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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IDF 2014/EIDF 2014 현장 스케치

[EIDF 현장 스케치] <Talk With Guest> 홈스가 불타고 있다(Return to Homs)


<홈스는 불타고 있다(Return to Homs)>


8월 26일 화요일 오후 5시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상영된 다큐멘터리 ‘홈스는 불타고 있다’가 끝난 후, 본 영화의 감독님 탈랄 덜키(Talal Derki) 분께서 특별히 관객분들을 찾아주셨습니다. 성균관대 김정구 교수님의 진행과 함께 짧지만 뜻 깊은 TG(관객과의 대화)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먼저, 이번 페스티벌 초이스 경쟁작 <홈스는 불타고 있다>와 감독님에 대해서 간단히 알아볼까요?


-다큐멘터리 <홈스는 불타고 있다>



시리아 국가대표 골키퍼 출신의 바셋은 민주화를 외치는 반정부 시위대를 이끌며 노래를 부른다. 바셋의 친구이자 평화주의자 미디어 액티비스트인 오사마는 시위 현장을 카메라에 담는다. 평화롭던 민주화 시위가 내전으로 번져가면서 포탄과 학살의 소음이 커져만 간다. 2011년 8월부터 3년간 시리아 내전을 생생하게 담은 2014년 선댄스 그랑프리 수상작.


-감독 ‘탈랄 덜키(Talal Derki)



탈랄 덜키는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출생, 이후 아테네에서 영화 연출을 공부했다. 로이터, CNN, 프랑스24 등에서도 리포터로서 왕성히 활약한 바 있다. 시리아 혁명 이전에 만들어진 작품들은 다양한 영화제에 초청받았지만 그가 가족들과 시리아를 떠나기 전까지는 가명으로 상영되어야만 했다. 시리아 혁명의 발발은 갖은 위험에도 불구하고 모국을 위한 작품을 만들겠다던 그의 오랜 꿈을 본격적으로 현실로 옮기는 계기가 되었다.



“Hi, good evening”이라는 멋진 인사로 토크를 시작해 주신 ‘탈랄 덜키’감독님은 역시나 이어지는 많은 질문들에도 열성을 다해 답해주셨습니다. 먼저, 진행해주신 한국예술종합학교 김정구 교수님께서 영화를 보시고 준비해온 내용들을 질문해 주셨습니다.


Q1. 다큐멘터리의 주인공 바셋과 그의 친구 오사마를 처음에 어떻게 알게 되신 건지 그 배경이 궁금합니다. 


"2011년 시리아 내전이 시작될 때부터 이미 이를 찍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특히 시리아 내에서 당시 대통령 말고도 유명한 인물이 있다면 그를 중심으로 취재하고 싶다고 생각했죠. 당시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면서 도시와 도시를 이동하며 촬영하던 중, 오사마를 만나게 되었고, 바셋을 소개 받게 되었어요. 그는 어린 나이였지만 홈스의 영웅이었고 그때부터 인연이 시작되었어요."


Q2. 다큐멘터리에서 바셋은 영웅이 되어 사람들과 어울릴 때는 희망차고 패기 넘치는 노래를, 점점 혼자 남게 되면서는 슬픈 노래들을 부르곤 합니다. 그렇게 노래를 통해 당시 상황이나 감정을 표시한 것이 의도된 기법이었나요? 아니면 바셋의 개인적인 특성이었나요?


"좋은 질문이에요. 바셋이라는 친구는 자체가 열정이 넘치고 도전을 좋아하고, 또 감정의 기복이 심한 성격이에요. 처음부터 바셋의 감정이 이렇게 노래로 표출될지는 몰랐죠. 다만 바셋이 어떠한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그것이 노래로 나타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처음에 바셋은 수많은 혁명가 그룹 중 한 그룹의 영웅으로 많은 사람들과 함께 했어요. 그러나 내전이 시작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 작은 그룹의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치고, 포기했어요. 물론 바셋은 많이 실망했어요. 그러나 그는 항상 사람들의 중심에서 노래하고 소리치며 희망을 잃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어요."



Q3. 다큐멘터리만 보아도 위험한 상황임이 틀림없는데요, 감독님께서 실제로 위험한 상황에 처하거나 하신 적은 없으신가요?


"사실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으로서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어요. 물론 위험이란 요소는 인생을 살면서 계속해서 가까이에 존재해요. 그러나 특히 실제로 시리아에서는 카메라는 것 자체가 매우 중요하고 귀한 물건이라 더 위험하다고 볼 수 있죠. 카메라를 가지고 촬영하는 사람들의 70%가 죽음에 이르고 있다고 봐도 무방해요." 



Q4. 영화의 마지막에서 바셋이 홈스로 돌아가는 장면이 정지화면이 되고 노래가 흘러나오는데요, 그 당시 돌아가는 바셋의 모습을 보면서 감독님께선 어떤 감정을 느끼셨을지 궁금합니다. 


"우선 나는 바셋과 작별을 하면서, 그것이 작품의 감독으로서 이 이야기와 그 도시 홈스와의 끝이라고 생각했어요. 바셋에게는 홈즈로 돌아가는 것이 그의 인생의 종착지였고 마지막 선택이었죠. 그러나 나의 종착지는 그곳이 아니었고, 나의 할 일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바셋을 따라 홈스로 갈 수 없었어요." 



김정구 교수님의 질문이 끝난 후, 감독님의 다큐멘터리를 관람하신 관객분들이 영화를 보면서 궁금하셨던 부분들에 대해서도 여쭤볼 수 있었습니다. 



Q1. 이 영화 앞부분에서 홈스에 사는 한 노인은 조만간 홈스가 모두 피로 물들 것이라고 예고합니다. 그리고 그 후에 바셋이 말하기를 ‘구세대는 이 정권을 잘 알지만 현 세대는 이 정권을 알 수 없다.’라고 하더군요. 당시 시리아 정부를 겪어온 노인이야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을 테지만 바셋의 말대로 구세대를 겪지 못한 바셋은 어떻게 그렇게 초지일관 자신의 신념을 끌고 갈 수 있었을까요? 감독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1982년, 아사르 대통령의 아버지가 대통령이던 당시, 소련과 미국이 싸우고 있을 때 홈스 지방에서 어마무시한 대학살이 이루어 졌어요. 두 달 사이에 7만 명이 죽음을 당했어요. 당시 제대로 된 카메라나 이를 알릴 수 있는 미디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이 사건은 그냥 묻혔어야 했죠. 바셋의 윗세대들은 이를 기억하고 있지만 바셋은 그것까지 직접 겪지는 못했어요. 그러나 아마 바셋은 자신의 주위에서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는 모습 자체들이 너무나 충격적이었을 거에요. 그러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자신의 신념을 지켜나가지 있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짧았지만 뜻 깊었던 관객과의 이야기 시간이 마무리 되면서 마지막으로 감독님께서는 “기술의 발전을 통해 현재 SNS등의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세계에서 발생하는 여러 사건들이 그대로 담길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고 생각 한다”는 말씀을 남겨주셨습니다. 


우리가 알지 못했던 세계 이면의 모습을 알게 해주신 훌륭한 ‘탈랄 덜키’ 감독님과의 특별한 시간이었습니다.  


<글: EIDF 자원활동가 김선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