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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IDF 2019/EIDF 2019 상영작

[EIDF2019] 구름아래소극장 <굴라크 수용소의 여인들> GV 현장 스케치

제16회EBS국제다큐영화제 <굴라크 수용소의 여인들> GV 현장 스케치

 

 

이제 드디어 가을이 오는 듯, 갈수록 선선해지는 8월 말입니다! 제16회EBS국제다큐영화제도 어느덧 막바지를 향해 달리고 있는데요. 8월 23일 13시 30분, 구름아래소극장에서는 <굴라크 수용소의 여인들(Women of the Gulag)> 관객과의 대화가 열렸습니다.

 

 

마리안나 야로프스카야 감독님이 게스트로 참여해주셨고, 정민아 영화평론가님이 진행을 담당하셨습니다. 러시아에서 태어난 마리안나 감독은 20년간 미국에서 거주하다가 굴라크 수용소에서 일어난 끔찍한 역사가 잊혀지거나 아예 기록되지조차 않는 것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이 다큐멘터리를 기획하기 시작했고, 영화의 감독과 제작을 함께 맡으셨는데요. 이제는 90세 안팎의 나이인 생존자 할머님들의 인터뷰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본 영화는 올해 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다큐멘터리 부문 최종후보 명단 심사에 올라가면서 더욱 널리 알려졌습니다.

 

약 30분간 진행된 GV는 관객들의 경청과 함께 감독님의 진지한 설명 및 답변들로 채워졌는데요. 그럼 GV 현장을 엿보러 가실까요?

 

 


 

GV 스케치

 

 

정민아 영화평론가 (이하 정민아) 마음이 무거워지는 영화다. 우리 역시 이런 비극적인 역사를 많이 갖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고. 감독님께서 특별히 이 굴라크 수용소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마리안나 야로프스카야 감독 (이하 마리안나 야로프스카야) 내 가족이 굴라크 수용소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배우이자 감독인 나의 할아버지는 굴라크에서 겨우 빠져나온 사람이고, 결국 러시아로부터 망명당했다. 나는 그의 외동손녀고. 또한, 홀로코스트에 관한 박물관이나 위령비 등은 많은 것에 비해 러시아에서 이루어진 학살과 숙청의 역사인 굴라크 수용소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 러시아에 홀로코스트 박물관은 만들면서 굴라크에 대한 박물관이나 구조물이 없는 것이 나에겐 큰 충격이었다.

 

정민아 주로 생존자 할머니들의 심도 깊은 인터뷰로 영화가 이루어지고, 그 사이에 당시의 영상이나 사진들이 배치된다. 당시의 영상이나 사진들은 어디에서 따 온 것인가.

마리안나 야로프스카야 좋은 질문이다. 미국에서 나는 아카이빙을 공부해왔고 그와 관련된 일을 했기에, 일반적으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당시의 자료를 조사하는 행위 자체는 나에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굴라크에 관련한 영상 자료들은 거의 전무했다. 자료가 아예 없거나, 있어도 사라졌거나 극비 취급되어 공개되지 않고 있다. 그래서 당시 수용소의 모습을 보여주는 영상들은 대부분 당시의 선전용 영상에서 발췌한 것이다. 물론 선전용 비디오에서조차 수용소의 사람들은 행복해 보이지 않지만. 또한 생존자나 그 가족의 일기, 인터뷰, 그림을 많이 사용했다. 그것조차 사실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실제 당시를 다큐멘터리처럼 찍은 영상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민아 우리도 비극적인 역사가 많아 공감이 많이 간다. 공식적 기록이 없는 경우 구술 인터뷰에 의존해야 하는데, 그럴수록 다큐멘터리라는 장르가 어떤 공동기억을 축적하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민아 러시아에서 이 영화가 상영되었을 때 반응은 어땠나.

마리안나 야로프스카야 상영 당시 몇 명의 스탈린 지지자들이 상영 현장에 오기도 했다. 이상한 질문을 던지기도 했는데 기억하고 싶지 않다(웃음). 인터넷에서 저를 겨냥하는 악플러들도 있었고. 전반적인 러시아 측의 반응은 굉장히 헷갈려하고 당황하는 반응이었다. 왜냐면 아카데미 시상식 캠페인에 있어 러시아 측에서 아마도 천만 달러 이상, 매우 돈을 많이 투자한 다른 영화가 있었다. 그런데 그건 선정을 받지 못하고 내 영화가 선정된 거다. 그 후 내 영화를 '러시아의' 영화로 만들고자 하는 움직임이 보였다. 러시아의 국영방송인 채널1, 국적기인 아에로플로트에서 영화를 사 간다든가.

 

 

 

Q&A

 

 

Q.당시 수용소에 끌려가거나 숙청당했던 사람들이 많은데 왜 그 중에서도 '여성들'에 초점을 맞췄는가. 그리고 영화의 대부분이 인터뷰인 한편 시작과 끝에 현재 러시아에서 스탈린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모습들을 보여주는데 그런 구성을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A.

1) 여성에 초점을 맞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첫째로 아주 간단한 이유인데, 여성들이 수명이 더 길기 때문이다. 남성 생존자들은 거의 다 사망했다. 그나마 영화 속에 등장한 여섯 분의 할머님들 중 세 분은 현재 돌아가신 상태고, 두 분은 말을 계속 할 수 없을 정도로 건강이 나빠지셨다. 한 분은 최근 모스크바 영화제에서 휠체어를 탄 채 관객과의 대화에 참석하셨고 기립박수를 받았지만.

또한, 여성은 남성과 다른 경험을 한다. 우리가 굴라크에 대해 그나마 알고 있는 거의 모든 정보는 남성들이 써내려간 정보다. 솔제니친이 쓴 <굴라크 반도>와 같이. 그러나 수용소에 갇힌 인원 중 4분의 1이 여성이었고, 그들 역시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힘든 상황을 겪었다. 수용소의 여성들은 '노예 중의 노예(slaves of slaves)'라고 불렸을 정도로. 그러니까 지금 내가 보여주는 것은 정말로 빙산의 일각이다. 하지만 일부러 더 깊게 파고들지는 않았다. 여성들의 경험들 중 아직 가려진 것도 많이 있겠지만, 그들이 트라우마를 심하게 다시 각성하게끔 만들고 싶지 않았고 미성년자도 볼 수 있는 영화가 되었으면 했다.

마지막으로, 여성들은 구체적인 고문의 잔혹성보다 가족과의 헤어짐, 그로 인한 상실의 경험과 그때 느낀 감정 등을 더 크게 기억한다. 인터뷰에서도 보이듯, 그들은 대부분 감정적인 트라우마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런 게 다른 점이다.

2) 영화 구성에 대한 질문에서는, 잘 아시듯 공산당은 지금도 러시아에서 아주 잘 나가고 있다. 영화 마지막에는 도시 한복판에서 스탈린 분장을 한 사람과 관광객들이 웃으며 사진을 찍고, 스탈린의 사진에 붉은색 꽃을 바치는 모습들이 나온다. 내가 보기에 그건 사실 베를린 한복판에서 히틀러 분장을 한 사람이 관광객들과 사진을 찍어주는 격이다. 피해자들을 생각하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고. 현재 러시아에서는 그러한 비극에 대한 인식 정도가 너무나 떨어지기 때문에, 여성이 겪은 비극과 현 사회의 풍경을 대조하기 위해 영화를 짰다.

 

 

Q.영화에 등장하는 여섯 분의 할머님들을 인터뷰이로 선정한 과정이 궁금하다. 또한 영화를 만들면서 인상깊었던 순간이 있다면.

 

A.최대한 사회의 각계각층에 있는 사람들을 모시고 싶었다. 농촌 출신, 수용소에서 풀려난 이후 간호사가 된 사람 등 다양하다. 인상적인 순간은 한 편집자가 나에게 편집 과정에서 이런 말을 했을 때다. 영화의 주제가 주제인 만큼, 먼저 러시아인 편집자에게 편집을 맡긴 후에 미국에 가서 2차 편집을 하기로 결정했는데, 섭외된 러시아인 편집자 중 한 명이 이러더라. "이 (인터뷰를 한) 여성들이 진실을 말하고 있는지는 어떻게 확신하나? 그리고 스탈린에게 정말로 혐의점이 있다고 말할 수 있나? 중간 관리자들이 잘못했을 수도 있는데." 너무나 놀랐다.

마치 개구리가 상온부터 시작해 끓는점으로 가는 물 속에 앉아 있으면 주변 온도가 서서히 변화하므로 그 안에 계속 앉아 있다가 죽을지도 모르지만, 처음부터 끓는 물에 들어가면 화들짝 놀라서 바로 뛰쳐나오는 것처럼, 그와 나의 관점은 매우 달랐다. 많은 사람들이 그 편집자와 같은 생각을 아직도 하고 있고. 푸틴 역시도 스탈린이 '유능한 관리자'였다고 발언한 적이 있다.

 

 

 


 

현재 또 다른 역사 관련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는 마리안나 감독은 마지막으로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 때 음악 등의 세부 요소에도 심혈을 기울여야 수명이 긴 작품이 나올 수 있다는 조언을 하며 GV를 마무리했는데요. 경청하고 진지한 질문을 던지는 관객들과 그에 진중하고 적확한 답변을 하는 감독님의 호흡이 돋보인 자리였습니다.

 

우리나라의 역사 속 비극 역시 돌아보게 하는 <굴라크 수용소의 여인들>은 아쉽게도 극장 상영 및 TV 방영 스케줄이 모두 마무리되었지만, 그래도 실망은 금물입니다. 다큐멘터리 전용 VOD서비스 D-BOX(www.eidf.co.kr/dbox)로 접속하여 관람하실 수 있으니까요. 귀중한 역사적 기록물이자 효과적인 고발 다큐멘터리이기도 한 이 영화, EIDF2019의 관객 분들 중 아직 보지 못한 분이 계시다면 분명하게! 추천드립니다.

 

제16회EBS국제다큐영화제는 8월 25일까지 계속됩니다. :)

 

 

 

원고: 자원활동가 기록팀 조진영

사진: 자원활동가 기록팀 한다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