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8월 26일 (화) 19:30~ 22:00
-장소: 서울역사박물관
-참석자: 정재은(영화감독), 조재원(건축가), 정영한(건축가)
-시놉시스: 황야에 덩그러니 놓인 컨테이너 박스 집은 매일 별이 쏟아지는 찬란한 밤을 보여준다. 차로 실어 다닐 수 있는 달팽이 집이나 접어서 가지고 다닐 수 있는 비닐 하우스는 삶의 범위를 확장 시켜준다. 이러한 소형주택을 고안한 세계적인 건축가들은 불필요한 것들을 모두 제거한 심플하고 급진적인 주거형태를 제안한다. 이 소형주택들은 대안적인 미래형 주거공간이 될 것인가, 상상력이 충만한 이들의 실험으로 그칠 것인가?
8월 26일 EIDF 2014 첫 번째 건축 다큐 토크 콘서트가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저녁 7시 반부터 두 시간 반 동안 열렸습니다.
EIDF가 준비한 건축 다큐 토크 콘서트는 각기 다른 색깔을 가진 세 편의 건축 다큐멘터리를 영화감독, 건축가, 관객이 함께 관람한 후 한국 건축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함께 고민하고 공유하는 자리로 첫날부터 많은 관객의 뜨거운 관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날 토크 콘서트의 주제가 되는 다큐멘터리는 예스퍼 워시메이스터(Jesper Wachtmeister) 감독이 제작한 <마이크로토피아>였는데요, 먼저 영화 상영이 있은 후 정재은 감독, 조재원 건축가, 정영한 건축가와 함께 토크 콘서트를 펼쳐 나갔습니다. 참가자와 관객들은 현대 사회에 보편화된 집의 모습과 비교하여 <마이크로토피아>에서 추구하는 새로운 건축 형태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Q) 마이크로토피아에 나오는 집, 혹은 이 다큐멘터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조재원: 파격적이었습니다. 현대의 건축은 어떻게 해야 사회와 더 잘 어울릴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가족과 화목하게 살까를 고민하는 것을 토대로 넓은 집을 추구하는 매크로토피아(Macrotopia)를 추구하는데, 이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사람들은 오히려 사회를 뒤로하고 개인만이 누릴 수 있는 작은 공간을 만들어 내니까요. 지붕이 없는 집, 비닐로 만든 입고 다니는 집과 같은 것들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집이라 신선하게 다가왔어요. 로봇 다리를 이용한 움직임으로 궁극적인 자유로움을 가져다 주는 개미다리 집은 저에게 가장 흥미로웠고요. 기존의 보편화된 집의 설계 형식을 깨고 새로운 모습의 집을 만들어 변화해 나가려 도전하는 마이크로토피아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저를 설레게 하였어요.
<건축가 조재원>
정영한: 요즘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은 살기 위해 집을 구하기보다는 집을 소유하는데 집착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반대로 마이크로토피아를 추구하는 이들은 이러한 문제점을 앞서 파악하고 경제적인 속박에서 벗어나 자신이 정말 필요한 집을 만들어 간다는 데서 우리에게 새로운 교훈을 주는 것 같습니다.
정재은: 이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김기덕 감독이 생각났어요. 김기덕 감독이 한때 영화 촬영 때문에 트럭을 샀던 적이 있었어요. 촬영 이후에는 이 트럭을 집으로 개조하여 한동안 살았다고 들었거든요. 마치 마이크로토피아에 나오는 이들처럼요. 김기덕 감독을 포함하여 자신만의 특색이 강렬한 집에 사는 마이크로토피아의 건축가들은 집이 자기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임을 알려주고 집이란 무엇인가를 대중들에게 묻는 것 같습니다.
<모더레이터 정재은 감독>
Q) 마이크로토피아를 보면서 최소의 생활 공간을 제공하는 한국의 고시원이 떠올랐는데 고시원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불편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이러한 한국의 소형 집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리고 한국에서 더 나은 주거생활을 만들기 위한 해결책이 따로 있을까요?
정영한: 마이크로토피아의 소형 집에 사는 사람들이 자신의 집에 만족하는 반면, 한국의 고시원에 사는 사람들은 불편을 느끼는데요, 이는 크기의 문제점보다는 질적인 문제점이 크기 때문입니다. 고시원의 질은 대부분 낙후되어 있어 인간적으로 살아가기에 힘든 여건을 마련하고 있죠. 그런데도 사람들이 고시원을 찾게 되는 이유는 한국은 인구에 비해 살아가기 위해 개척할 땅이 넓지 않고 지속적으로 땅값과 주택 가격이 올라 대부분의 젊은 세대들이 내 집을 마련하기가 여간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에 비해 늘어나는 장기 은퇴자들은 이미 충분히 넓은 집에서 외로이 살고 있어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현실적 방안의 한 예로 노인과 젊은 세대가 동거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에요.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으로 집을 못 사는 젊은 세대는 저렴하게 집을 구할 수 있고, 노인들은 홀로 사는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지요. 그뿐만 아니라 세대 간의 멀어진 거리를 좁혀나갈 수도 있고요. 2030년이면 1인 가구는 천만이 되고 고령화 시대가 가속화될 것을 예상하면 꼭 필요한 시스템이죠. 이처럼 이미 포화상태인 상태에서 새로운 것을 다시 만들기 위한 아이디어를 내기보다는 좀 더 인간적으로 살 수 있는 방법, 그리고 현실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데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건축가 정영한>
정재은: 마이크로토피아에서 말하고자 한 것처럼 더 나은 주거생활을 살기 위해서는 우리들부터 획일화된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다른 방식으로 살면 어떨까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Q) 일반인이 집을 직접 만드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조재원: 건축가는 전문가로서의 책임의식을 지녀야 하기에 될 수 있으면 오랫동안 한 곳에서 쓸 수 있고, 다양한 용도로 바꿔가면서 쓸 수 있는 특성을 살리는 건축을 하는데 이바지합니다. 일반인이 집을 지을 경우 아무래도 기술적인 부분이 건축가보다는 부족한 면이 있긴 하지만, 자신의 손으로 스스로 지었기 때문에 그 집에 살면서 더 큰 만족감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정영한: 일반인보다 건축가의 기술력이 높은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건축가가 최소로 개입하고 일반인이 자신의 공간을 만들게 된다면, 능동적으로 자신의 공간을 활용하는 방법을 생각하게 되어 자신만의 효율적인 공간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Q) 마이크로토피아에서 보여준 특별한 집들처럼 새로운 시도나 열망, 또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건축해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까?
정영한: 굴을 본떠 공간을 만든 마이크로토피아의 건축가처럼 원시적인 형태의 집, 새로운 움막을 지어보고 싶습니다. 지금은 경제적 흐름에 맞추며 집을 사고 짓고 있지만, 구석기시대 당시에는 사냥과 수렵이라는 뚜렷한 목표를 위해 이에 걸맞은 움막을 짓곤 하였습니다.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이처럼 근원적인 욕구를 충족하는 것을 목표로 살 수 있는 체계적인 움막을 지어보고 싶습니다.
조재원: 저를 위한 집을 지어보고 싶습니다. 5평이 될지 55평이 될지는 모르지만 제가 필요한 공간의 규모를 정확히 갖춘 집, 사람들을 좋아하는 저의 성격을 살려 열린 공간으로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집을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정재은: 집의 설계나 형태를 바꾸는 것 대신, 집을 사용하는 방식을 바꾸고 싶네요. 제가 며칠 살았던 집에 다음에 친구가 와서 살고, 또 며칠 후에는 또 다른 사람이 와서 살 수 있는 순환 구조를 갖춘 방식이요. (웃음) 그렇다면 사람들은 좀 더 관대해지지 않을까요?
250여 명이 넘는 많은 관객이 참여한 이번 건축 다큐 토크 콘서트는 정재은 감독님의 재치 있는 진행과 솔직한 건축가들의 이야기로 어렵게만 느껴졌던 건축을 쉽고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었던 유익한 자리였었습니다.^^
<글: EIDF 자원활동가 서영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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