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샬라, 마돈나!
<Holy Cow 헛간의 마돈나>
디뷰어: 김현정
이맘 하사노프 Imam HASANOV | 전체관람가 | 77분 | 아제르바이잔, 독일, 루마니아, 카타르 | 2015
유쾌함이 넘치는 이야기
EIDF2016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고, 새로운 다큐멘터리들이 D-Box 작품목록에 차곡차곡 쌓이는 것을 보면서 즐거우면서도 깊은 고민에 빠졌다. 보고 싶은 것은 많은데, 무엇을 먼저 봐야할까? 간단한 답을 내리자면 '전부 보는 것'이겠지만, 사실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얼마 전, 이번 EIDF에서 큰 이슈가 된 '존 버거의 사계'를 보고선 다큐멘터리에 한 방 먹은 기분이 들어서였을까? 작품목록을 훑어보다가 내용을 종잡을 수 없어보이는 이 작품에서 스크롤을 내리던 손을 멈췄다. 영어제목은 <Holy Cow>이지만, 한국어로는 <헛간의 마돈나>라는 다소 특이한 제목으로 번역된 이 다큐멘터리. 아제르바이잔이라는 이름은 들어봤지만 정작 위치가 어딘지는 모르겠는 나라 출신의 감독이 제작한 그 지역과 관련된 다큐멘터리. 그렇게 이 다큐멘터리는 신비한 매력으로 나를 끌어당기는 듯 했다. "거기, 나 한 번 보고 가지 않겠어?" 라며.
시놉시스에는 '인간이 어떻게 자기 고유의 전통을 유지하면서 변화를 조정할 수 있는지, 우리가 새로운 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라고 나와있는데, 물론 다큐를 다 감상하고 다시 한번 곱씹어보다보면 이 다큐가 얼마나 '보일듯 말듯' 그러한 의식을 반영하려고 공을 들였는지 느낄 수 있다. 그렇지만 이번 리뷰에선 잠시 그러한 무거운(?) 주제는 잠시 제쳐두고, 내가 다큐를 보면서 느낀 '유쾌함'을 위주로 적어볼까 한다. 감독의 의도가 어떠했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모든 책과 영화가 그렇듯이 보는 이의 감상이 그것의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과정 역시 중요하게 여겨진다고- 주장해보며 다큐를 다시금 돌아보고자 한다.
다큐가 만약 지루하게만 느껴지는 당신이라면, 이 <Holy Cow>를 추천한다. 다큐멘터리의 유머 감각에 한 번 놀라고, 77분이 금새 가버려 아쉬워하고 있는 자신을 돌아보며 또 한 번 놀라게 될 테니 말이다.
전반전: 소를 데려오기 위한 고군분투
아제르바이잔의 이름 조차 나오지 않은 한 작은 마을의 농부(인지도 사실 확실하지 않은)인 타프디그는 얼룩소를 사기로 결심한다. 터키의 동쪽에 위치한 아제르바이잔은 유럽보다는 아시아에 가까운 지리적 위치를 가졌고, 종교 역시 이슬람교가 대다수다. 그런 나라에서도 타문화와의 접촉이 잦지 않은 한 작은 마을에 유럽품종 얼룩소를 데려와 키우겠다고 하는 타프디그의 열정은 마을 공동체에는 위협 아닌 위협으로 다가온다. 그렇지만 타프디그는 소 생각밖에 없는 듯 하다. 마을의 작은 잡화점에서 아마도 특별히 주문을 한 듯한 얼룩소 카탈로그를 2마나트(약 1600원)를 주고 사서, 무얼 하는가 궁금한 마음으로 지켜보았더니 사진을 집 벽에 붙여둔다. 뜬금없지만 자린고비 영감 이야기가 떠올랐다. 굴비를 걸어두고 한번씩 쳐다보고 밥을 먹었다는 그 이야기가 왜 생각났는지 나도 모를 일이지만, 아내의 반대를 무릅쓰고 벽에 사진을 붙여둔 그의 순수함과 열정이 그 어떠한 표현보다 더 강하게 와닿았다. 무언가를 이루려면 눈에 보이게 해둬야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고등학교 시절 가고싶은 대학의 사진을 붙여두고 공부하던 친구들이 생각났다.
어른을 공경하는 문화가 형성되어 있는 듯한 마을에서 그의 열정은 그를 외톨이로 만든다. 유럽의 소가 아제르바이잔의 소보다 우유 생산량이 많고, 경제적 이익을 더 많이 낼 수 있으니 가족과 아이들을 위해 소를 사오고자 하는 타프디그는 어른들에게 허락을 받기 위해 설득해본다. 하지만 환경이 맞지 않는다, 키울 줄 아는 사람이 없다, 병균을 가져올 것이다(는 어느 정도 일리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았지만)는 등 여러가지 이유로 어른들은 강력히 반대한다. 심지어 다른 동네 고양이도 데려와선 안된다는 말도 나온다. 나이 든 노인만이 그렇게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전통과 가치관이 확고한 마을에서 유럽의 소는 마치 무언가 재앙을 가져올 것만 같은 소로 취급된다.
그런데 이 갈등, 무언가 긴장되는 느낌이 별로 없다. 가벼운 다큐멘터리이겠거니, 라는 생각을 가지고 본 것도 아닌데 쉴새없이 이어지는 그들의 말을 듣다보면 웃음이 피식-하고 나온다. 세상에 가벼운 다큐가 있겠냐마는, 어쨌든 가벼운 다큐도 아니다. 그들의 말과 상황은 한없이 진지하지만, 외부자 입장에선 다소 코믹한 것이 사실이다. '겨우 소 하나 가지고 그래?'라는 마음은 전혀 아니다. '겨우 소 하나'라는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이들을 낮추어 생각하는 어떠한 '신화'가 작용하는 것일테니 이는 분명히 경계해야 하는 지점이다. 그렇다면 왜 웃음이 났을까? 답은 얼마 뒤에 나온다.
바로 이러한 깨알같은 멘트들 덕분이다. 곱씹어보면 이슬람 문화권의 양성평등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고도 볼 수 있지만, 문맥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이 장면에선 분명 웃음이 날 것이다. 평소같았으면 이러한 부분을 지적하며 리뷰를 작성하고 있겠지만 이 다큐만큼은 어쩌면 1차원적인, 재미난 포인트를 집어 보려고 한다.
열심히 외부에선 고양이 한 마리도 데려와서는 안된다며 열변을 토해내는 어르신들 옆에서, 꿋꿋이 '여자는 돼도 소는 안 된다'라며 이야기하는 젊은 남자. 그 남자의 말은 듣지도 않고 자신들 이야기만 반복하는 어르신들. 이들이 정말 유럽의 소를 데려오는 것을 경계하고 있는지 의심이 들 정도이다. 그렇게 코믹한 상황이 연출된다.
그런데 또, '이게 뭐야!' 같은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한다. 아제르바이잔 사람들은 주전부리로 달콤한 것과 차를 많이 마시는 듯해 보이는데, 남편의 유럽 얼룩소 데려오기에 싫은 티를 내비치는 아내가 새참(?)으로 가져온 것은 바로 그 얼룩소가 그려진 사탕이었다. 카메라에 사탕이 잡히는 모습을 보면서 '어, 이건 바로 의도적이다!'라는 느낌이 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후에 이 사탕을 가지고 타프디그는 자신의 아들에게 이게 바로 아빠가 사려고 하는 젖소라며 설명을 한다. 유럽소로 만든 사탕은 먹으면서 유럽소를 데려와서 키우는 것은 안된다? 이 얼마나 웃기면서도 인정하기 힘든 아이러니인지!
두 여자. 아내, 그리고 어머니.
사실 타프디그의 유럽소 데려오기를 가장 많이 반대하는 것은 그의 부인이다. 이슬람문화권의 영향 때문인지 아내는 강하게 그녀의 주장을 말하지 못하고, 남편의 행동을 크게 거스르지도 못하지만 꾸준하게 싫은 티를 내비친다. 그녀가 싫어하는 이유는 직접적으로 나오지 않는다. 그녀조차도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설명하지 못한다. 마을 사람들의 눈초리, 어르신들의 반대, 그리고 마을의 'Norm'과는 어긋나는 남편의 행동 때문이겠지만 속시원히 이야기하지는 못한다. 이슬람권의 크리스마스는 생소하지만 어쨌든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는 식사 자리에서 소를 살 수 있도록 해달라는 기도를 바치는 남편을 보며 결국 아내는 눈물을 흘린다. 남편은 아내를 꾸준히 설득하려고 하고, 달래기도 하는데 사실 나름 놀랄만한 장면이었다. 이슬람권에 대한 나의 편견도 큰 영향을 미쳤겠지만, 남편이 생각보다, 아니 꽤 자상했기 때문이다. 이 장면 외의 다른 장면을 보더라도 그가 참 자상한 남편이자 아버지라는 것이 느껴진다. 타프디그의 개인적 성격 덕분일까? 아니면 무슨 이유일까?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아내가 아들을 셋이나 낳아 주었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닌가 하는 다소 나쁜 생각까지도 들었다. 하지만 역시 이번에도 여기에서 양성평등을 논할 생각은 없기 때문에 잠시 접어두려 한다.
아내가 이 마을과 문화권의 한 여자라면, 또 다른 여자가 존재한다. 바로 타프디그의 어머니이다. 시어머니께 남편이 하려는 일에 대해 답답한 마음을 토로하려고 했던 부인은 도리어 답답한 마음을 더 얻게 된다. '어머니'라는 존재는, 문화권의 상식을 뛰어넘는 자식사랑을 가지는 존재인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단 한마디로 동네 사람들을 강팍하게 만들어버리는 장면도 왜인지 모르게 웃음이 났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더니, 하며 말이다. 만약 그녀의 남편이 이런 일을 하려고 했다면, 그녀 역시 반대하지 않았을까?
마돈나. Madonna?
어찌됐든 마을 사람들의 반대와 우려 속에서 타프디그는 소를 사러 간다. 여기서 <헛간의 마돈나>라는 제목의 이유가 밝혀진다. 마돈나는 그가 미리 정해둔 소의 이름이었다. 여기서 그가 말한 '마돈나'는 미국의 팝스타 마돈나를 말하지만, <Holy Cow>라는 제목 덕분에 나는 오해를 하고 있었다. 마돈나Madonna는 '성모 마리아'를 지칭하는 이탈리아 중세식 명칭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종종 마돈나는 성모 마리아를 뜻하고, 여러 회화작품에서도 성모 마리아를 그린 그림은 마돈나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다. 무슬림인 그가 이것을 염두에 두고 그런 이름을 지었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꽤나 중의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느껴진다. 마돈나는 실제로도 정말 아름답게 생긴 팝스타 마돈나 같은 소이지만 동시에 그와 그의 가족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더 풍족하고 행복하게 만들어 줄 '신성한 소'가 된다.
후반전: 소는 결국 마을에 들어왔다. 그리고는?
그리고 그렇게 소는 결국 이 마을에 들어온다. 이동하는 과정 중에서도 소의 성격이 보이는데, 참으로 건강하고 예쁜 소다. 소를 위해 헛간을 만들고 건초를 모으고 온갖 정성을 쏟아부었던 타프디그는 소가 무사히 집에 도착한 후 더 많은 정성을 쏟는다. 그리고 그런 그를 바라보는 아내의 표정이 참으로 오묘하다. 오랫동안 반대를 했지만 막상 아름답고 건강한 소를 보니 꽤 괜찮다는 생각이 들어서일까, 소에 온갖 정성을 들이고 사랑한다, 예쁘다 라는 말을 하는 남편의 모습 때문일까, 체념-혹은 앞으로의 삶에 대한 걱정일까. 그녀의 표정은 도무지 읽기가 힘들다.
사실 이 다큐에서 '표정'은 큰 역할을 차지하는 듯 하다. 소가 마을에 들어온 후, 마을의 어르신들은 비판하기 바쁘지만 그 중에서도 그를 지지하는 어르신들도 있다. 이래저래 끊임없이 말을 하는 노인들을 쳐다보는 젊은이의 표정 역시 참으로 오묘하다.
그리고 그렇게 비판이 오가는 와중에서 다큐는 또다시 그러한 비판이 의미 없어지는 듯 한 장면을 보여준다. 물론 또다시 깨알같은 재미를 주는 장면이지만, 따져 생각해보면 큰 의미를 담고 있는 듯도 하다. 어쩌면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외부의 소가 마을에 들어오냐 마느냐가 아니라 사탕을 하루에 몇 개 먹어야 하는지일 수도 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도 그렇다. 솔직해지자. 적절한 비유대상은 아니지만 지구온난화 문제보다 당장의 건강문제에 더 신경을 쓰는 것이 우리 인간 아닌가?
유럽연합, 아시아, 동경과 불평등
타프디그의 뜻을 이해하고 그를 지지해주는 어른도 있다. 그는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던 '유럽산 소의 도입 반대'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심리적 이유를 언급한다. 어쩌면 전통이라는 명목 아래에 정체되어 있는지도 모르는 마을의 변화를 싫어하고, 그 마을이 발전하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 반대한다는 것이다. 마을을 그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것 같아 보이는 사람들이 마을의 발전을 싫어한다니? 의아할 수 있겠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되는 지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아제르바이잔의 정체성 문제와도 연결된다. 아제르바이잔은 애매하게 유럽과 아시아의 사이에 있고, 이슬람 문화권이지만 유럽 기독교 문화권과도 그리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들은 유럽과는 다르게 특별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유럽에 대한 동경 비슷한 것을 가지고 있다.
한 노인은 '아제르바이잔은 이제 유럽 연합 국가'라고 말한다. 아제르바이잔은 유럽 연합에 속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말은 꼭 사실을 말하는 것 같아서, 나도 모르게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또 확인하였다. 아제르바이잔은 분명히 유럽연합이 아니다. 그의 말은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유럽산 소를 들여오는 것은 아제르바이잔이 유럽연합에 속하기 위해 유럽적 정체성을 가지려 애쓰는 것처럼 느껴진다. 혹은, 정체성이 아니더라도 경제적 이익을 위해 하는 행동같아 보인다. 그러나 유럽연합에 소속되고 싶어하는 움직임은 또한 아제르바이잔의 전통을 거스르는 일처럼 여겨진다. 그 마을의 전통처럼 말이다.
하지만, 사람은 없고 고양이만 지나가는 길거리에서의 말은 공허하다. 그의 말은 공허한 외침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리뷰에선 다큐의 유쾌한 부분을 많이 따왔지만, 천천히 되돌아보면, 분명 전통과 경제적 이득을 가져오는 새로운 것 사이의 갈등, 전통, 순수한 것과 개방과 진보 사이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사실 처음에는 유쾌하게 즐길 수 있는 재밌는 다큐지만, 우리면 우릴 수록 더욱 내면의 메시지가 전달되는 진국같은 다큐이다. 유쾌함 속에 그런 메시지를 담을 수 있다는 것이 또한 놀랍기도 하다.
마돈나의 새끼인 알요나는 타프디그의 친구가 사간다. 외래종 소에 대한 의심과 경계가 풀리는 순간이자, 전통이 아닌 개방이 승리하는 순간이라 해석할 수 있다. 물론 타프디그의 친구 역시 젊은층이었기에 가능한 일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다른 속이야기가 존재한다.
타프디그는 두 마리 소를 먹일 건초가 없어서 알요나를 친구에게 파는 것이다. 새로운 것의 확산이 시작되겠구나 하는 짐작을 가능하게도 하지만, 친구가 송아지를 직접 끌고 데려가는 장면 옆으로 건초더미를 가득 실은 트럭이 지나가고, 좋아보이는 자동차들이 지나가는 장면은 또다른 문제를 상기시킨다. 부, 그리고 불평등. 유럽연합과 아제르바이잔의 모습같다. 이 장면은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많은 의미를 전달해준다.
한편으론 우리가 전통이나 문화보존이라는 명분 하에 특정한 지역이 경제적으로 근대적인 발전을 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 과연 정말 옳은 일이고 좋은 일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자주 생각하는 문제지만, 그때마다 늘 어려운 문제다. 서양 문명은 종종 원시적인 문화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물론 그러한 다양한 문화의 중요성은 이해하지만, 그들에게 그러한 것을 지키라고 강요할 권리가 있는지 되묻고 싶다. 그들이 불편하게 여긴다면 그들에겐 그 불편함을 없앨 권리가 있지 않을까? 그렇기에, 전통을 깨고 가족의 행복을 위해 경제적 이익을 얻기 위한 그의 행동을 나쁘게 볼 수가 없다. 전통은 중요하지만,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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