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보이(Ballettguttene, 2014)
케네트 엘베바크 Kenneth Elvebakk
디뷰어 : 박혜경
그 많던 벚꽃이 어느샌가 분홍에서 연두로 바뀌었다. 서너번의 주말이 지나는 동안 앙상했던 벚나무는 흐드러지게 꽃을 피워냈다가 이내 봄비와 함께 낙화를 맞은 뒤 지금은 연두빛 잎을 품게 되었다. 이 많은 변화가 봄이 찾아온지 얼마 안돼서 이루어졌다.
벚나무에게 가장 많은 변화가 찾아오는 계절이 봄이라면 사람에게도 가장 많은 변화가 찾아오는 청소년이라는 계절이 있다. 서너번의 주말동안 꽃이 피었다가 꽃이 지었다가 연두잎을 품어내는 벚나무처럼, 지구가 태양을 3번 혹은 4번 도는 동안 아이들은 새로운 꿈을 꾸었다가 지웠다가 다시 계획해 나간다. 2014년 노르웨이 다큐멘터리인 발레보이는 그 청소년이라는 계절을 겪어내는 소년들 세 명의 이야기를 담고있다.
다큐멘터리의 중심이 되는 세 명의 소년들인 루카스, 쉬베르트, 토르게이르는 어렸을때부터 함께 발레를 시작해온 친구이다. 발레를 선택하는 남자아이들의 수가 여자아이들에 비해 현격히 적다는 점에서, 그리고 사회적으로 아직 발레는 ‘여성적인’것으로 인식된다는 점에서 아마도 그들은 시간을 같이 보낸 친구 이상의 연대와 우정을 가지고 있는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두터운 연대와 우정 속에서도 자신이 발레라는 울타리 안에서 꿈을 세워나가는것이 맞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각자가 다른듯 하다. 발레에 대한 각자의 고민과 확신은 선천적인 재능과 신체조건 뿐만 아니라 ‘내가 가장 행복한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것으로 보인다.
진로에 대한 가장 큰 확신이 서 있는 인물은 루카스이다. 발레라는 영역에서 늘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는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믿음에 흔들림이 없다. 끊임없는 연습과 훈련으로 자신의 확신을 더욱 튼튼하게 세워나간다. 반면 진로에 대해 가장 많이 흔들리는 인물은 쉬베르트이다. 발레를 하면서 가끔은 ‘이게아닌데’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루카스의 확신과 쉬베르트의 흔들림 그 중간에 서 있는 인물은 토르게이이다. 신체조건의 측면에서는 친구들 중 가장 뛰어나다. 재능에 있어서도 지역 일간지가 주목했을 정도로 어느정도 인정을 받았다. 그러나 그런 그 역시 흔들릴 때가 있다.
발레에 대해 각자가 가지고 있는 확신의 정도를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북유럽 발레대회의 실패 이후 보여주는 학교선생님과의 상담장면이 그것이다. 선생님은 상담 중에 세 아이들에게 이렇게 묻는다. “네가 진심으로 원하는게 맞니?, 스스로 결정한거니?, 만약 발레를 하지 않는다면 그 대안으로 무엇이 있을수 있겠니?”
세 아이들이 가진 발레에 대한 확신은 대안이라는 세번째 질문에 답하는 장면을 통해 확연하게 드러난다. 가장 확신이 높은 루카스는 ‘그런건 생각해 본적이 없어요.’라고 대답한다. 토르게이는 ‘어려운 질문이네요, 가끔은 하기 싫지만 안그런사람이 어디있겠어요?’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쉬베르트는 ‘공부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뭐라도 힘들어요. 그러니까 뭐라도 배워야해요.’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쉬베르트는 발레를 그만두기로 결정한다.
어쩌면 쉬베르트의 이런 흔들림은 다큐멘터리 첫장면에서 암시되고 있었는지 모른다. 다큐멘터리를 여는 첫 영상에서 쉬베르트는 발레를 꿈으로 정하는것에 대해 ‘아마도’라는 답이 담긴 대화를 나눈다.
다큐멘터리를 보다보면 쉬베르트가 왜 ‘아마도’라고 대답했는지 이해하게 된다. 진로에 대한 확신으로 지불해야 하는 기회비용의 값을 쉬베르트는 스스로 납득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이것을 선택했을 때 포기해야 하는것, 저것을 선택할 때 포기해야 하는것에 대해 생각이 많다. 포기와 헌신 사이의 망설임 끝에 쉬베르트는 결국 발레 연습실로 다시 돌아온다. 그가 다시 돌아온 이유는 질문의 벽에 부딪혔기 때문이라고 본다.’어떻게 살아야 하나’ 어떻게 살아야 하는 고민의 끝에서 현재 자신이 가장 잘하는 것이 발레라는걸 알았고 그래서 다시 발레로 돌아왔다는 그의 말은 다큐멘터리 초반에 그가 했던 인터뷰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쉬베르트는 다시 연습실로 돌아옴으로서 자신이 실패했던 무대를 만회할 기회를 갖게 된다. 망설임 끝에 발레라는 울타리 내에서 만회하는 길을 택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망설임이 완전히 끝난것은 아니다. 중학교 졸업이 가까워 오면서 망설임에 대한 강도는 더욱 깊어지고 강해진다. 이런 망설임은 비단 쉬베르트 뿐만 아니라 마찬가지로 졸업을 앞둔 루카스, 토르게이에게도 찾아온다. 꾸준히 계속 자신의 길을 걷던 루카스, 토르게이 역시 발레라는 길 앞에서 머뭇거리고 망설이게 되는것은 마찬가지이다. 발레를 계속 할 것이냐라는 시작선의 질문에서부터 발레를 전문적으로 배울 수 있는 고등학교 과정을 선택할 것이냐, 경제적으로 부담이 적은 오슬로 국립예술 아카데미를 선택하느냐 경제적인 부담은 크지만 명성이 높은 영국 왕실발레단을 선택하느냐에 이르기까지 망설임과 선택은 계속 이 소년들을 놓아주지 않는다.
루카스가 런던으로 향하는 기차에서 창밖 풍경을 바라보는 장면이 있다. 계속 변하는 풍경들을 일일이 다 볼수 없어 짤막하나마 그 풍경들을 바라보느라 루카스의 눈동자는 흔들린다. 청소년이라는 계절을 지나는 아이들의 마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계속되는 변화 속에서 무엇에 마음을 두어야 할지 몰라 마음이 흔들리고 생각이 흔들린다. 흔들림과 망설임의 경험이 많은 쉬베르트는 오슬로와 런던 사이에서 망설이는 루카스에게 이렇게 조언한다.
“진심으로 원하는게 뭔지 깊게 생각해 봐.(You have to do what you want to)”
청소년이라는 계절이 얼마나 많은 변화를 겪는지 다큐멘터리에 담긴 세명의 목소리는 변성기 소년에서 청년의 목소리로 변하고 있다.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는 동안에는 느끼지 못하지만 다큐멘터리를 여러번 보게 되면 다큐멘터리 초반에 담긴 주인공 세명은 얼마나 어린지, 그리고 다큐멘터리 후반의 주인공 세명은 얼마나 많이 컸는지 확인할 수 있게 된다. '발레보이'라는 다큐멘터리가 소년들의 몸과 마음의 성장을 얼마나 잘 담아내고 있는지 새삼 느끼게 되는 지점이다. 그렇게 마른 가지에 싹이 트고 꽃이피는 소년들의 계절을 함께 목도하는 동안 내가 지나는 나의 계절은 무엇인지, 나는 어떤것 앞에 망설이는 삶을 살고 있는지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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