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벌과 나 – 하필 고집스러운 입술이 닮아서
감독 : 웡 디에디에
작성자 : 김민범
아들은 아버지를 닮는다. 아버지와 얼마나 자주 대화를 나누는지, 많은 시간을 보내는지는 썩 중요하지 않은 거 같다. 닮지 않았다고 부정하고 싶어도 매일 아침 거울 앞에서 마주하는 얼굴에는 아버지가 있다. 닮았다는 것이 항상 축복인 것은 아니다. 닮음이 서로를 자꾸 부딪치게 한다. 비슷하다면 맞춰보려고 노력이라도 할 텐데 처음부터 닮아버려서 어쩔 수가 없다. <아버지와 벌과 나>의 아버지와 아들도 닮았다. 둘은 자주 충돌한다.
아버지는 중국 북부의 농촌에서 전통적인 방식을 고집하며 벌을 친다. 양봉 말고도 그의 집에는 거위, 닭, 돼지, 개 등 온갖 동물들이 자유분방하게 돌아다니며 동물농장을 방불케 한다. 수많은 식구를 챙기려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할 일은 계속 넘쳐서 쉴 틈이 없다. 칠순이 넘은 그의 몸은 팔팔하다고 자부하던 50, 60대와는 다르다. 반가운 소식보다는 누군가의 죽음과 병치레 소식만 전해진다. 돌아온 아들이 양봉을 이어주기를 내심 바란다.
아들은 도시에서 학교를 다니고, 1년간 회사를 다니다가 아버지를 돕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왔다. 좋은 마음으로 돌아왔지만, 20대 초반의 젊은 청년에게 고향은 외딴 유배지처럼 느껴진다. 스마트 폰을 충전하기 위해서는 시내에 다녀와야 하고, 친구를 만나려면 아침 일찍 작정하고 나서야 한다. 아버지의 고집스러움을 견디는 일도 힘겹다. 양봉에 대한 아버지의 고지식한 태도는 열정보다는 짜증을 주로 불러일으킨다.
둘은 붙어있게 되면 다툰다. 아버지는 아들이 양봉을 배울 열정도, 준비도 안 되어 있다고 타박하고, 아들은 양봉에 변화를 주고 싶지만, 아버지는 요지부동이다. 부자지간의 사사로운 충돌처럼 보이는 부자의 모습은 현재 중국 농촌이 마주한 문제와 닮아있다. 농촌은 전통을 지키기를 원하고, 청년들은 농촌이 갖는 보수성에 변화를 주고 싶지만 부모 세대에 눌려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청년들은 도시를 선택한다. 농촌과 도시 모두 쳇바퀴 같은 삶이지만, 도시에는 자신과 비슷한 친구들이 있다. 아들도 다시 도시로 향한다.
같이 있을 때는 목청이 낮아질 때가 없었는데, 도시로 떠난 아들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리자 아버지의 목소리가 부드러워진다. 떠난 지 몇 시간 안 된 아들이 괜히 애달파져서 별일 없냐고 실없이 묻는다. 어쩌자고 아버지와 아들은 닮아서 같이 있는 내내 다정한 대화 한 번 나누지 못했을까. 대화는 항상 불통으로 끝나서 각자 고집스러운 입술을 하고, 담배만 푹푹 피워댔을까. 아마 아들이 돌아오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할 거 같다. 야속하게 벌마저 아버지를 떠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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