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BOX/디뷰어의 시네마천국

EIDF/D-BOX 다큐멘터리 <쓰레기의 꿈>

쓰레기의 꿈 (Garbage Dreams)

마이 이스칸더 (Mai Iskander)│전체관람가│79분│이집트│2009


디뷰어 김나정




이집트 수도 카이로 외곽에는 부유층, 중산층, 그리고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계층, 이른바 자발린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다. 마치 인도의 불가촉천민과 같은 느낌이 드는 그들은 카이로의 쓰레기를 책임지고 있다.


카이로는 인구 천팔백만 명이 사는 거대도시지만, 체계적인 쓰레기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고 마치 틈새 전략처럼 자발린들이 이를 생계수단으로 삼고 살아간다. 그러나 단순히 생계 수단이라고 표현하기에는 그들의 열정에 미안한 마음도 든다. 쓰레기를 수거하고, 분리하고, 재활용하는 일이 그들에겐 밥벌이 그 이상으로 삶의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별다른 자동 기계 하나 없이 온통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는 그들의 쓰레기 수거/분리 작업은 그 성과가 굉장히 놀랍다. 수거한 쓰레기에서 자그마치 80%나 재활용이 된다. 쓰레기 시스템이 잘 갖추어진 선진국에서조차 20%만이 재활용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정말이지 대단한 수치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들이 쓰레기에 대해 가지는 애착심의 결과는 몇 가지 더 있다. ‘하층민’, ‘쓰레기’, ‘수작업’이라고 생각하면 체계 없이, 느릿느릿, 굶어 죽지 않을 정도로 일하지 않을까? 라는 편견을 갖기 쉽다. 그러나 다큐멘터리에서 본 그들의 모습은 굉장히 전문적이다.



우선 자발린들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해주는 조력자가 있다. 사회복지사 혹은 사회적 기업의 직원으로 보이는 그녀는 온종일 쓰레기 더미에서 일하는 자발린들이 병에 걸리지 않도록 매번 점검해 예방 주사도 놓아주고, 쓰레기에 대한 카이로 사람들의 생각이 바뀔 수 있도록 자발린들과 함께 쓰레기 분리수거 홍보를 하기도 한다. 한국에서야 플라스틱, 유리, 종이, 음식물 등 그 갈래를 여러 개로 나누어 버리는 것이 보편화 되어있지만(실제로 한국의 쓰레기 재활용 비율은 OECD 상위권에 속한다. OECD 평균보다 거의 두 배 이상 잘하고 있는 수준이라고 한다.) 카이로에서는 쓰레기를 분리해서 버린다는 개념이 아예 없으므로 ‘음식물 쓰레기’와 ‘그 외의 쓰레기’ 즉, 2개의 봉투로 나누어 쓰레기를 버리자는 말에도 사람들은 왜 그래야 하는지조차 이해하지 못한다. 상류층이 더 많은 문화를 누리고, 더 넓은 세상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쓰레기’ 하나에서만큼은 자발린의 지식과 이상을 따라갈 수 없다.



또한, 자발린들은 쓰레기 전문학교도 만들었다. 그들은 학교에 다니며 그들 나름의 쓰레기 수거/분리/재활용 방법을 공유한다. 그리고 정말 놀라웠던 것 하나 더! 쓰레기 선진 방식을 배우기 위해 영국으로 연수를 가기도 한다. 물론 재활용 비율은 자발린이 훨씬 뛰어나지만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자발린 소년들은 길거리의 쓰레기 분리수거통을 바라보며 신기해하다가도, ‘사람들은 왜 이런 걸 버렸을까?’, ‘만약 내가 이 나라에 산다면 저 쓰레기를 버리지 않을 텐데!'라며 옆에 있는 친구에게 너에게 선물로 줄까?’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대화를 들으며 나는 마치 이 다큐멘터리의 모든 것을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 그들에게는 쓰레기가 마치 선물과도 같은 것이다. 생계를 이어주게 하고, 끊임없이 탐구하게 하는 무엇. 그 무엇이 그들에게는 쓰레기인 것이다. 나는 우리 집에서 나온 쓰레기조차 더럽다고 생각해 위생 장갑으로 손을 칭칭 감고 봉투가 몸에 닿을세라 조심해서 내다 버리는데 자발린들은 낯선 나라에서 만난 쓰레기에도 애정 한 가득이다.


재활용할 수 있는 것들이 너무 많이 버려져 있어 쓰레기통을 떠나지 못하고 그 안을 뒤적이는 자발린 소년을 보자 영국 쓰레기 업체 직원은 말한다. ‘그거 만지지 않는 게 좋을 거야’라고. 그 말을 들은 자발린 소년은 어리둥절해 하면서도 쓰레기통에서 손을 떼는데, 그 장면에서 나는 느꼈다. 아, 그들에겐 쓰레기가 더러운 것이 아니구나, 한없이 아쉬운 것, 다시 되살릴 수 있는 것, 환경의 일부이자 생명의 일부인 것. 쓰레기가 그들에겐 그런 것이구나 하고.


애착을 갖고 일을 하는 그들이지만, 현실은 어둡다. 카이로에서 남자가 결혼하려면 집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조차 그들에겐 쉬운 일이 아니다. 오죽하면 아들의 결혼을 위해 아버지가 본인의 집 위에 불법으로 집을 지으려다가 감옥에 가기도 한다. 한창 젊은 나이인 그들, 연애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나 결혼은 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선다.



그들에게 걱정거리는 이뿐만이 아니다. 그들의 꿈을 짓밟는 사람들이 카이로에 온다. 거대 외국계 쓰레기처리 회사의 등장. 그들은 자발린의 생계이자 삶을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어주는 쓰레기를 거대한 차로 순식간에 실어나른다. 그들 때문에 자발린이 수거할 쓰레기가 길거리에 남아있지 않다. 쓰레기가 있어야 살아갈 수 있는 자발린, 그러나 쓰레기는 외국계 회사의 차지가 되어버린다.



카이로의 쓰레기를 책임지던 자발린 소년들은 시간이 지난 후 누구는 외국계 쓰레기 업체에 취직하고, 누구는 쓰레기 학교의 미술 선생님이 된다. 캔(쓰레기)을 처리하는 공장을 만들고 싶다던 소년은 자본에 의해, 현실에 의해 그것과는 멀어졌지만, 그들은 말한다.


‘신이 우리를 보고 있다고.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줄 것이라고.’ 



▶ D-BOX에서 다큐멘터리 <쓰레기의 꿈> 감상하기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