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 바이 사이드(Side By Side, 2012)
크리스토퍼 케닐리 Christopher Kenneally
디뷰어 : 박혜경
2016년 7월, VHS의 생산이 중단된다는 소식을 읽게되었다. 생각해보니 우리집도 몇 해 전 이사할 때 비디오 플레이어를 미련없이 처분했다. 집 주변의 비디오 대여점들이 서서히 문을 닫은건 아마도 이 뉴스의 복선이었을 것이다. 다른 것들은 어떨까 싶어서 찾아봤더니 한때 나의 선망이 되었던 MD플레이어는 진작에 생산이 중단되었고 3.5플로피 디스크 역시 서서히 생산이 중단되고 있는 중이란다. 그러고보니 2009년 구입한 랩탑의 업데이트가 더이상 지원되지 않는다는 안내문을 아무렇지 않게 무시할 수 있게 된 것이나 2011년 구입한 핸드폰의 업데이트가 오래전 멈춘것도 한참 되었다. 중단되고 잊혀지고 사라지는것은 VHS만이 아닌것이다. 그간 내 손에서 애지중지되었던 전자사전, 여러개의 mp3, 수많은 플로피 디스크, 핸드폰들이 다 그런 역사를 걸었고 지금 책상서랍속 깊숙한 곳에 내 망각을 흙더미 삼아 묻혀졌다.
중단되고 잊혀지고 사라지는것들에 대해 이야기 하자면 다른 어떤 작품보다도 다큐멘터리 ‘사이드 바이 사이드’가 떠오른다. 다큐멘터리 ‘사이드 바이 사이드’는 크리스토퍼 케넬리감독이 2012년 제작한 작품으로 영화산업에서 디지털기술이 가져온 변화에 대해 그리고 있다. 키아누 리브스가 제작에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직접 인터뷰어로 질문을 던지며 기존의 필름영화가 가지고 있는 매력은 무엇이며 디지털영화는 어떻게 혁명을 일으키고 있는지 기록하고 있다. 기술의 발전과 영화의 변화에 대해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만약 과학이나 기술에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다큐멘터리를 시각기술의 발전사에 대한 자료로 즐길 수 있을 것이다. 혹은, 영화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라면 자신의 본 영화들의 이야기와 효과들이 어떤 조화를 이루었는지, 각 감독들이 영화기술을 적용하는데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고 그 결과 그들의 작품은 어떤 성취를 이루었는지 흥미롭게 지켜볼 수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나는 문송(文悚)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동시에 시류에 흔들리는 영화취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다큐멘터리를 그런식으로 분석해 내지는 못했다. 나에게 이 다큐멘터리는 새로운 것에 대해 사람들은 어떤 태도를 가지는지 보여주는 사회과학적 실제로 다가왔다. 어떤 기술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유효성이 줄어들며 유속이 점점 느려질 때, 그리고 다른 기술이 아주 빠른 속도로 기존의 기술을 제치고 자신의 진로를 만들며 흘러나갈때, 그 두 기술이 부딪히는 지점에서는 틀림없이 무언가가 쌓이기 마련이다. 그때 쌓이는 ‘무언가’의 대부분은 우리는 왜 변해야 하는지, 이전의 기술은 우리에게 무엇을 주었는지, 그리고 새로운 기술은 우리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의 기록들일 것이다. 물론 주류를 차지한 새로운 기술에 대해 느낀 섭섭한 점과 놀라움을 이야기하는것도 빠질 수 없다.
키아누 리브스는 인터뷰에서 사람들을 향해 ‘필름은 생명을 다 했는가?’라고 묻고있다. 그에 대해 누군가는 ‘예’라고 말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아니오’라고 말한다. ‘예’인 이유 혹은 ‘아니오’인 이유들은 영화의 질감, 색감, 컴퓨터 그래픽, 상영과 배급, 해상도, 아카데미나 선댄스같은 영화제에서의 인정 같은 아주 다양한 관점에서 조명된다. 기존 기술인 필름영화를 옹호하는 가장 중심적인 인물은 크리스토퍼 놀란과 딕 포프이다. 그들은 필름 영화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의 생기와 음영은 디지털이 따라 잡을 수 없는 것이라고 이야기하며 디지털영화 제작과정이 지니는 편리함과 효율성은 깊이없는 영화들을 만들어내고있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깊이 없는 영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그들의 지적은 그만큼 디지털영화의 제작이 필름영화에 비해 저렴하다는 반증일 것이다. 다시말해 필름영화 제작의 높은 제작비와 상영과 배급에서의 비효율성, 영화의 스토리텔링범위를 제한시키는 특성들은 디지털영화가 왜 주류를 차지하게 되었는지를 이해하도록한다. 스타워즈 시리즈를 만들어낸 조지 루카스와 아바타를 만들어낸 제임스 캐머런, 슬럼독밀리어네어의 대니 보일 등은 디지털영화의 장점과 변화에 대해 받아들여야 한다며 필름영화의 장래에 대해서 부정적인 의견을 비치고 있다.
그렇다면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이들은 어떤 의견을 지니고 있을까? 나는 이 영화를 제작한 사람들은 필름영화에는 작별의 손을, 디지털 영화에는 환영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고 본다. 필름 영화의 발전보다 디지털영화의 발전에 보다 상세한 설명을 나르고 있는것, 그리고 무엇보다 디지털영화에 대한 나레이션이나 인터뷰의 배경음악으로 긴장을 이끌어내는 소리를 깔아놓는것이 가장 명백한 증거일 것이다. (전자음악의 배경소리는 디지털영화의 발전이 얼마나 많은 용기가 필요한 혁명같은 일이었는지 그 긴장의 순간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려는 듯 사용되고있는데 그 배경음악을 자각하게 되는 순간 다큐멘터리가 다소 피곤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
필름영화와 디지털영화로 대표되는 기존기술과 신기술 사이의 갈등은 사실 새로운 형태의 갈등이라고 보기 어렵다. 필름영화가 등장할 때도 이전의 연극이라는 매체와 비교해서 동일한 형태의 비판이 있었을 것이다. 필름영화라는 매체가 연극이라는 매체의 예술성과 진실성을 파괴하고 있다는 요지의 비판이 아니었을까. 시간이 흐르고 나면 언젠가 디지털영화 이후의 신기술이 기존 디지털영화가 지니고 있는 예술성을 저해할 것이라는 변호가 나올지도 모를 일이다.
영화를 보고 난 뒤 사람들은 디지털영화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게 될 지 궁금하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이야기한 필름영화만이 지니는 예술적 깊이도 설득력있고 워쇼스키 감독들이 이야기한 디지털영화의 민주성에 대해서도 동의한다.
그러나 그 모든걸 아우르는 마틴 스콜 세지 감독의 이야기가 어쩌면 이 다큐멘터리를 바라보는 내 결론에 가장 큰 기반이 되어주지 않았나 싶다. 조지 루카스 감독의 말을 인용한 “디지털은 도구에 불과하다”라는 말에 나는 가장 큰 동의를 보낸다.
망각과 잡동사니들로 묻어놓았던 오래된 기기들을 다시 꺼내 볼 때가 있다. 대청소를 하는 계절, 혹은 오래된 전화번호나 메모를 꺼내보아야하는 기회에 그 깊은곳에 묻혀졌던 기기들을 꺼내 충전하고 그 안에 들어있는 음악을, 글들을, 사진들을 꺼내 본다. 신기하게도 그때의 글과 사진들을 다시 보는것만으로도, 옛날 기계속의 음악을 다시 재생하는것 만으로도 그 물건들을 신나게 쓰던 때의 생각이 되돌아 온다. 덮여져 있었지만 아직 쓸만하다. 아니, 쓸만할 뿐만 아니라 내가 그때 어떤사람이었는지 다시 기억나게 해주기에 꼭 필요하다.
이 세상에 나온지 오래된 기술들 역시 비슷하다고 본다. 그때의 기술이기에 만들어낼 수 있었던 빛깔과 형식과 이야기가 있을 터이다. 그리고 그 기술이 현대에 적용되었을 때 전달할 수 있는 또다른 스펙트럼도 존재할 것이다. 새로운 것은 이전 기술의 온전한 대체라기 보다 가능성의 저변을 넓힌다는 의미로 보는게 더욱 적절하지 않을 까 싶다. 그렇게 방법의 다양성과 가능성의 무한함을 발견해 나가는것이 비단 이 영화가 다루고 있는 필름영화와 디지털 영화 뿐만 아니라 새로운것과 오래된 것을 맞이하는 현실적인 자세가 아닐까 (과거에 미련이 많은 나라는 사람은) 생각해본다.
더불어 사족을 굳이 붙이자면 이 다큐멘터리는 디지털영화의 발전이냐 필름영화의 매력이냐에 관계없이 내로라하는 감독들과 작품의 개성을 엿볼 수 있는 즐거움을 제공하고 있다. 데이비드 핀처의 거침없는 입담에 ‘역시 이 사람 영화는 이 사람 성격대로였구나’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고 대니 보일의 긍정성에 ‘그래서 그런 영화를 이렇게 만들었구나’라고 깨닫기도 했다. 그리고 그동안 이야기위주로 기억했던 영화들을 기술적인 측면에서 다시 바라보게 하기도 했다. 왜 ‘슬럼독밀리어네어’의 아카데미상 수상이 의미있는것인지, 왜 ‘스타워즈’의 상영방식이 의미가 있던것인지 이 작품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은 꼭 한번 보시기를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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