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티안 쇤더비 옙센(Christian Sønderby JEPSEN) | 전체관람가 | 98분 | 덴마크 | 2015
내가 아주 어릴 적 TV에서 나오는 샴쌍둥이를 보고 말했다.
"우와 신기하다, 나도 나중에 샴쌍둥이 낳을래!"
TV를 보시던 아버지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어린 나를 아주 호되게 혼내셨다.
"너 어디 그런 말을 함부로... 말이 씨가 되면 어쩌려고 감히.."
당시 나는 장애아를 낳을까봐 무서운게 아니라 아버지가 무서워서 다시는 그런 말을 하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물론, 내 발언은 경솔했다. 그리고 그 이후로 두려움이 생겼다.
길 가다 맞은편에서 얼굴이나 행동이 조금 이상한 사람이 걸어오면 슬쩍 피했다.
아닌 줄 알면서도 무슨 전염병이라도 걸릴 것 같은 거북함. 날 해할지도 모른다는 불안. 내가 상대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다는 묘한 동정과 우월의식. 나는 정상적인데 저들은 비정상인이라는 이질감.
설명하기 어려운 껄끄러운 감정을 수반하는 장애인이란 단어는 입에 올리는 것 자체가 죄인 것 같았다.
장애아는 한 동안 내게 상상조차 하면 안 되는 금기였다.
물론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누구나 장애인으로 태어날 수 있다.
후천적으로 장애를 얻게 될 수도 있다는 의미에서 정상인이라고 자부하는 모두는 비장애인이다.
게다가 정상이라니. 나는 정상인지.
스스로를 정상인이라고 일컬으면 정상인건지 누가 정해주는 건지.
의사에게 물어봐야 하는지 신에게 물어봐야 하는지.
공장에서 생산한 양품과 불량품은 정상, 비정상이라고 쓸 수 있을지 몰라도 사람에겐 영 맞지 않는 표현이다.
그래서 예전엔 무심코 썼던 정상, 비정상 이란 모호하고 폭력적인 표현을 썼던 과거가 부끄럽기까지 하다.
그런데, 한 청년이 그 폭력적이고 금기된 표현을 쓰며 사람들에게 묻는다.
"여러분들은 어떤 사람이 비정상이라고 생각하세요?"
"당신은 정상이세요?"
"전 아픈 사람인가요?"
"저는 장애인인데 어째서 아프지 않다고 생각하세요?"
야코브는 기자가 되고싶은 27살 청년이다.
그는 스스로를 이렇게 표현한다.
"나는 쓸데없이 늘어진 당신의 피부, 나는 당신이 바란 적 없는 첫 번째 주름살, 나는 당신의 첫 번째 치질"
그래 맞다. 장애는 우리가 무시(無視), 보고 싶어하지 않는 존재다.
본다 해도 인정하고 싶지 않고, 인정한다 해도 영 불편하고 거북하다.
그래서 있다는 사실을 까먹는는다. 아니 까먹기로 택한다.
그의 엄마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의 뇌에는 작은 블랙홀이 있다.
대뇌 피질 안쪽이 아주 작은 부분이 제대로 발달하지 못해서 장애가 생겼다고 한다.
그의 머릿속에 울리는 자신의 목소리는 배우의 음성인데, 입 밖으로 뱉어지는 말은 어눌하다.
목소리의 크기를 조절하는 것이, 얼굴의 근육을 조절하는 것이 어렵다.
야코브는 장애가 있는 자신이 살 가치가 있는지 궁금하다.
자신이 정상인지 비정상인지, 그렇다면 어느 정도의 뇌성마비면 정상의 범주에 들어가는지 궁금하다.
그래서 자신의 존재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한 방법으로 연극으로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기로 기획한다.
연극은 철저한 자아성찰에 바탕을 둔다. 유전자 검사를 하고 본인을 입양한 양부모에게 어린 시절을 묻고 철학자를 찾아가고, 생물정보학 교수를 만나 토론한다.
인류의 미래에, 성별 혹은 IQ 등 유전자를 선택 선택해서 살 수 있는 시대에도 장애인이 살아있을까?
미래에도 장애인이 인류로서 존재할까?
어쩌면, 아이를 낳는 자체가 아동학대로 여겨지는 사회가 되지는 않을까?
50년 후 야코브는 무얼 하고 있을까?
덴마크 의학박물관에는 오래 전 장애와 질병이 있던 아이들이 유물이 되어 보존되어있다.
아이들의 유골과 표본은 과거에 사람들이 정상성을 어떻게 인식했는지 분석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뇌수종을 앓았던 아이의 유골이에요.
200년 전에는 뇌수종이 왜 생기는지 몰라서 나름의 핑계를 찾아냈죠.
트롤이나 다른 괴물이 자기 아이랑 바꿔치기를 했다고요.
트롤이 건강한 아이를 훔친 뒤 대신 놓고 간 아이가 자라 이렇게 됐다는 거예요..
아이가 이런 건 내 탓이 아니라느 변명으로 장애아의 부모는 면죄부를 받을 수 있었죠.
이런 표본들은 괴기스러운 동시에 아름다워요.
여기 있는 태아는 '사이렌'또는 '인어'라고 부르죠
눈을 감고 물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수면으로 올라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해서 시적인 느낌을 주죠.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표본입니다."
-덴마크 의학박물관 부관장 욘 마이어
야코브는 50년 후 표본용 병에 들어가게 되는걸까.
야코브는 자신의 언어로 극을 풀어내기 위해 두통이 오도록 고민을 하고 정신적 압박에 동료에게 화를 내기도 한다.
연극을 그만두고 싶기도 하고 지금 이 다큐멘터리의 피사체가 되는 것이 불편해 카메라를 꺼달라고 요청한다.
연습이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해 몇 달 간 준비를 쉬며 내가 왜 이런 걸 한다고 했는지 자책하고 후회한다.
그는 중세 시대 궁정 광대의 역할을 물려받았다.
쉬쉬하던 추악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게 궁정 광대의 역할이었다.
야콥은 사람들이 모두 미쳤고 뒤틀려 있다면서 우리가 듣고 싶지 않은 우리의 실상을 이야기한다. 꿈이나 왜곡된 세상에서나 직시해야 했던 이야기를 한다.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야코브입니다.
사람들은 저를 처음 만나면 본능적으로 충동을 느껴요.
빨리 도망쳐버릴까 아니면 죽여버릴까.
그런데 오늘 저녁은 참 평화롭군요."
야코브는 가정을 꾸리는 것이 꿈이다.
야코브는 연극을 준비하며 언젠가 태어날 아들에게 편지를 쓴다.
그가 편지를 읽는 순간, 내가 쓴 줄 알았다.
야코브의 마음속 깊은 불안은 사실 내가 느끼고 있던 불안이었다.
들키고 싶지 않던 내 치부를 들킨 것 같아 흠칫 놀랐다.
행간의 침묵으로 전하는 고통에 나도 흐느꼈다.
사랑하는 내 아기에게
난 벌써부터 널 사랑해.
엄마의 자궁 안에서 잘 지내고 있니?
그 안에 있을 떄가 네 인생에서... 가장 안전한 시간일거야.
세상은 의심과 걱정으로 가득하단다.
언젠가 네가 이 세상에 나오고 내 손으로 너를 돌본다고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바지에 오줌을 쌀 것 같아.
(중략)
내 생각엔...
만약 네가...
너무 많은 난관들에 맞서 싸워야 하는 인생을 바라지 않는다면
아빠처럼 태어나라고 말하지 않을게.
하지만 경험을 쌓고 세상을 보는 통찰력도 얻고 마음속으로 수천 리 길을 떠나고 싶다면
아빠처럼 태어나도 돼.
너의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친구들이 아빠를 보고 웃지 않으면 좋겠다.
그래도 약속할게.
좋은 아빠가 되겠다고.
그게 내 소원이니까.
야코브와 나, 우리는 그저 다른 옷을 입은 같은 사람이구나.
장애에 대한 금기을 깨고 세상에 나온 야코브는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얘기를 담담히 한다.
담담하고 직설적이라 지켜보며 뜨끔하는 순간이 많다.
야코브는 장애의 시각으로 삶의 가치를 고민하지만 사실 비장애인 역시 같은 고민을 한다.
나는 살 가치가 있는 것일까. 남들과 다른 내가 비정상적인걸까.
그의 고민은 장애인이기에 하는 특수한 고민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하는 고민이다.
우리는 아무도 태어나길 선택하지 않았기 때문에 왜 살아야 하는지, 태어난 이유를 설명하며 산다.
삶의 가치를 고민하는 수 많은 장애인이, 그리고 삶의 가치를 고민하는 수 많은 비장애인이 함께 보면 좋을 영화다.
먼저 자신의 언어로 다가와 연극으로, 영화로 자신의 고뇌를 설명해 준 야코브에게 고맙다.
덕분에 나 역시 보편타당한 한 사람임을 깨닫게 해주어 고맙다.
우리의 삶에는 많은 시험이 있다.
사진작가 디앤 아버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야코브는 이미 하나의 시험을 통과한 귀족이다.
"내가 많은 사진을 찍은 서커스단의 기형인들은 내게 있어서 최초의 테마들 중의 하나였고, 내게 엄청난 흥분을 가져다주었다.
나는 정말로 그들을 존경했으며, 그리고 지금도 그것은 변함이 없다.
그들은 마치 느닷없이 당신을 불러 세우고는 수수께끼를 풀라고 요구하는 신화 속의 인물과도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생을 통하여 외상의 경험에 대한 끊임없는 불안을 안고 살아간다.
그러나 기형인들은 외상과 함께 태어난다.
그들은 이미 삶의 시험을 통과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귀족이다"
-사진작가 디앤 아버스
Tip. 지난 여름 EIDF 2016 영화제 당시 감독과 야코브가 함께 한국에 왔다.
지금은 예쁜 여자친구가 생겨 같이 한국을 방문했는데, 생후 3개월 덴마크로 입양된 이후 처음 온 한국이 낯설고 반갑다고 했다.
그는 여전히, 자신의 방법으로 정체성을 찾아가가는 중이다.
'D-BOX > 디뷰어의 시네마천국'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는 왜 거짓말을 하는가? (0) | 2016.11.27 |
---|---|
이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그림자 속에서 影> (0) | 2016.11.22 |
아고라: 민주주의에서 시장으로 (0) | 2016.11.19 |
페이스부키스탄Facebookistan - 페이스북하기 전에 알아야 할 것들 (0) | 2016.10.31 |
EIDF/D-BOX 다큐멘터리 <브라더스> (0) | 2016.10.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