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파는 소년 – 시를 읽는 무용함에 기대어 사는 날들
감독 : 요우디드 카베지 Youdid Kahveci
디뷰어 : 김민범
시를 읽는 일은 무용하다. 아무리 읽어도 세상은 나아질 줄을 모른다. 어쩌면 더 깊은 슬픔과 아픔을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소년은 매일 돌아다니며 시를 읽는다. 도서관에서 빌린 시집과 책을 읽어주며 몇 닢의 동전을 받는다. 사람들은 무관심하게 소년을 지나쳐 간다. 집에 돌아와도 책만 읽는 소년을 소년의 엄마는 탐탁지 않아 한다. 책만 읽는 베짱이는 필요 없다는 것이다. 당장 현실에서 필요한 것은 시를 읽는 소년의 목소리가 아니라 집안일을 거들어줄 팔과 다리이다. 소년은 다시 집을 나선다.
소년은 친구에게 향한다. 같은 마을에 사는 노파 아멜리아. 그녀가 유일하게 소년과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다. 대단한 대화를 나누는 것은 아니다. 시시껄렁한 농담을 주고받고, 소년의 낭독을 천천히 들어주는 일이 그들 대화의 전부이다. 소년은 그런 대단하지 않은 순간이 소중하다. 아멜리아는 소년의 유일한 친구이자 선생님이다. 그런 아멜리아 역시 현실을 살고 있다. 집세를 내야하지만, 늙은 여인을 어디서도 써주지 않는다. 불어난 세금에 평생을 살아온 집을 떠날 준비를 하며 살아간다.
소년은 12살이다. 한참 학교에 다니면서 공부를 하고, 친구들과 뛰어놀아야 할 나이다. 대한민국의 소년이었다면, 학원을 가기 싫다고 떼를 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너무 많이 배워서 체하는 우리의 소년들과 다르게 소년은 배우고 싶다. 이곳에서는 여전히 배움에 허덕인다. 읽다가 틀리는 걸 오히려 돈을 내는 손님이 알려주는 경우도 있지만, 소년은 꿋꿋이 읽는다. 배우는 것은 부끄러운 게 아니라 즐거운 일이기 때문이다. 소년에게서 시를 사는 사람들은 단순히 좋은 문장을 듣는 게 아니라 소년에게 응원을 보내는 것이다. 소년 역시 자신의 낭독을 사준 사람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잊지 않는다.
시를 팔고 돌아온 소년은 평소처럼 아멜리아를 찾는다. 평소에도 단번에 나오지는 않았지만, 오늘은 몇 번을 불러도 나오지 않는다. 참다못해 문을 열고 들어간다. 텅 비었다. 아멜리아가 앉아 있던 침대는 사라지고, 소년이 앉았던 의자도 없다. 텅 빈 방을 카메라는 혼자 남아 응시한다. 아멜리아는 늙은 몸을 이끌고 어디로 갔을까? 그리고 소년은 여전히 책을 읽고 있을까? 어쩌면 소년은 시인이 될지도 모르겠다. 시가 무용하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그런 무용함을 아무리 모아도 유용함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도 같이 깨달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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