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이름으로 (In the Name of the Family)
셸리 세이웰|12세이상관람가|88분|캐나다|2010
디뷰어 김나정
영화를 보는 내내 끔찍하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종교가 문제일까, 문화가 문제일까, 가족이라는 제도가 문제일까, 남성우월주의가 문제일까. 어느 하나를 단언해서 말하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무거운 주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겁지만 꼭 들어 옮겨내야만 하는 문제, 이슬람 국가의 ‘명예 살인’에 대한 이야기다.
4년 전 대학생 시절, 미국으로 단기 어학연수를 간 적이 있었다. 미국 가정에서 한 달 홈스테이를 할 생각에 들떠서 갔는데, 웬 걸. 히잡을 두른 가족이 나를 맞이했다. 미국으로 이민 온 이슬람 가족이었다. 마침 내가 머물던 한 달이 라마단(이슬람 금식 기간) 기간과 딱 겹쳐 그들이 그들의 종교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얼마나 신실하게 믿고 의지하는지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무교로, 종교에 대한 믿음은 인생에 있어서 단 1분도 가져보지 못한 나는, 이슬람이라는 종교에 대해 편견만 가득이었다. 여성의 지위가 굉장히 낮은 종교. 종교라는 이유로 금지된 것이 많은 종교. 그때까지는 그들이 종교를 대해는 마음보다는 종교 때문에 제대로 된 인생을 누리지 못하는 감옥에 갇힌 사람들로만 이슬람 교인들을 바라보았던 것 같다. 굉장히 가부장적일 것 같았던 이슬람교였는데, 홈스테이 한 달을 지내며 많은 생각이 바뀌었다. 덩치가 커다랗던 아버지는 우리를 위해 치즈케이크를 직접 만들어 꺼내주었고, 갓 태어난 아이와도 잘 놀아주었으며, 영어가 서투른 우리의 이야기도 잘 들어주었다.
그런데 남편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나던 어머니(불과 나랑 다섯 살 정도 차이 났던 걸로 기억한다)를 바라보며 약간은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긴 머리의 아름다운 여성이었는데, 집에 우편 배달원이 오기만 해도 후다닥 침실로 달려가 히잡을 두룬 후에야 바깥문을 열 수 있었다. 손톱, 발톱 매니큐어를 예쁘게 칠한 모습을 보면서 한창 꾸미는 것을 좋아하는 ‘20대의 여자’로서의 동질감을 느꼈던 기억도 난다. 그런데 그렇게 본인을 예쁘게 꾸며놓고도, 바깥출입을 할 때는 온 몸과 얼굴을 꽁꽁 가린 채 외출해 안타깝기도 했다. ‘저 아름다운 모습을 이 집에서만 볼 수 있다니! 모두가 볼 수 없다니, 너무 안타까워! 하면서.’
갓 8살이 된 딸도 마찬가지였다. 나와 익살스럽게 사진을 찍다가도 ‘이 사진을 친구에게 보여줘서는 안 돼! 내 머리카락이 나왔으니까, 나중에 아빠한테 들키면 혼나거든!’라고 말하는 것은 물론이고, ‘나 페이스북에 가입되어있는데 여기로 계속 연락하자, 근데 아빠한테는 말하지 말아 줘. 이거 가입한 거 알면 아빠에게 혼나!’
<가족의 이름으로>라는 다큐멘터리를 보고 난 이후에 그 가족이 많이 생각났는데, 그 이유가, 돌이켜보았을 때 그 집의 여성들 역시 다큐멘터리 주인공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이 불편함을 느끼는 이유를 ‘종교 때문에’라기보다는 ‘아빠 때문에’, ‘남편 때문에’라는 이유를 많이 댔던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 다큐멘터리 역시 이슬람 국가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아니다. 캐나다로 이주해온 이슬람 가족들의 이야기다.
굉장히 자유롭고 개개인의 개성이 존중되는 나라에 살게 된 이슬람 아이들. 그들은 그 문화에 흡수되며 자라난다. 학교에서 영향을 받고, 친구들에게서 영향을 받는다. 이는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다.
그래서 그들 자신을 가리는 히잡을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 말하고, ‘남자’인 친구들과도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사람 대 사람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모든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익히는 방법도 배우고, 나를 인정해주는 사람과 연애도 한다. 10대 청소년에게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상.
그런데 그러한 딸이, 동생이, 이슬람 남자들에게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래서 계속 감시하고, 폭언하고, 심지어는 때리기까지 한다. 철저하게 계획해 살인도 한다. 평범한 일상을 누리는 것이 그들에게는 이슬람교의 원칙을 무시한, 우리 가족의 명예를 더럽힌 아주 더러운 여자로 보인다.
너 때문에 우리 가족이 더럽혀졌어, 너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우리 집 남자들을 뭘 로 보겠어, 널 어떻게 가르쳤다고 생각하겠어, 우리 가족은 다 끝났어, 너 때문에 라고.
그 이유만으로 이슬람 여성들이 살해를 당하고, 살해 위협을 받는다. 어느 누구는 당당하게 집을 나와 본인의 삶을 개척하길 원하고, 어느 누구는 억압과 자유의 문화적 충돌 속에서 계속 돌고 돈다. 그러다 순응하고, 순응하지 않은 자는 살해 위협에 항상 시달린다.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쉽게 나지 않는다. 어디부터 건드려야 해결이 될지도 훤히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모두가 관심을 갖고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임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것이 한 가족의 개인사로만 묻혀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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