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회EBS국제다큐영화제 <어느 록밴드의 평양 방문> ST: "우리는 평양으로 간다네 두려움 없이" 현장 스케치
게스트: 모르텐 트라비크(Morten Traavik, 감독), 김선(Mary sun, 통역가)
진행: 자코 즈웨슬로츠(Jacco Zwetsloot, NK News Podcast 호스트)
통역: 김고은
8월 22일 저녁 6시 30분, 홍대 구름아래소극장에서는 EDIF2019에서 야심차게 준비한 두번째 스페셜토크가 열렸습니다. <어느 록밴드의 평양 방문(Liberation Day)> 상영 후 "우리는 평양으로 간다네 두려움 없이"라는 제목 아래 ST(Special Talk, 스페셜토크) 행사가 이루어졌는데요.
여기서 잠깐! EIDF2019의 스페셜토크는 시의성이 있고 이야기될 여지가 많은 작품을 선정, 제작진과 해당 분야 전문가 패널을 초청하여 영화 안팎으로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는 자리입니다. 올해는 결혼, 북한, 동물을 주제로 하여 구름아래소극장에서 8월 20일, 22일, 23일 총 3차례에 걸쳐 진행되는데요. 이번 스페셜토크가 그 중 두 번째 행사였습니다.
<어느 록밴드의 평양 방문>은 슬로베니아 록밴드 라이바흐가 2015년 8월 5일, 북한 평양 봉화예술극장에서 공연을 하게 되고 며칠만에 현지에서 공연을 준비하고 실행하는 과정을 그린 다큐멘터리인데요. 노르웨이의 예술가이자, 라이바흐와 함께 평양을 찾아 밴드와 평양의 인력 사이에서 중재 역할을 해낸 모르텐 트라비크 감독과 공연 준비 과정에서 통역을 맡았던 김선 통역가님이 스페셜토크에 패널로 함께 해주셨습니다. 또한 NK뉴스 팟캐스트 진행자인 자코 즈웨슬로츠님이 진행을 맡아 재치있는 진행을 보여주셨는데요.
당시 서방 국가의 록밴드가 북한에 와서 공연하는 것은 라이바흐가 최초였다고 합니다. 특히 라이바흐는 누구나 부담없이 듣거나 공연을 볼 수 있는 '소프트한' 록밴드가 아니고 그 반대라는 점에서 이 사실은 더욱 화제가 되었죠. 라이바흐는 1980년 구 유고슬라비아에서 결성된 슬로베니아 밴드로, 퀸의 'One Vision' 등 미국 팝의 가사를 전체주의 또는 군국주의적으로 해석되도록 커버하는 전위적인 작업으로 국제적으로 유명해진 밴드입니다.
본래 노르웨이와 북한 간 문화/예술 교류를 몇 번 진행해 온 모르텐 감독이 2014년 라이바흐와 뮤직비디오 작업을 한 인연으로 공연을 추진했다고 하는데요. 세계의 온갖 뉴스들이 주목하고,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이 "21세기의 가장 매력적인 문화적, 이념적, 정치적 이벤트"라고 칭하기도 한 '핫한' 사건이었습니다. 공연으로부터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이 사건이 불러오는 흥미는 여전한 것일까요? EIDF2019의 영화 상영 및 스페셜 토크 현장에도 데스크가 붐빌 정도로 많은 관객들이 영화와 스페셜토크를 보러 찾아주셨는데요! 당시 이 영화를 함께 작업한 분들도 많이 방문하셨다고 합니다.
영화 상영 후 많은 청중의 기대 속에서, 모르텐 트라비크 감독님이 영화에서도 돋보였던 특유의 유머와 시니컬함을 한껏(!) 표출하시면서 내내 스페셜토크를 흥미롭게 이끌어 주셨는데요. 1시간 반이 넘게 진행되었던, 뜨거운 스페셜토크 현장 스케치로 들어가 볼까요?
자코 즈웨슬로츠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의 일대기를 100분 정도의 다큐멘터리로 편집했는데, 더 길게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다시 넣고 싶은 게 있는가.
모르텐 트라비크 평양 가기 1년 전 이 공연에 관한 논의가 시작되었을 때, 그곳의 문화국 쪽에 카메라를 놓고 어떻게 이게 성사될 수 있었는지 그쪽의 이야기를 보고 싶긴 하다. 나도 (이게 대체 어떻게 성사될 수 있었는지) 의문스러운 점들이 있어서(웃음). 공연이 이야기된 후 전세계 뉴스에서 핫하게 다루었을 때 갑자기 핸드폰으로 평양 번호로 전화가 와서는 '라이바흐가 미디어에서 떠드는 것처럼 파시즘적 밴드가 아니라는 걸 증명해보라' 해서 진땀을 뺀 적도 있다(웃음). 평양에 가기까지 약 1년간, 여름 휴가도 안 간다고 가족의 원성을 들어가며 거의 전시체제로 24시간 동안 스탠바이 상태였다. 평양에서의 공연을 위한 좋은 워밍업이었다.
자코 즈웨슬로츠 김정은은 자신의 논문 <미술론>에서 '예술을 위한 예술'을 부정하고, 예술은 목적의식이 뚜렷하고 대중이 이해하기 쉬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 사회에서 라이바흐가 공연할 때 어려움은 없었는가.
모르텐 트라비크 사실 그런 김정은의 주장과, 그리고 그것을 따르는 북한의 예술에는 자기모순적인 면이 있다. 내가 보기에 북한에는 두 가지 종류의 예술이 존재한다. 하나는 프로파간다, 즉 정치적 또는 이념적 선전용의 예술이고 다른 하나는 순수하게 장식적인, 서양 입장에서 '키치'한 무엇으로 해석될 수 있는 예술이다. 이게 왜 라이바흐라는 밴드가 평양 공연에 사실 잘 어울렸는지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라이바흐는 팝 뮤직에 숨겨진, 그 가사 속 해석될 수 있는 전체주의를 끌어내는 퍼포먼스로 주목받았다. 그런 모순성을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자코 즈웨슬로츠 예술적 비전이 달라서 부담은 없었는가.
김선 예술적 측면에서 물론 차이점이 있었다. '아리랑'을 라이바흐가 커버한 무대를 보여줬을 때, 아무리 원곡이 익숙한 노래라고 해도 우리의 커버가 밴드 퍼포먼스를 포함해 많이 낯설게 여겨질 거라고 거절당했다. 북한과 서유럽이라는 두 다른 문화권 사이에 문화적 중재가 필요했다.
모르텐 트라비크 나라 문화뿐 아니라 ‘커버’ 자체에 대한 인식이 너무나 달랐다. 커버곡은 원곡으부터 어쩌면 완전히 달라질 수도 있다는 인식 자체가 그곳에는 없었다. 그런 부분에서 우리는 '긍정적 오염'을 시킨 게 아닐까 생각된다(웃음). 북한에 그런 쪽으로 백신을 놓아 주었다고 해도 되지 않을까.
자코 즈웨슬로츠 평양 공연으로 무엇을 성취한 것 같은가.
모르텐 트라비크 좋고 싫고의 문제를 떠나 잊을 수 없는 기억일 것이다. 우리에게도 그렇고, 그쪽에도 그렇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당시 이 공연을 본 청중도 이걸 절대 잊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마 대부분이 좋아하진 않고 싫어했겠지만(웃음). 사실 그건 비단 북한이 아니라 어디서든 똑같다.
김선 그곳에서 최고의 음악 인재들이 모이는 금성학원의 학생들과 교류할 기회가 있었다. 그들이 새롭게 접하는 라이바흐의 무대 기술을 보면서 굉장히 자극받는다는 걸 느꼈다. 노르웨이와 북한 문화교류에서 당연히 서로에게 좋은 영향이 간다고 생각한다.
다큐멘터리에서도 많이 등장하시는, 라이바흐의 평양행에서 통역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김선 통역가님의 말씀도 인상적이었는데요.
김선 2012년에 컬럼비아대학원 국제대학 학생들과 함께 연구를 위해 간 것을 시작으로 6, 7번 정도 북한에 방문했다. 그리고 이 다큐멘터리에 나온 공연이 사실 내 마지막 북한행이 되었다. 그 후로 미국에서는 여행 금지령이 내려졌기 때문에. 아무튼, 2012년 북한을 가면 DMZ를 꼭 한번 가보라고 하지 않나, 그래서 DMZ로 가는 길에 휴게소에서 잠깐 내려서 차를 마시는 도중에 당시 다른 일로 그곳에 있던 모르텐 감독과 만난 것이 인연의 시작이다. 모르텐 감독은 호기심이 많으면서도 어려운 상황을 두려워하지 않고 직면하는 좋은 리더다.
자코 즈웨슬로츠 북한에서 사람들과 일하는 것은 어땠는가. 그쪽에 추가로 5명의 통역사가 있고, 검열을 담당하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었는데.
김선 그곳에서 노래 부를 한국어 가사의 뉘앙스를 고를 때 물론 힘든 점은 있었다. 내가 생각한 한국어 번역을 북한 쪽에서 보면 아니라고 하고, 그래서 북한 쪽에 번역을 맡기면 내가 생각하기엔 틀리고... 하지만 그들 역시 나에게 외국인이 자신들의 언어를 사용하는지를 배워간다고 느꼈다.
모르텐 트라비크 선이 한 활동은 단순한 통역이라고 할 수 없다. 선에게 인문학을 전공한 배경, 그리고 예술에 대한 관심과 재능이 있기에 단지 통역이 아니라 뉘앙스까지 포함해 그 단어의 의미를 이해하는 일이 가능했다. 영어에서 한국어로, 한국어에서 영어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정확한 전달을 하면서 서로간 신뢰를 유지하게 하는 중요한 팀원이었다.
자코 즈웨슬로츠 아무래도 대한민국과 북한의 언어가 다른 것 때문에 긴장은 없었나?
김선 금강산 여행과 같이 남한 쪽 사람들이 갈 수 있는 루트가 없었으므로 오히려 나를 많이들 반가워했다. 남한에서 사용하는 악센트를 들으면 '오 그거 오랜만에 듣네' 하는 반가움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그곳의 관습에 어긋나게) 잘못 말하면 그런 건 다 듣는 곳에서는 말하지 말라는 식으로 조언도 해주고, 나를 보호해주려고 했다. 매우 따뜻한 사람들이었다.
모르텐 트라비크 북한에서 사용하는 언어와 이곳에서 사용하는 언어의 뉘앙스가 정말 다른 것은 맞다. 같은 언어라고 하기에는 그 격차 커서 같이 얘기해도 항상 서로 오해가 생긴다. 어찌 보면 무서운 일이다.
Q&A
Q.북한에서 작업을 할 때 여러 검열을 당하고 아예 공연하기로 한 곡들 중 두 곡이 퇴짜맞는 등 시스템상, 그리고 기술상의 어려움이 많이 보이는데 정말 힘들었을 것 같다. 이런 노력을 하면서 그에 따르는 가치와 보상을 생각했는가.
모르텐 트라비크 당연히... 힘들었다. 아주. 하지만 가치와 보상에 관해서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말해야 할 것 같은데, 나는 노벨상을 받고자 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나라의 문제를 고치러 온 사람이 아니다'라는 인식. 그래서 북한과 작업할 때도 그냥 있는 그대로 하려고 한다. 내 위치에 서면 스스로 무슨 평화의 선도자가 된다거나, 이곳(남한)과 북한 사이의 가교가 된다거나, 그러고 싶을 수도 있다. 물론 매력적인 유혹이다. 하지만 그게 공연을 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이 될까. 어차피 현실적인 효과나 변화는 내가 굳이 의도하지 않더라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즉, 나는 당장의 거대한 효과를 기대한 적이 없다. 북한에서의 변화는 그런다고 생기지 않는다. 그건 내부에서, 그리고 위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일이다.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그 시스템 자체를 붕괴하거나 강하게 대항하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그리고 지속적으로 그 시스템과 함께 작업하면서 서서히 변화해가길 기대해야 한다. (한국어로) "편안하게".
Q. 영화를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왜 라이바흐를 초대하게 됐는지를 좀 더 잘 이해하고 싶다. 심지어 그들의 해방일('Liberation Day')에 말이다. 그들에게도 부담이 많이 가는 기획이었을 것 같은데.
모르텐 트라비크 완벽한 답변이 될 순 없겠지만, 내가 아는 한 답변하겠다. 우선 (그동안의 문화 교류 경험으로) 쌓아온 신뢰가 있었고, 그걸 기반으로 내가 요청했다. 앞서 얘기한 소위 파시스트 운운하는 헤드라인부터 해서 매우 큰 국제 미디어로부터 관심을 받았고. 국제적으로 큰 효과가 있을 거라고 이야기했다. 당장의 손해가 조금 있더라도 세계 각국의 다른 예술가들이 또 문화교류를 하러 올 것이라고.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우리의 공연 이후 스웨덴에 있는 음악 학교에서 김원균음악대학 교류가 체결되었고, 다른 국가의 밴드 공연들도 이루어졌다. 사실은 북한 역시 이런 문화교류에 흥미가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들이 구체적으로 라이바흐 음악을 좋아하는지 아닌지는 내 관심사가 아니다. 어차피 하게 된 거 잘하자고 생각했을 뿐이다.
아직도 노르웨이-북한 교류 및 2015년의 공연 당시 인연을 맺은 북한의 인사들과 유럽 등지에서 만나 이야기한다는 모르텐 트라비크 감독은 자신이 출연한, 2017년에 이루어진 북한에서의 문화교류를 담은 다큐멘터리(영제 <The War of Art>)의 깨알 홍보(!)도 잊지 않았는데요. 올해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상영될 예정이라고 하니 기대해봐도 좋겠죠?
그 자체로 '핫'하고 논쟁적인 영화, <어느 록밴드의 평양 방문> 스페셜토크 현장이었습니다. 아쉽게도 이 영화의 극장 상영 스케줄은 마무리되었지만, 24일 23:15 EBS1TV에서 방영 예정이라고 하니, 꼭 챙겨보시길 추천드립니다. 또한 다큐멘터리 전용 VOD서비스 D-BOX(www.eidf.co.kr/dbox)로 접속하여 관람하실 수도 있답니다. 스페셜토크 내용을 보고 관심이 가신다면, 주저 마시고 시청해보세요. 속도감 있는 연출과 재치 있는 편집이 매력적인, 진지하면서도 유머러스한 작품이랍니다.:D
제16회EBS국제다큐영화제는 8월 25일까지 계속됩니다. :)
원고: 자원활동가 기록팀 조진영
사진: 자원활동가 기록팀 한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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