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 오브 패션 – 내일 아침 입을 옷을 고민하기 이전에
감독 : 야크 킬미 / 레나르트 라베렌스
작성자 : 김민범
옷이 없다. 매일 아침 옷장을 보면서 하는 생각이다. 계절이 변할 때면 꼬박꼬박 옷을 사는데도 어느새 입을 옷이 없다. 작년에 산 청바지는 어딘지 촌스럽고, 올해 산 티셔츠는 벌써 목이 늘어났다. 한참을 서성거리다가 시간에 쫓겨 적당히 입고 나온다. 길을 걷다 유리에 비친 내 모습을 본다. 하루 종일 기분이 안 좋을 예정이다. 입고 나온 맨투맨티가 아무래도 후줄근하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다시 쇼핑을 해야겠다.
패션도 빨라졌다. 자라, 유니클로, H&M, 세계적인 패스트 패션 브랜드는 계속해서 새로운 옷들을 만들어낸다. 매 시즌 새로운 옷을 만들어낸다. 유명 디자이너, 브랜드, 신진 아티스트들과 협업해서 그럴싸한 옷을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으로 찍어낸다. 어차피 2년만 지나도 그 옷에 선뜻 손이 가지 않는 건 비싼 옷을 사도 마찬가지이다. 적당한 가격으로 적당히 입으면 된다. 패스트 패션의 합리적 가격 이면에는 비합리적인 문제들이 쌓여있다.
레트 아우스는 에스토니아의 업사이클링 디자이너다. 버려진 옷들 혹은 남은 천을 이용해서 옷을 만든다. 그녀의 옷들은 패스트 패션과 다르게 느리다. 남은 옷들이 어떻게 조합될지 모른다. 청바지가 드레스가 되고, 원피스가 티셔츠가 된다. 그녀가 옷을 만드는 것 자체가 패스트 패션에 대한 저항이 된다. 그녀는 의문을 품는다. 어떻게 이렇게 많은 옷들이 빠르게 만들어지고, 소비되고 있을까. 그녀는 글로벌 패스트 패션 본사가 있는 유럽부터 그들의 하청업체가 있는 방글라데시, 목화솜 생산지 남미까지 방문하며 패스트 패션의 이면을 추적한다.
우리가 입는 청바지에는 목화솜을 생산하는 남미 가족의 노동력, 유독성 물질에 노출되고 있는 방글라데시 소녀들의 건강, 무너지고 있는 공장 인근의 자연 환경까지 많은 것들이 얽혀있지만, 그들 중 어느 것 하나 합리적 혹은 윤리적으로 대우 받고 있지 않다. 청바지를 한 장을 만드는 데 4인 가족이 한 달 동안 사용하는 물의 양이 필요하다거나 세탁기를 하루 종일 돌릴 수 있는 전기량을 사용하고 있음은 잠시 제쳐두더라도 말이다.
레트 아우스가 제안하는 업사이클링 디자인 역시 한계를 갖는다. 업사이클링을 통해서 만든 옷들도 재고를 만들어내고, 그 옷들은 다시 폐기물이 된다. 빠르게 사고, 쉽게 버리는 지금의 패션 업계가 지속된다면 그녀의 대안적인 시도는 하나의 사연에서 발전할 수 없다. 가격과 디자인이 적당한 합리적인 옷과 마주쳤을 때, 그 옷을 위한 과정 또한 합리적이었는지는 질문하는 데서 변화가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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