나 사냥꾼이라고 생물을 죽이고 아무 감정을 안 느끼는 잔학무도한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그 방법이 살아남기 위한 방법인 것 뿐이다. 태백산의 노부부에게는 멧돼지라는 존재가 모성을 자극하는 귀여운 반려동물이지만 두리도의 주민들에게는 생존본능을 위협하는 존재이다.
내게는 우유를 먹기만 하면 화장실을 가는 친구가 있다. 그의 몸은 우유를 제대로 소화시키지 못해 거부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그는 우유 애호가이다. 그래서 우유를 자주 먹고싶어하지만 어쩔 수 없이 자제할 수 밖에 없다. 반면 나는 우유를 먹는다고 해서 특별히 힘들거나 하지 않고 유가공품또한 좋아한다.
우리 둘 다 우유를 좋아한다.
그러나 각자의 몸은 우유를 다르게 대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두리도에서는 사람의 안녕을 위해 개발이 불가피했고 개발하면서 나무를 손질하고 보기 좋게 손질하는 과정에서 멧돼지의 생태를 파괴했다. 사람들이 자연환경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개발자는 물론 생태계의 파괴를 최소화 하는 방법을 사용하기 위해 노력해야한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는 개발업체가 뒤처리를 해야하는 것 아닌가 하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공학자적인 입장에서, 개발자의 입장에서는 그런 행동이 수지에 맞지 않는 행동이다. 개발업체는 이윤을 추구한다. 비용 대비 결과를 최대로 이끌어야 하고 계약서에 최대한 충실히 개발을 진행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개발사에 수주를 주는 지자체도 예산 사용을 최소화 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개발사는 숲의 뒤처리를 안 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생태계 보전을 위한 뒤처리를 위해서는 발주처에서부터 뒤처리를 위한 예산 확보를 해 숲의 뒤처리에 대한 계약까지 해야한다. 현실적으로 이루기 힘든 이야기다.
시장에 대한 정부의 개입여부에 따라서 경제 구조를 구분하는 것처럼 더욱 커다란 관점에서 보면 자연을 통제하는 방법도 어떻게 보면 인간의 종족 보전이라는 본능을 따르는 자연스러운 모습일 수도 있고 그런가 하면 자연보호를 제창하면서 그대로 두자는 입장 또한 인간의 생태계 컨트롤 방법 중 하나로 생각해볼 수도 있다. 그들 또한 인간이 어떤 존재라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가에 대한 논쟁의 도마 위에 올라가서 칼질 당할 건덕지를 안고 있다. 진정한 무위자연이란 무엇일까. 자연을 그대로 두고 받아들이자는 입장으로 자연을 컨트롤하려는 사람들과 인간이 개입하는 방법을 통해서 컨트롤하려는 사람들의 건전한 논쟁을 통해 낳는 결과를 말 없이 응원하는 사람들이 진정한 무위자연주의자들이 아닐까하는 무리한 생각을 해본다. 물론 그러한 논쟁이 일어나는 것 또한 인간이라는 동물의 본능에 의거한 결과이므로 그 본능에 충실해 건전한 논쟁을 이끌어가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모습이고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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