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내가 정말 미소짓고 있었을까(To see if i am smiling)- 썩은 사과상자 본문

D-BOX/디뷰어의 시네마천국

내가 정말 미소짓고 있었을까(To see if i am smiling)- 썩은 사과상자

EIDF editor 2017.01.31 03:18
내가 정말 미소짓고 있었을까(To see if i am smiling)


타마르 야롬(Tamar Yarom) | 15세관람가 | 59분 | 이스라엘 | 2007      


디뷰어 : 한유리



이스라엘 방위군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여성의 군 복무를 의무화하고 있다.

여성들은 18세가 되면 2년 동안 군에 복무한다. 1967년부터 이스라엘 방위군은 가자 지구와 웨스트뱅크 지역에 주둔하며 메일 팔레스타인인들을 마주한다. 그리고 이곳에도 여군들이 근무하고 있다. 영화에 등장하는 군인들은 어린 나이에 입대하여 의무병, 관측병, 전투병 등으로 훌륭히 여군의 역할을 수행한다. 그들은 국가를 위해 중요한 일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헤브론(점령지)으로 자대 배치 통보를 받았을 때 너무 기뻐서 펄쩍 뛰기도 했다.



군대라는 독특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다. 소녀들은 여성성을 억눌러 남자들의 일원이 되려 노력한다. 곰처럼 보이는 큰 점퍼를 입고 일부러 남자 같은 말투와 목소리를 낸다. 물론 여성성을 억누르지 않고 조직에 적응할 수도 있다. 그저 머리만 자주 감으면 된다. 금발에 샴푸 냄새를 폴폴 풍기면 아이돌 대접을 받는다. 그러나 이 모두보다 우선시 되는 덕목이 있으니 바로 침묵이다. 첫 침묵의 경험은 잊을 수가 없다. 동료의 포로 소년 가혹행위가 있었다는 보고를 하자 가혹행위가 없었고 포로가 거짓말쟁이라는 보고서를 다시 올리라고 한다. 양손에 상반된 보고서를 들고 부조리를 언론에 제보하고싶은 충동에 목이 간질간질하지만 이내 꾹 삼키고 만다. 첫 침묵 이후로는 이미 동조자가 되었으니 침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군대는 원래 그런 곳이었다. 새로운 질서가 통용되는 조직, 눈을 감아 결속을 다지는 곳.


소녀들은 점차 군인이 되어간다. 군대의 질서를 깨닫고 어느새 그들과 같은 무리가 된다. 그 무렵이면 국가가 그들에게 쥐여준 권한이 얼마나 어마어마한지 실감한다. 18세에 불과한 자신의 무전 지시를 받고 군인들이 방향을 바꾸어 달린다. 자신의 한 마디에 인근 30여 개 부대가 전투태세를 갖춘다. 때로 명령을 수행하다 보면 사망자가 나오기도 하지만, 그래서 뭐. 어쩌라고.



"지프차 문을 연채로 속도를 내서 달리다가 급브레이크를 밟아 쭉 미끄러질 때면 마치 서부 개척시대의 무법자라도 된 것 같았어요. 가령 이런 느낌이랄까요. 사람들 옆에 차를 세우고 손가락만 까딱해도 냉큼 달려올 것만 같았어요. 손끝으로 사람을 부릴 수 있는 그런 파워 말이에요."


점령지의 포로는 군인의 분노를 자극했다. 지나가는 팔레스타인인이 내 동료를 죽인 가해자처럼 여겨져서 도저히 그냥 보낼 수가 없다. 저 여성의 겹겹이 쌓인 옷 밑에 폭탄을 숨겼을 것만 같다. 감히 포로 주제에 반항하고 나이 어린 여군이라고 모욕까지 하니 분노가 폭발한다. 지금이야말로 손에 쥔 권력을 정당하게 휘두를 때다. 검문소에서 보이는 아랍인들을 모두 뙤약볕에 억류시키고 여성 아랍인은 속옷만 남기고 벗겨 몸수색을 한다. 때론 고문 같은 폭행도 일삼았다. 좀 더 윤리적이고 도덕적으로 사고해서 행동하라고 말리는 사람은 없었다. 국가수호의 의무와 악한을 처벌할 정당성을 부여받아 적합하게 권력을 행사했을 뿐이니. 점령지는 원래 그런 곳이었다. 절대권력이 합당화되는 공간, 폭력과 살인이 정당화 되는 곳.



테러의 조짐을 관찰하고는 폭탄에 불을 붙이기만 한 소년을 죽인다. 테러로 사망한 시신들을 수습한다. 팔 한 짝이 나뒹굴고 시체의 악취가 메스껍지만 메스껍다는 말을 하진 않는다. 팔레스타인 포로의 시체를 깨끗이 닦으라는 임무가 떨어진다. 적국에 시체 양도시 죽음의 경위를 알 수 없도록 흔적을 지우기 위한 것이다. 때로 피 끓는 교전이 즐겁기도 했고 때로는 가치관이 혼란스러울 때도 있었다. 그러나 군대에서 과민반응을 할 수는 없는 법. 감정적 혼란을 추스를 틈도 없이 임무를 수행했다. 다만, 군에서 이런 일들이 있었다고 누구에게도 얘기할 수는 없다. 듣는 이들은 분명 놀라서 혐오감을 내비칠 것이 뻔하니...



그들에게 왜 그랬니, 죄책감을 느끼진 않니, 그 사실이 괴롭진 않니 등의 질문은 무용하다. 용맹한 군인으로서 맡은 바 임무를 충실히 수행했을 뿐이다. 그러나 이 군대 경험은 제대 후 다시 스무 살의 소녀가 된 그들을 괴롭힌다. 제대 후 매일 술에 찌들어서야 잠이 든다. 소녀들의 경험은 1971년 행해진 유명한 심리학 실험 스탠퍼드 감옥 실험의 현실판처럼 보인다. 교도관과 수감자의 역할극 실험에서 교도관의 역할을 맡은 이들은 이틀만에 원래의 역할보다 더 진지하게 몰두하여 수감자 역할의 이들에게 가학적인 행위를 했다. 심지어 실험을 주도한 짐바르도 교수 본인 마저도 교도관의 역할에 매몰되어 동료 교수가 지적해 주기 전까진 자신의 비인간적 모습을 깨닫지 못했다고 한다. 짐바르도 교수는 이 실험을 통해 아무리 선량한 사람이라도 권위-동조-복종 시스템에서는 악을 행할 수도 있다는 악의 평범성에 대한 주장을 했는데, 이를 루시퍼 이펙트라고 부른다. 비유하자면, 사과가 썩은 것은 사과의 기질이 나빠서가 아니라 썩은 사과상자에 담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런 논리로 비도덕적인 가혹행위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 그러나 구조적인 모순 속에서 폭력성이 표출되는 것을 인간 본성이라고 한다면 소녀들을 마구잡이로 질책하기는 어렵다. 국가는 애국심이라는 환상을 심었고, 소녀들은 환상을 위해 양심을 희생당한 개인의 표상이다.

"당신은 이렇게 말하겠죠.

나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거야.

하지만 그때 그 상황에 처해보지 않는 한,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할지 어떻게 알겠어요?

그건 모르는 일입니다."

- 필립 짐바르도 -


그러나 그들이 부조리를 타파할 수도 있던 단서가 있다. 그건 바로 침묵. 소녀들의 공통점은 첫 침묵 이후 죄의식에 시달렸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들은 침묵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어쩌면 그들은 죄의식이라는 자각이 존재하는 한 부조리한 상황과 행위에 제동을 걸 수도 있었다. 우리가 집중해야 하는 것은 폭력성이 언제 발휘되는지 보다 어떻게 하면 이 권위-동조-복종 시스템에 굴복하지 않는가이다. 짐바르도 교수가 제시하는 루시퍼 이펙트에 저항하는 방법이 있다. 정당한 권위에는 존중을, 부당한 권위에는 반항을. 틀에 대한 감시를 게을리 하지 말 것. 집단에 속하길 원하되 자신만의 독립성을 소중히 여길 것.

 

소녀들이 이젠 눈물을 닦았으면 좋겠다. 더 이상 술에 쪄들어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혹독한 군 복무 기간 동안 길고 긴 악의 터널을 지나며 이제 다시는 악을 발현하지 않을 용기를 갖추었을테니.

"다른 사람의 처지를 생각할 줄 모르는 생각의 무능은 말하기의 무능을 낳고 행동의 무능을 낳는다.

나치즘의 광기로든 뭐든 우리에게 악을 행하도록 계기가 주어졌을 때

그것을 멈추게 할 방법은 생각하는 것 뿐이다."

- 한나 아렌트 -


Tip.

참고. 스탠퍼드 감옥실험 링크(클릭)

특별히 감독이 여군만을 대상으로 촬영한 것은 이스라엘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여성 징병제를 시행하고 있기에 보는 이로 하여금 더욱 감정적 임팩트를 주기 위해서가 아닐까.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0 Comments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