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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OX/디뷰어의 시네마천국

EIDF/D-BOX 다큐멘터리 <시속 60km>

시속 60km (At 60km/h)

파쿤도 마르구에리(Facundo Marguery)│전체관람가│100분│우루과이│2014


디뷰어 김나정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이라는 영화가 있다. 허무맹랑하지만 진심으로 바라기 때문에 실제로 그 기적이 일어날 거라 생각하는 한 아이의 이야기. 나는 <시속 60km>라는 이 다큐멘터리가 그 영화의 노년 버전이자 실제 이야기라고 본다.


우루과이에 ‘마리오’라는 사람이 있다. 할아버지라고 하기도 애매하고 아저씨라고 하기도 애매한, 요즘 말로 할저씨라고나 해야 할까. 할저씨가 매우 젊었을 무렵, 그러니까 지금은 성인이 된 두 아들이 아주 어렸을 때, 마리오는 약속 하나를 했다. 바로 그들의 차 ‘마이티’를 타고 세계 여행을 하자는 것. 그야말로 정말 꿈같은 이야기다. 잠에서 깼을 때나 선명하지 점점 희미해져 버리는 꿈처럼 그 바람도 점점 힘을 잃어갔다. 늙어버린 꿈만큼이나 아버지와 두 아들도 나이 들었고 팔팔하던 그들의 차 ‘마이티'도 늙었다. 사람이나 기계나, 겉이나 속이나.


게다가 더 큰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마리오가 아내와 이혼을 한 것. 평생을 함께하자 약속했던 아내와는 헤어졌고 그 때문에 두 아들과도 떨어져 살게 되었다. 심지어 연락도 끊겼다. 가족이지만 서로의 안부조차 잘 모르고 지냈고 마리오는 아내 없이, 아들 없이 점점 더 외로워졌다.


외롭고 지루한 삶을 살던 마리오는 어느 날 문득 그 꿈이 떠올랐다. 어느덧 아득해져 버린, 사람마다 ‘웃기는 소리 좀 하지 마’라고 비웃었던 그 꿈이. 그 꿈을 실현해 줄 마이티도 수리했다. 수리해봤자 겨우 60km로 달리는 자동차지만 말이다. 그리고 생각한다.


‘진짜 갈까?’

‘진짜 가면 돼지!“

“가보자고!”


마리오는 바비큐 파티를 열고 두 아들을 초대한다. 그리고는 이야기한다. ‘마이티 타고 세계여행 가자!’ 거기에 두 아들은 답한다. ‘좋아요. 가요!’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다.


2007년, 그들의 꿈이 출발한다. 마이티를 타고 마리오와 두 아들이 정말 세계 여행을 떠난다. 60km로 달리는 그 고물 자동차를 타고 말이다.


그래서 그 꿈이 성공적이었냐고? 아니. 절대 아니다. 여행을 시작한 지 1달이 지났을 무렵, 아버지와 아들은 여러 트러블을 겪는다. 여행지에서 싸워서 돌아오는 친구 사이도 많다던데, 부자지간도 예외는 아닌가 보다. 아들은 이대로는 함께 여행할 수 없다고 ‘탈퇴’ 선언을 하고 그 선언을 들은 다른 아들도 그럼 나도, 하며 동시 탈퇴를 선언한다. 아버지만 여행지에 남겨두고 가는 것이 마음에 걸리고 미안하지만 두 아들은 이렇게 생각하기로 한다. ‘3~4개국 더 돌다가 금방 돌아오시겠지 뭐. 어차피 돈도 없잖아?’


그래 맞다, 마리오는 돈이 없다. 괜히 고물 중의 고물, 마이티를 타고 여행을 떠난 것이 아니다. 마리오는 여행을 지속해나가기 위해 친구들에게 연락해 돈을 빌린다. 물론 아들들에도. 돈이 없는 가난한 여행자 마리오, 가난하기 때문에 더욱더 힘겨운 여행을 하는 마리오. 그런 마리오를 보며 그의 친구들과 그의 두 아들은 마리오가 미쳤다고 생각한다. 정신이 이상해진 것 같다고.


우루과이에서 출발한 마리오가 이탈리아를 여행하고 있을 무렵, 아들 둘이 다시 여행에 합류한다. 점점 더 이상해져 가는 아버지를 구해야겠다는 생각에서. 그 덕에 마리오는 다시 힘을 얻었고 그들은 지인에게 돈을 빌리는 것 외에 다양한 방법으로 여행에 필요한 돈을 모은다. 우루과이의 유명 축구 선수에게 연락해 도움을 받기도 하고, 음식을 만들어 팔기도 하며, 농장 일을 돕기도 한다.


그렇게 노력하지만, 마리오와 두 아들의 세계여행은 여전히 쉽지 않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서 생기는 갈등의 골은 깊어만 가고, 돈이 없으므로 벌이지는 작은 일 하나하나가 다 고난이고 시련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어쨌든 그것들을 다 헤쳐 나간다. ‘하면!’ ‘된다!’의 힘이다. 때로는 위태롭게, 때로는 즐겁게, 그렇게 그들은 4년을 여행한다. 어릴 적 꿈 그대로 ‘마이티’를 타고 ‘세계여행’을 끝마친 것이다.


그들의 여행에 어떤 대단한 비법 같은 건 없다. 떠나자, 싶어 떠났을 뿐이고 돈이 없으면 그때그때 만들어 썼을 뿐이고 갈등이 생기면 그냥 그 갈등을 온몸으로 맞이했을 뿐이다. 고물 자동차 마이티가 60km로 느리게 달리면 그냥 그 느린 속도 그대로를 받아들였을 뿐이고!




‘꿈꾸면 이루어진다!’라는 마음, ‘하면’은 ‘된다!’라는 생각. 나는 <시속 60km>를 보며 마리오에게 이 두 가지를 배웠다. 그래서 괜스레 마리오에게 한번 묻고 싶어진다.


마리오 할저씨, 저도 뭐든 하면은!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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