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들의 계획
장준석(CHANG Choonsok)|전체관람가|77분|한국|2014
디뷰어 김나정
나는 노인이 싫다
나는 사실 노인을 싫어한다. 영화를 볼 때도, 책을 볼 때도, 사람을 대할 때도 노인은 언제나 내 선택지에 없다. 나에게 노인이란 기피해야 할 대상이다. 출근길 지하철에는 왜 그리 노인이 많은지, 안 그래도 답답하고 좁은 지하철에 탑승한 그들은 매일 같이 어디를 향해가는 건지, 왜 그들에게는 차례를 지켜야한다는 생각조차 없어 보이는 건지, 뭐 그런 생각들뿐. 그래서 나는 내가 왜 이 다큐멘터리를 보았을까 지금도 의문이지만 지금 와서 떠올리면 어쨌든 뭐 그런 생각을 한 것 같다.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그들에 대한 편견이 조금은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꿈은 있는데 보이지 않는다
라영수 원장이 이끄는 ‘은빛 둥지’는 여러 노인들이 IT에 대해 함께 공부하고 영상 촬영, 그리고 편집까지 하는 사회적 기업이다. 그들은 포토샵을 배우는 것부터 시작해서 직접 영상을 촬영·편집해 영화제에 출품하기도 한다. 각종 행사에 불려가 무료로 영상을 제작해주기도 하고 같은 노인들에게 무료로 영정 사진을 찍어주는 봉사를 하기도 한다.
노인, IT, 스터디, 기업. 참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이다. 그렇다보니 ‘은빛 둥지’는 여러 곳에서 굉장한 주목을 받는다. TV 프로그램에 등장하기도 하고, 기자와의 인터뷰도 많고, 77분짜리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에게 배움은 쉽지 않다. 매일매일 배우고, 또 매일매일 무언가를 하지만 나이 탓에 배운 것도 금방 잊어버리고 영상 촬영의 의도는 무엇이며 내용은 무엇인지조차 헷갈릴 때가 많다. 배운 것을 잘 해내야겠다는 꿈은 있는데 그 꿈이 희미해질 때가 많다.
죽어가는 나무에도 꽃은 핀다
그럼에도 그들은 참 열심히 배운다. 열심히 생각하고 열심히 움직인다. 일곱 번 넘어져도 일곱 번 일어나면 그만이다. 느린 손으로 열심히 작업한 영상이 영화제에서 수상하는 영광을 맛보기도 하고 고심 끝에 작성한 제안서가 통과되어 재정적인 도움을 받기도 한다.
We can't just die
다큐멘터리를 다 보고난 후 아차 싶었다. 아무래도 나는 잊고 있었던 것 같다. 그들도 하고 싶은 것이 많고 이루고 싶은 것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다. 왜 나는 지하철에서 마주친 노인들을 보며 ‘왜 마땅히 할 일도 없으면서 지하철을 탈까,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것도 아니면서’라고만 생각했을까. 더 많은 것들을 바라보며 살아 온 그들에게는 더 깊고 더 큰 꿈이 있을 수도 있다는 걸 나는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아니, 그 보다도 그들도 나도 바로 지금, 1분 1초를 살아가는 것은 똑같다는 아주 명쾌한 사실조차 나는 떠올리지 못했다. 바보 같다. 바보 같지만, 이제라도 알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가.
아주 늦었지만 그들의 꿈을 나도 응원할 것이다.
'D-BOX > 디뷰어의 시네마천국'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 프랑수아의 낡은 세탁소 – 오래된 세탁소가 저물어 갈 때 (0) | 2016.05.01 |
---|---|
나는 엄마입니다 Mother's Wish (2) | 2016.05.01 |
바나나 소송사건 그 이후 (1) | 2016.04.30 |
‘장 프랑수아의 낡은 세탁소’ (0) | 2016.04.30 |
티타임(젊음과 나이듦, 우정, 지나간 것들에 대한 유쾌한 수다) (0) | 2016.04.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