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EIDF 2014 심사위원장 빅토르 코사코프스키의 마스터 클래스가 EBS 스페이스에서 열렸습니다. 주제는 <내러티브 균형잡기- 정보와 감정,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였습니다.
코사코프스키 감독은 암녹색 정장을 입고 강연에 임하며 패셔니스타의 면모도 보였습니다.
코사코프스키 감독은 진지하게 강연에 임하였는데요. 종종 관객들에게 통역이 필요하다는 것을 잊고 거침없이 강연을 진행하여 통역하시는 분이 애를 먹기도 했습니다.
이 날 코사코프스키 감독의 강연은 자신이 유튜브에 올라온 영상을 무작위로 편집한 트레일러 영상, 자신의 영화 등을 보여주며 자신의 의도를 설명하기도 했고, 그 속에 담긴 자신만의 영화 철학을 이야기 했습니다.
“진실은 꼭 필요한가,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마저도 진실을 다 말할 수는 없다. 그럴 필요가 없다.”
“아무리 훌륭한 카메라를 갖고 있다고 해서 훌륭한 감독이 될 수는 없다. 훌륭한 펜을 갖고 있다고 해서 훌륭한 작가가 될 수 없듯이 말이다. 감독은 눈(관찰력)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모두가 각자의 필체(handwriting)을 가졌듯이, 각자의 스타일을 가지고 영화를 만들 수 있
어야 한다.”
“‘당신은 결코 영화감독이 될 수 없다. 아무도 당신의 영화를 기다리지 않는다’ 이 말을 듣고도 영화를 반드시 만들어야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바로 영화를 만들어야 하는 사람이다.”
코사코프스키 감독은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은 1) 스토리, 2) 캐릭터, 3) 비주얼 스타일 등을 들 수가 있는데, 이 외에 훌륭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바로 4) 기적이라고 했습니다.
어느 지역에서 언제 태어난다는 기적을 자신과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겪었던, 즉 감독 자신과 같은 날(1961년 7월 19일) 같은 장소(상트페트르부르크)에서 태어난 남자 51명, 여자 50명을 4년 동안 만나며 제작한 <Wednesday 07.19.61>,
거울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현대 사회에서, 감독의 아들이 네 살이 될 때까지 반사되는 어떠한 것(거울, 숟가락 등)도 접하지 못하게 하고, 네 살이 된 어느 날 방 안에 거울을 들여놓은 뒤 아들이 처음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30여 분간의 기적과도 같은 전환점을 담아낸 <Svyato>,
지구 정반대에 있는 두 도시, 즉 대척점에 위치한 전혀 다른 도시의 모습에서 발견한 기적을 담은 <¡Vivan las Antipodas!>
코사코프스키 감독이 직접 제작한 위 영화들은 모두 기적이 빚어낸 결과물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3년간 영화를 공부할 때 매주 50~100 페이지에 해당하는 시나리오를 썼다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이는 영화감독의 일 중 극히 일부라고 했습니다. 뛰어나고 독창적인 이야기를 만들어 내려면 더욱 힘든 일도 많다고 했습니다.
특히 모두가 카메라를 갖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는 누구나 좋은 영화를 제작할 수 있고, 영화 제작자나 영화 편수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고 했습니다. 그런 만큼 정말 뛰어난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24시간 내내 생각하며 잠도 오지 않고 매달릴 정도로 미친 듯이 몰두해야 합니다. 그러면 영화의 신이 도움을 줄 것이라고 했습니다.
강연이 끝나고 관객과의 질의응답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EBS 스페이스 공감을 가득 메운 관객들의 질문 세례가 이어졌습니다.
* EBS 다큐프라임 PD입니다. 기적을 강조해서 말씀하셨는데, 기적의 순간이 찾아오면 좋지만, 대부분 찾아오지 않습니다. 그때 감독님은 어떤 선택을 하시나요?
“영화를 만들다보면 기적이 마음대로 일어나는게 아니기 때문에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죠. 영화를 아무리 많이 만들어봤어도, 새로운 영화를 만들기 시작하면 첫 영화 때와 같게 됩니다. 아무리 전문가라도 하더라도 새로운 영화를 만들게 되면 새로운 현실을 접하게 되기 때문에 저는 개인적으로 영화마다 다르게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어떤 스타일을 가지고 있고, 그 스타일로 영화를 또 만들 수 있다는 걸 알더라도 자기가 익숙하더라도 새로운 스타일을 매번 시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미학적 형태도 새로움을 시도하지 않으면 반복될 수밖에 없습니다.
기적은 사실 언제나 일어나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기적을 알아볼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매일 매일 자신에게 물어봐야 해요. ‘오늘 무엇을 보았는가.’ 잠자기에 들기 전에 매일 물어본다면 능력을 기를 수 있습니다.“
* 정보와 감정의 균형잡기도 감독님께서 말씀하신 기적의 결과인지, 제작자의 의식적인 판단이나 지식에서 비롯되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이제 마스터 클래스가 끝나고 집에 돌아가기 위해서는 (지하철 역이나 버스 정류장이 있는 왼쪽으로) 좌회전을 해야 할 텐데, 그렇다면 새로운 일이 벌어지지 않고 같은 일상이 반복되겠죠. 하지만 우회전을 하신다면 꿈에 그리던 여인을 만나서 인생이 바뀔 수도 있겠죠. 우연히 우회전한거다라고 할 수 있겠지만, 좌회전을 해야 하는 이유가 수천 가지가 될 수도 있겠고, 우회전을 할 수 있는 이유는 딱 한 가지만 있을 것입니다. 영화 감독이란 매일 매일 일어나는 기적을 알아보는 사람입니다. 저는 매일 아름다운 사람을 봅니다. 하지만 남들은 알아보지 못하곤 해요.
감독이란 마음의 문을 열어 놓고, 마음을 둘러싼 피부가 없기 때문에 하루에 열 번이고 사랑에 빠지고, 죽고 싶은 생각이 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감독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를 만들 여러분은 울 준비가 되어야 합니다. 너무 끔찍한 것을 봐서가 아니라 너무 아름다운 것을 봐서 울어야 합니다. 비가 내리는 것을 보거나, 나무를 보거나 음악을 듣고 감동을 받아 울 수 있어야 합니다. 항상 귀를 열고 느낄 수 있다면 당신은 이를 영화로 표현할 수 있겠죠.“
* <스비야토>에서 아들이 거울을 보던 도중 청둥오리가 물 아래로 들어가는 이미지를 인서트 하셨는데, 이유가 무엇인가요?
“우연이었어요. 호숫가에서 편집을 하던 중 청둥오리를 봤고, 물가에 비치고 있었죠. 마치 거울과도 같이 맑았어요. 수직으로 이 장면을 세우면 마치 오리가 거울을 보고 있는 것과도 같을 거라 생각했어요. 우리가 거울 속으로 들어갈 수는 없지만 오리는 물속을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우리가 모르는 비밀을 오리는 알지 않을까 라는 메시지를 담았죠.”
* 25년동안 영화를 만들어 오셨는데, 처음 이 일을 시작하실 때에 비해서 추구하는 기준이나 관점 중에 많이 달라진 게 있나요?
“젊었을 적에는 아주 급진적이었어요. 남들이 보든 말든 제가 만들면 그냥 예술이라고 생각했어요. 요즘에도 ‘당신의 영화는 저널리즘이냐 다큐냐 예술이냐?’라고 물을 때 ‘예술이다’라고 하기는 해요. 하지만 이제는 관객들을 고려하죠. 정말 관객들이 볼 영화를 만들고, 사람들이 제 영화를 보러 표를 사고 큰 스크린에서 제 영화가 상영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요. 런던, 파리에서 관객들이 줄을 서 있는 것을 보면 좋았죠. 한국 팬들에게도 새로운 관점의 영화를 선보이고 싶습니다.”
* 왜 영화를 제작하시나요? 영화가 가진 힘은 무엇인가요?
“9.11 테러가 뉴욕 맨하탄에서 발생한 지 2주 후에 국제무역센터에서 서너 블록 떨어진 곳에 사는 누나를 만나러 갔습니다. 누나에게 물었습니다.
‘사건이 발생했을 때 어디에 있었느냐?’ ‘TV를 보고 있었다.’ ‘창 밖을 보면 보이는데 왜 TV를 봤느냐?’ ‘생각을 못 했다.’
우리는 실제 이미지보다 TV에서 보는 이미지를 더 신뢰합니다. 불과 100년 사이에 벌어진 일입니다. 테러를 저지르는 사람들은 분명히 언론이 촬영을 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감행한 것입니다. 이 영상, 이미지, 촬영에 만인에게 공개될 것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죠.
성적이고 자극적인 이미지를 이용해 여러 가지 물건을 팝니다. 서울 안에서도 이러한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건 말도 안되는 일입니다.
영화감독이 될 거라면 이렇게 하면 절대 안 됩니다. 순전히 광고나 보도를 위해서만 이미지를 이용한다면 우리는 시각적인 오염을 하고 있는 겁니다. 감독이라면 자신이 제시한 이미지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이미지는 독특하고 아무도 보지 않은 것이어야 합니다. 카메라를 들고 있다는 건 총을 들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의 엄청난 무기입니다.“
<글: EIDF 자원활동가 손지형, 조영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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