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모르는 그들의 이야기
<The Circus Dynasty>
디뷰어 : 김현정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네르스 리스 한센 Anders RIIS-HANSEN Ⅰ 91분 Ⅰ 덴마크 Ⅰ 2014
“This is story of dream.
The dream of uniting two of Europe’s greatest circus families.”
이 이야기는 두 기업의 인수합병 같은 딱딱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렇다고 한글로 번역된 제목인 ‘사랑의 서커스’처럼 마냥 달콤한 사랑이야기도 아니다. 이 이야기는 위대한 두 서커스 가문이 하나가 되기를 바라는 꿈의 이야기, 일과 사생활, 사업적 관계와 친구관계, 그리고 두 가문 사이의 인간적인 면모와 계산적인 면모 사이를 넘나드는, 마치 아슬아슬한 서커스같은 이야기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The Circus Dynasty
다큐멘터리의 제목은 한국어로 <사랑의 서커스>라고 번역되었는데, 미래에 서커스를 책임질 두 젊은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담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서커스라는 말이 사랑의 ‘아슬아슬한’ 느낌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사랑의 서커스라는 제목이 시청자를 너무 한 부분에 집중하게만 만든 것은 아닐까 하는 노파심이 생긴다. 앞서 언급했듯이 내게는 남녀간의 사랑이야기보다 더 큰 무언가를 그리고 있는 다큐멘터리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원제인 <The Circus Dynasty>에 집중해주었으면 좋겠다. 절대 단순한 사랑이야기는 아니므로.
서커스에 대한 편견
기억을 더듬어야 생각나는 나이에 한 번 봤었고, 한창 태양의 서커스가 여기저기 광고에 나오던 때에는 이미, 미안한 말이지만 ‘누가 요즘 서커스를 보지’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스물 넷, 그리 많은 나이도 아니건만 ‘서커스’는 이미 나에게 구시대의 산물처럼 느껴지는 존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D-box 안에 담긴 여러편의 다큐멘터리 중에서도 이 다큐를 골라 보기 시작했다. <사랑의 서커스>라는 이 다소 진부한 제목-한글로 번역된 제목만 봐서는-의 다큐멘터리는 무슨 내용을 담고 있는 걸까? 라는 호기심이 가장 크게 작용한 것 같다. 서커스라고 하면 으레 생각나는 그런 자질구레한 기술은 나름 ‘성숙한’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한 나에게는 유치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한마디로 ‘유치한’ 생각인지 깨닫게 된 건 이 다큐를 보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다큐를 비판할 준비가 되어있던 나는 정통으로 다큐멘터리에 한 방 먹었다. 그리고 스스로가 얼마나 편견에 빠진 사람이었는지를 깨달으며, 그 깨달음을 준 다큐에 감사했다.
마음을 졸이게 만드는 다큐멘터리
다큐멘터리가 스릴러처럼 긴장감을 줄 수 있다고 하면 믿는 사람이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큐=지루한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적어도 내 주변에, 다큐에 흥미가 없는 사람들은 자주 그렇게 말하곤 했다. 다큐 매니아인 나에게는 참 속상한 말이 아닐 수 없다. 사실 그래서 이처럼 D-Viewer에 지원해서 다큐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리뷰를 쓰고 있는데, 글을 쓸 때면 다소 딱딱한 말투가 나오는 내 리뷰를 보고 과연 관심이 들지는 의문이지만(!) 나의 최선을 다해본다.
잠시 다른 길로 빠졌는데, EIDF홈페이지에 남긴 다큐멘터리에 대한 짧은 감상평이 “마음을 졸이게 만드는 다큐멘터리는 처음이었다” 였을만큼, 나는 어느새 다큐멘터리 속에 나오는 서커스에 빠져들어 관객과 함께 (또는 서커스를 하고 있는 단원들과 함께) 그 조마조마함을 느끼고 있었다. 서커스의 긴장감과 다큐 속에 나오는 인물들 간의 긴장감이 더해져, 그 어떤 스릴러보다 –라고 말하면 다소 과장일 수도 있지만- 긴장하면서 다큐를 보았다. 오히려 편안하게 볼 수 있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다큐였으니 예상과 다른 전개에 긴장했달까. 아니 이제는 다큐멘터리도 편안한 마음으로 보지 못하는 것인가! 하는 다소 귀여운(?) 불만은 ‘긴장감 넘치는 다큐멘터리’라는 새 지평을 열어줬다는 신선함에 묻혔다.
당신이 모르는 그들의 이야기
이 다큐멘터리는 유럽의 두 서커스 가문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다큐를 보면서 서커스에 ‘가문’이 있다는 것을 난생 처음 알았고, 한 서커스 공연에서 각각의 파트를 맡은 사람들이 한 서커스에 마냥 소속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다. 한마디로 나는 서커스에 대한 편견이 있었던 만큼 서커스라는 것 자체에 아예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알고 있는 것도 거의 전무했다. 하지만 나에게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내 인생이 있듯이, 서커스를 하는 이들에게도 분명히 그들의 인생이 생생하게 존재한다. 그리고 다큐를 통해 그들의 삶을 보며, 나와는 관계가 없는 것이 그들에게는 인생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을 느끼며, 반성도 했고, 순수한 시청자의 입장에서 신기하기도 했다. 마치 환상의 세계로만 느껴지는 연예인들의 삶을 보는 느낌이랄까.
살짝 덧붙이자면, 아무리 인터넷에 검색해봐도 이런 속이야기는 분명 나오지 않을 것이다. 구*에서 아레나 서커스 웹사이트를 찾는데도 시간이 꽤 걸렸다. 이렇게 찾기 힘든 숨어 있는 이야기를 풀어내주고 보게 해주는 것이 다큐가 주는 즐거움 아닐까!
서커스와 닮은 우리 인생
다큐멘터리는 기본적으로 ‘사실’을 다루는 장르이다. 물론 촬영되고 편집되는 화면들은 모두 감독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완전한 객관성을 띄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어쨌든 이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다큐가 사실을 다루는 것은 여전하다. 그렇기에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사람들의 인생은 꾸며지지 않은 우리의 인생이기도 하다.
그리고 서커스는, 이러한 우리의 인생과 또 닮았다. 실수를 하면 다시 촬영할 수 있는 영화와 다르게, 서커스는 실수하게 되면 그걸로 끝이다. 다시 되풀이 할 수 없고, 다시 주워담을 수 없다. 그리고 늘 아슬아슬하다. 사람의 인생도 그와 같지 않을까. 뮤지컬이나 연극과는 또 다르게, 서커스는 실수에 더욱더 취약하다. ‘완벽한’ 공연, 혹은 마술과 같이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하기 힘든 신비한 공연을 기대하고 온 관객들은 실수에 실망과 동시에 비난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서커스도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실수가 있을 수 있고, 특히나 쉬운 일도 아니고 어려운 일인데 말이다. 관객들은 그것을 어느 정도 알고 있음에도, 분명 실망할 것이다. 하지만 되풀이 할 수 없고, 아슬아슬하다는 점은 바로 서커스와 인생의 핵심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아슬아슬하지만 성공해내었을 때의 그 쾌감처럼, 우리 인생도 불안정함 속에서 얻는 성취와 행복으로 차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되풀이 할 수 없다는 것은 그 순간순간을 매우 소중하고 중요하게 보낼 수 있다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서커스에서 인생을 반추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너무나도 닮았다는 생각이 그치지 않는다. 서커스를 통해 인생을 돌이켜볼 분들에게 이 다큐멘터리를 슬며시 추천해본다.
<The Circus Dynasty> 간략 소개
원래는 리뷰에 줄거리를 넣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렇게 하니 너무 다큐멘터리를 ‘이미’ 본 사람의 관점에서 글을 썼다는 것을 느꼈다. 이 리뷰를 보고 이제 다큐멘터리를 보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불친절한 글이라는 생각이 들어, 정말 간략한 소개를 해보고자 한다.
서커스 ARENA를 소유한 베르디노 가족. 베르니도 가문은 원래 서커스로 유명한 가문은 아니었지만, 이 이야기의 남자 주인공 격인 패트릭의 할아버지인 베니 베르디노가 서커스를 시작했고 지금의 위치까지 키웠다.
서커스 ARENA와 오래 전부터 인연을 맺고 있는 곡예사 카셀리 가족. 다큐에서 나름 ‘중요한’ 비중을 맡고 있는 코끼리들을 소유하고 있고, 미국의 유명한 서커스단의 제의를 받아 ARENA와의 관계에 위기가 오기도 한다.
이 이야기의 두 주인공 격인 메릴루 카셀리와 패트릭 베르디노. 태어났을 때부터 함께 자라왔지만 사귀게 된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은 두 사람의 아슬아슬한 사랑 이야기는 전체 다큐의 흐름을 좌우한다.
새로이 사랑을 시작한 메릴류와 패트릭.
서커스라는 배경 속에서 성장한 그들은 서로를 이해할 수 있기에 사랑에 빠지게 된 것이 아닐까.
서커스 세계 (dynasty) 에서 간판 역할을 하게 될 메릴류와 패트릭에 대한 기대감을 아낌없이 보여주고 있는 베니. 요즘 같은 시대에 젊은이들이 가문의 일을 물려받는 것은 대단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패트릭에 대해 이야기하는 메릴류의 부모님. 사실 표정과 말하는 것이 다르다고 느껴졌는데,
다큐멘터리에도 복선이 있을까?
조금 더 길게 다뤄주었으면 좋았을 것이라 생각했던 메릴류 가족의 이야기. 공연장에선 그 누구보다 당당한 곡예사이지만 가족들과 있을 때면 한 사람이자, 딸이 되는 그녀의 모습은 참으로 인간적이자 동시에 대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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