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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OX/디뷰어의 시네마천국

우리의 심장은 같은 방식으로 뛴다 <Kismet: 아랍을 뒤흔든 드라마>


우리의 심장은 같은 방식으로 뛴다

<Kismet : How Turkish Soap Operas Change the World>



디뷰어: 김현정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본 리뷰는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임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니나 마리아 파샬리도우 Nina Maria PASCHALIDOU | 58분  그리스  2013





조심스럽게, 그러나 대범하게


아랍세계, 혹은 중동하면 일반적인 한국인들이 떠올리는 것은 전쟁, 이슬람, 혹은 몇몇에겐 여성에 대한 억압 - 정도가 있을 것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아랍 사회의 여성 문제를 다루고 있다. 우리에게 가까우면서도 멀게 느껴지는 터키라는 나라의 Soap Opera, 즉 한국어로 표현하자면 '드라마'가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를 따라가며, 결국 우리에게 아랍사회의 여성이 처한 현실을 고발하고, 새로운 흐름을 강조한다. '고작 드라마가?'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우리의 생각보다 미디어의 힘은 강력하다. 


사실 이 다큐멘터리의 리뷰를 작성하는 일은, 상당히 조심스럽다. 나 혼자 보고, 나 혼자 이해하고 느끼는 것은 쉽지만, 민감한 주제에 대한 의견을 공적으로 나누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아랍사회에 대한 지식도 많지 않을 뿐더러,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 사회에 속해보지 않은 자로서 왜곡된 시선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내가 이 글에서 사용하는 단어들 중에서는 일부 잘못된 표현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조심스럽게, 그리고 동시에 대범하게 운을 떼본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새롭게 무언가를 느끼길 바라는 마음에서.




결혼을 누가 행복이라 말했던가


 양성평등이 중요시되고 있는 현대사회이지만,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는 양성평등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한국사회는 요즘 양성평등 문제 때문에 뜨겁게 달궈지고 있고 남성과 여성이 갈라져서 서로에게 날카로운 칼을 들이밀고 있다. 여성측에선 여성이 여전히 사회적으로 차별받고 있다고 주장하며, 남성측에선 역차별 문제를 거론한다. 이 문제는 분명 복잡한 것이지만,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권리가 과거보다는 상승했음에는 모두 동의할 것이다. 그런데 이슬람 사회에서는 여성의 인권이 여전히 과거에 묶여있다. 물론 이는 비단 이슬람 사회만의 문제는 아니겠으나, 이 다큐멘터리가 그 이야기를 주제로 다룬 만큼, 이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이슬람 사회의 여성인권 문제라 하면 보통 히잡이나 부르카 등 종교적인 문제부터 거론하는 경우가 많지만, 나는 '히잡을 벗기는 것'에 집중하기 전에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을 보기를 바란다. 그것이 여성을 억압하는 장치 중 하나가 될 수는 있겠지만, 적어도 그것은 다른 폭력보다는 추후에 다루어도 될 문제가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실제로 다큐멘터리 속에서 스스로의 권리를 찾아가려는 여성들 중에는 여전히 히잡을 착용하는 여성들이 있고, 그들에게 히잡은 종교적 상징이라는 의미가 더 커 보인다. 히잡에 대한 언급 한 마디조차 나오지 않는다. 누군가는 이슬람이라는 종교 자체에 이미 여성을 억압하는 성격이 내재되어 있다고 주장할 수 있겠으나, 여기선 이 정도로만 생각해보려고 한다. 나의 지식적 한계와 더불어 이곳은 토론하는 자리는 아니니 말이다. 어찌되었든 강조하고 싶은 것은 '여성에 대한 폭력'이다. 


다큐멘터리는 주로 결혼과 관련한 여성의 문제를 다룬다. 이슬람 사회에서도 결혼은 중요한 의례 중 하나이다. 하지만 결혼의 당사자 중 하나인 여성에게 결혼은 종종 돌이키고 싶지만, 돌이킬 수 없는 고통과도 같다. 강제로 하는 중매결혼, 사랑이 없는 결혼. 이슬람 사회의 수많은 여성들이 경험했던 것이고, 한국사회의 윗세대들도 경험했을 결혼. 그렇지만 이슬람문화권의 여성들에게 이 결혼이 더 비극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그것이 끝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억지로 결혼을 '당하고',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고, 이에 대해 사회는 묵인하며, 용기를 내 이혼을 요구하는 여성들은 처참히 무시당한다. 결혼만이 아니다. 여성이 강간을 당하게 되면 가족들도 이를 비밀로 하려고만 하고, 무작정 결혼을 시켜버린다. 여성인권 운동을 하던 이집트의 여성은 경찰에게 붙잡혀 알몸으로 처녀성 검사를 당한다.



터키, 두 세계의 사이에서


터키는 유럽과 중동지역의 가운데즈음에 있는 나라이다. 대다수 터키의 국민들은 이슬람을 믿지만, 터키의 헌법에 의하면 터키는 세속국가이다. 즉 종교의 자유가 있는 국가이다. 또한 유럽대륙과 붙어있는 터키의 가장 번화한 도시 이스탄불은 관광객들로 넘쳐난다. 그렇기에 터키는 이슬람문화권에 속한 나라 중에서도 나름 '진보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다큐멘터리가 다루는 것도 바로 이 '진보적인' 터키에서 만들어지는 '터키의 드라마'이다.


터키의 드라마는 이슬람 문화권의 여러 나라에 수출되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유럽으로의 수출도 성공하였지만 문화적 유사성이 있는 그리스로만 수출에 성공하였다. 그리스의 국민들은 한 터키의 드라마에 등장하는 술레이만이 에게해의 학살자였다는 점에서 터키의 드라마에 반대하기도 하지만, 몇몇 그리스인들은 터키의 드라마를 보며 과거에 그 문화권에서 중요시했던 가족간의 사랑이 현재 그리스에서는 사라지고 있음에 슬퍼하며, 드라마에 더욱 애착을 가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로 이슬람 문화권에서 터키의 드라마가 일으키는 열풍이다. 이는 단순히 한류드라마와 같은 문화산업적 문제가 아니라, '쟈스민 혁명'과 같은 중동의 정치적 변화와 더불어 가는 현상이라고, 다큐멘터리는 그리고 있다. 터키드라마는 단순히 엔터테이먼트적 요소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힘으로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있다.


터키 드라마에는 이슬람 문화권에선 찾아보기 힘든 다정한 남자와 자신의 능력으로 부를 축적한 여성이 자주 등장한다. 다른 아랍의 여성들에 비해 자유로운 축에 속하는 터키의 여성, 그리고 현대 터키 여성의 모습은 다른 이슬람문화권의 여성들에게는 그녀들의 일상에 존재하지 않는, 동경의 대상이다. 일상에 존재하지 않지만 그렇기에 더욱 감정이입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주인공들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도 그렇게 살고 싶어 하고, 자신을 억압하는 사회에 대항하고자 한다. 드라마 하나만 보고 사람이 그렇게 바뀔 수 있냐 하는 의문이 올라오지만, 그만큼 그녀들이 절실했음을 반증하는 것이 아닐까.



 

터키드라마의 엄청난 인기는 '터키 드라마 여행'까지 만들어냈다. 드라마 속 여성들을 동경하던 현실 속 여성들은 드라마의 주인공이 살았던 곳으로 찾아간다. 그곳에서 어떠한 대리만족을 느끼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드라마에 푹 빠져 드라마와 현실을 헷갈려하는 것은 아니다. 다큐멘터리는 이 지점에서 터키 드라마 속 여주인공을 연기하는 배우와의 인터뷰를 보여준다. 현실 사회에서 찾기 힘들어보이는 역할을 연기하는 배우들은 이 드라마가 단순히 드라마로 남지 않게 해준다. 그녀들은 실제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여성인 동시에 새로운, 발전될 현실과의 연결고리이기도 하다.



여성, 그리고 남성


하지만 '드라마를 보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비판은 분명히 존재한다. 오히려 여성의 움직임보다 더 강력할 수 있다. 남성 위주로 돌아가는 사회 속에서 여성들은 남성의 전유물이 되어 경제적 능력을 상실하는 동시에 역설적으로 남성의 경제력에 의존할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경제력으로 '남편이 사준 TV'를 여성들은 이용한다. 너무나 아이러니한 문제이다. 다큐멘터리 속에서 이혼에 성공한 여성은 어느 정도 부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 경제력의 원천이 정확히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 갸우뚱한 점도 있었다. 여성이 진정으로 자신의 인권을 위해 움직이는 과정에서 경제적 자립은 사실 그 어느 것보다 필요할 수 있다.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그것을 얻는 것은 어렵기에 풀리지 않는 악순환으로 보이기 하지만.


그러나 여성들의 움직임을 지지하는 남성들도 있다. 터키드라마 애청자인 한 남성은 자신들도 영향을 받는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드라마 속 폭력적이지 않고 다정한 남성들의 모습을 보며 자신들도 그것이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사실 이 리뷰는 다큐멘터리의 전체를 다루진 못하였다. 그리고 다큐멘터리의 모든 내용을 담기에는 나의 실력이 너무나 부족하다. 그렇기에 이에 동감하거나 혹은 반대하거나, 아니면 궁금한 것이 있다면 다큐멘터리를 보기를 바란다.







KISMET: WE MUST TELL


잔인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목소리를 내어 말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다. 

잔혹하고 냉정한 이 세계는 흔들릴 것 같아 보이지 않지만, 끊임없이 목소리를 낸다면 분명 흔들릴 것이다. 드라마라는 사소해보이는 도구가 그 흔들림의 시작이 될 수도 있다. 아니, 이미 흔들림의 시작이 되고 있다.


여성이 드라마의 이야기를 쓰고 여성이 주인공을 창조해낸다. 여성이 스스로 침묵을 깨기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Kismet. 알라의 뜻. 운명. 혹은 미래에 일어날 무언가를 결정할 수 있는 힘.

여성은 움직임으로써 이를 가져나갈 수 있을 것이다. 






각 나라의 문화는 서로 다를지라도, 사회적으로 억압받던 존재이던 여성들은 무언가를 공유한다.

그들, 아니 우리의 심장은 같은 방식으로 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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