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어 김소망
맨 처음 EIDF 리뷰어 활동을 시작했을 때 노인을 다룬 작품 위주로 리뷰 하기로 마음 먹고 나름의 리스트를 짜다가 이걸 볼지 말지 끝까지 고민되는 작품이 있었는데 그것이 <노인들의 계획>이다.
영화 사대주의자는 아니지만 이왕이면 쉽게 접하기 어려운 외국 장편 다큐멘터리를 더 많이 관람하고 싶었고 EIDF의 매력은 그것에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노인을 다룬 영화는 한정되어 있고 하릴없이 이 영화의 썸네일을 클릭해 들어가는 빈도수가 높아졌다.
결국 의지를 앞세워 VOD를 재생시켰고 생각보다 훨씬 더 생소한 느낌의 다큐에 오히려 신선함을 느꼈다.
이 영화는 종편이나 케이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생활밀착형 다큐나 <다큐 3일>식의 감성적인 다큐와도 결이 다르고, 그렇다고 EIDF의 대표급 노인 다큐멘터리인 <티타임>과 비슷한 연장선에 있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굳이 얘기하자면 ‘한국형 노인 다큐멘터리’라고 해야하나. 어떤 장면에서도 노인들을 미화시키려는 느낌이 하나 없다. 거친 욕지거리가 난무하는 장면도 하나 없는데 영화를 다 보고 난 지금, 어찌하여 난 이렇게 낄낄대며 이 영화의 ‘난장’스러움을 곱씹고 있는지 모르겠다.
지하철의 노인좌석에 나란히 앉아서 가실만한 노인분들이 경기도 안산에 작지도 않은 사무실을 냈다. 이름은 ‘은빛 둥지’, 노인을 대상으로 컴퓨터를 가르치는 곳이다.
많은 복지관에서 워드프로세스, 기초 인터넷, 스마트폰 강의를 가르칠 때 몇 명의 노인이 공동으로 창업한 ‘은빛 둥지’는 포토샵과 프리미어라는 다소 부담스러운 프로그램을 가르친다.
단순히 다른 실버 타겟 강의들과 차별점을 두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노인에게 ‘우아한 수익모델’을 보여주고 싶어서다. 이들은 언젠가 영상제작이 수강생들에게 취미나 교육이 아닌 생업이 될 수 있도록 다양한 곳에 사업 기획안을 제의한다.
영화는 웰메이드 다큐멘터리에서 볼 수 있는 탄탄한 구성 대신 다소 헐거운 구성에, 비슷한 메세지의 에피소드들이 반복된다는 느낌이 있지만 TV용 다큐멘터리에서는 접하기 힘든 날 것의 상황, 대사가 끊임없이 튀어나와 당혹감을 안긴다.
다큐멘터리에도 연출이 있기 마련인데, 이 작품은 어떻게든지 노인의 삶을 아름답게 결론지으려는 마음이 느껴지지 않아 신선하기까지 했다.
이 영화를 보며 내가 이제껏 EIDF 영화를 나도 모르는 새 몇가지 틀에 가둬놓고 감상해 왔다는 걸 알게 됐다.
세상에는 다양한 색채, 다양한 목소리의 다큐멘터리가 있고 이 페스티벌이 지향하는 바도 그것에 있을 텐데 나는 한국의 다큐멘터리에서 다른 나라 영화의 미를 자꾸 찾으려고 했다. 그것이 보이지 않으면 촌스럽거나 너무 직설적인 화법이라고 생각했다.
음악 저작권 문제를 호소하며 “애국가도 안 된다고 해서 안익태씨 부인이 국가에 내놓는다하고! (...) 엊그제 조용필이도 이십칠년만에 소송을 하고!” 식의 걸출한 입담을 내뱉는 할아버지의 대사를 들을 때 이걸 영어 번역으로만 접해야하는 외국인들을 떠올렸다.
내가 이제껏 봐온 외국 다큐멘터리의 분위기가 실상은 전혀 다른 것일지도 모른다는 새삼스러운 충격이 찾아왔다. 어쩌면 EIDF의 영화중에서 가장 이국적인 느낌의 작품은 이 영화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노인들의 계획> 감독 : 장준석/77분/한국/2014년
인생 황혼기, 영상 촬영을 위해 현장을 누비고, 밤늦도록 편집에 매달리는 노인들. 이들을 이끌고 있는 ‘은빛 둥지’의 라영수 원장은 지원금을 신청하고 포부를 설파하느라 쉴 틈이 없다. 시간 때우기가 아닌 자신의 이야기를 담고 싶고, 그 이야기로 돈도 벌어야 하는 이 노인들의 계획은 무엇이며, 목표는 어디까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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